세상에서 가장 귀한 수리공
파리의 좁디좁은 주차장은 늘 긴장의 연속이다.
그날은 유독 운이 없었다.
드르륵
기분 나쁜 소리가 차 안을 가득 채웠고, 차에서 내려 마주한 건 매끄러운 차체 위에 길게 그어진 날카로운 파열음의 흔적이었다.
수리비 생각에, 또 나의 실수에 자책하며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뒷좌석 카시트에서 내린 세 살 아들이 심각한 얼굴로 차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울상인 내 얼굴과 차의 상처를 번갈아 보던 아들이 어깨를 으쓱하며 파리지앵처럼 한마디를 툭 던졌다.
C'est pas grave(괜찮아), 엄마!
소독하고 반창고 붙이면 돼!
순간 ‘풋’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이의 세계에서 상처란 모름지기 빨간 약으로 소독하고,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 반창고를 붙이면 낫는 것이리라.
기계적인 파손과 수리라는 어른들의 개념 대신, 아들은 차가 아플까 봐 걱정하며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비싼 도색 비용을 걱정하던 나의 세속적인 마음이 아이의 순수한 ‘반창고 처방’ 앞에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아들은 일본인 아빠에게선 ‘다이죠부(大丈夫)’를, 나에게선 ‘괜찮아’를, 그리고 프랑스 학교에서는 ‘C'est pas grave’를 배웠다.
세 가지 언어가 아이의 머릿속에서 섞이며 만들어낸 결과물은 그저 유창한 외국어 실력이 아니었다.
타인의 아픔(심지어 차의 상처까지도)을 공감하고 다독일 줄 아는 ‘마음의 언어’였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나는 학생들에게 단어의 뜻과 쓰임을 가르치지만, 내 아들은 나에게 단어 속에 담아야 할 진심을 가르치고 있었다.
차의 상처는 정비소에 가면 지워지겠지만, 내 마음의 생채기를 덮어준 건 정비사의 기술이 아니라 아이가 건넨 투박한 불어 한마디와 반창고 한 장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는 정말로 자기 가방에서 아껴둔 캐릭터 반창고를 꺼내 차의 긁힌 자리에 붙여주었다.
흉측하게 긁혔던 자리에 붙은 뜬금없는 반창고를 보며 생각한다.
그래, 상처 좀 나면 어떤가!
긁히고 상처 나도 서로 소독해 주고 반창고 붙여줄 ‘내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 파리의 노을은 아이가 붙여준 반창고처럼 유난히 따뜻한 노란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