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파리의 밤
장기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와 그를 애타게 기다린 아들이 며칠 만에 상봉했다. 아빠의 손에 들린 작은 꾸러미를 보며 "오늘은 뭘 가져왔을까?" 기대에 부풀어 반짝이는 아들의 눈망울을 마주한다.
사실 단지 며칠의 부재였을 뿐이다. 하지만 남편이 없는 동안 홀로 아이를 감당하며 쌓였던 독박육아의 고단함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예약한 한국 식당의 영업시간을 기다리며 근처 카페에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킨다. 그제야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던 몸의 피로가 비로소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지는 햇살 아래 마주 앉아 조잘거리는 내가 사랑하는 두 남자를 가만히 바라본다.
2가 3이 되어 비로소 완성된 이 풍경을 마주하고 나서야, 마음 한구석의 불편한 빈틈이 메워지며 가장 온전한 안도감이 차오른다. 셋이 함께 숨 쉬는 이 당연한 공기가 내게는 세상 무엇보다 큰 위안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지금 누리는 이 평온한 3의 일상은 사실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남편과 나, 단둘뿐이었던 고요한 '2'의 세계에 새로운 생명이 깃들기를 우리는 무려 7년 동안 기다렸다. 두 번의 시험관 시술이라는 길고 지루한 터널을 지나며 우리는 매 순간 간절함을 다듬고 인내를 배워야 했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다시 희망을 품기를 반복하던 그 시간 동안 우리의 식탁은 언제나 한 자리가 비어 있는 듯한 정체된 느낌이었다.
마침내 아들이 우리에게 왔을 때, 그것은 결코 예고 없이 찾아온 우연이 아니었다. 우리가 온몸으로 건너온 긴 시간과 수많은 간절함이 맞닿아 일궈낸, 가장 단단하고 찬란한 필연이었다. 7년이라는 시간은 단순히 기다림의 기간이 아니라, 우리 부부가 '3'이라는 숫자를 맞이할 준비를 마친 숙성의 시간이었다.
처음 셋이 되었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렀다. 둘이서 앞만 보고 빠르게 걷던 길 위에서, 아이의 낮은 시선에 맞춰 자꾸만 멈춰 서야 하는 일상이 처음엔 어색한 보폭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다. 기하학에서 세 개의 점을 이은 삼각형이 가장 변형되지 않는 안정적인 구조를 이루듯, 우리 가족도 아들이라는 점 하나가 더해지며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았다는 것을.
이제는 셋 중 누구 하나라도 빠져 어느 조합으로든 둘만 있게 되면, 그 빈자리가 금세 어색함으로 차오른다. 남편의 출장 기간 아들과 둘이 지낼 때의 허전함도, 아들 없이 부부만 있는 짧은 시간의 허공도 이제는 낯설게 느껴진다.
셋이 함께일 때 가장 자연스러운 호흡이 완성된 지금, 우리에게 '3'은 가장 완벽하고 편안한 숫자가 되었다.
셋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단단하고 완벽한 파리의 밤.
이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3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