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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Jul 17. 2016

티처

좋은 일과 옳은 일

아이들에게 점심은 일상이 아니다. 일요일이나 학교가 문을 닫는 방학 중에는 더 그렇다. 끼니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열심히 찾아가야 한다. 주일학교도 그중의 하나이다. 빵 한 조각, 과즙을 희석한 주스 한 컵을 받으러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종종걸음으로 하나 둘 나타난다. 주스를 받아먹을 수 있는 온갖 종류의 병과 깡통들을 손에 쥐고 여기저기 "티처~"라고 외치면서 달려서 들어온다.


조금 큰 딸아이들은 동생을 업고 온다. 대여섯 살만 되면 한두 살의 동생을 업고 올 수 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학교에서 선생이 동생을 안아주는 동안은 자신도 '아이'가 될 수 있는 시간이다. 낯선 나의 얼굴을 거부하는 어린 아기들은 안아줄 수가 없어서 그저 미안하다. 아이를 안은 내 팔이 아파 올 때쯤이면, "티처, 우메초카? (선생님 힘들죠?)"하면서 동생을 다시 안으러, 또 업으러 돌아온다. 내 허리에도 못 미치는 작은 아이가 또 너무나 작은 등을 내게 내미는데 나는 민망한 마음으로 동생을 내려준다. 아이는 빵가루가 묻은 얼굴로 웃으면서 동생을 귀하게 업고는 학교를 나서서 집으로 걸어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나를 쫄래쫄래 쫓아나오는 아이가 있다. 내 손을 잡고는 큰길로 향한다. 어디를 가냐고 물으니 근처 교회에서 무슨 잔치가 있는데 음식을 좀 찾아먹으려고 가는 눈치다. 바짝 마른 팔과 다리에서 무슨 힘이 나오는지 가파른 길을 넘어 가벼운 걸음으로 총총거리면서 사라진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내가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도 잘 몰랐지만, 그래도 나는 일단 "티처"라고 불렸다. 신도, 교리도 모르는 주일학교 선생 노릇은 아는 케냐 친구를 통해서 시작했었다. 뭐 주일학교라기보다는 케냐로 유학을 오신 가톨릭 수사님들이 근처 가난한 동네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아이들이 일주일 동안 잘 지냈는지 확인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그냥 간식을 나눠주는 것만 돕고 오는 것이 섭섭해서 종이 접기나 그림 그리기 정도를 보여주고는 했었다. 처음 종이 한 장과 크레용 하나를 손에 쥐어 주고 같이 그려보자고 했더니 그림을 그려본 적이 별로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그려야 하냐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대충 물고기나 자동차 따위를 그려서 보여줬는데, 아이들은 "Teacher, you are an artist? (선생님은 예술가예요?)"하면서 눈이 휘둥그레지곤 했었다. 아이들은 내가 그린 것을 그대로 따라 그려 보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각자의 개성을 숨길 수는 없었다. 평소에 관찰했던 것들을 반영해서 놀랍도록 정확하게 이곳의 버스를 묘사해서 그리는 아이, 내가 그려준 자동차에 여러 가지 색깔을 섞어서 칠해보는 아이.


아이들에게는 미술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다. 아니, 어쩌면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당장 저녁에 먹을 것이 별로 없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고, 색종이를 보여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고민도 많이 했었다. 흔히들 당연히 '좋은 일'이라고 믿고 하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일까. 크레용도 모자라고, 종이도 모자라서 교실에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아이들도 한정되어 있었는데, 서로 들어가겠다고 아우성치던 아이들, 그리고 창문 너머로 교실 안을 부럽게 쳐다보던 아이들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나와 잠깐 그림을 그려봤다고 한들, 색종이로 한두 번 뭔가를 만들어봤다고 한들, 그게 하루하루 끼니가 걱정인 아이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 나는 어쩌면 아이들에게 가질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그런 불평등이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 온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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