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말을 할 통로가 없다

영어로 말을 하고 싶다

by 심한수

최근에 어떤 기사를 읽었는데, 사람이 둘 이상의 다른 언어를 쓸 때, 그 언어에 맞는 다른 정체성을 가진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내용이었다. 거의 반년 가까이 대체 내가 왜 모국어도 아닌 영어로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답답하게 느끼는지 설명할 길이 없었는데, 어쩌면 나는 영어로 말할 때 내가 가지는 조금 다른 나의 모습이 그리운 것이 아닌가 싶었다.


영어가 하고 싶어 죽겠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지난 10년간 영어로 말하고 사느라 힘들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어디 까지나 영어는 내가 모국어와 다르게 어려운 시간을 투자하면서 습득한 제2의 언어이다. 그리고 내 영혼에 가까운 느낌이나 생각은 영어로는 100% 표현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싫든 좋든 언어를 사용한 양으로 치면 지난 10년 간 영어가 한국어를 압도한다. 그리고 인류학은 한국어로 공부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가끔은 한국어로 인류학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나 어색하고 뭔가 어휘의 한계가 느껴질 때도 있다. 심지어 인류학에 대해서는 영어로 생각하고 그걸 번역한다는 느낌이 들 때도 강하다. 이와 비슷하게 영어로 처음 접하고, 또 영어를 사용하여 배우거나 습득한 것들에 대해서는 한국어로 말하는 것보다는 영어가 편하다. 케냐 사회나 난민 정착과정과 같이 미국 생활과 케냐 생활을 하면서 공부하고 일했던 주제들은 한국어로 말하라고 하면 말이 짧아지고, 영어로 말하면 정말 풍부하게 말할 수 있을 때도 있다.


언어 인류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인 사피어-워프 가설처럼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사람의 사고가 결정된다는 쓸데없이 어려운 말까지 들먹거릴 필요가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나는 영어로 토론하고 대화하는 것에 목이 마르다. 어떻게든 영어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에 과외까지 하고 또 영어로 이야기하는 모임에도 나가는 중인데,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 가지 궁리를 하게 된다. 그러면서 또 한편 한국에서 영어점수니, 영어회화니 등을 그렇게 부르짖으면서 이렇게 영어를 쓸 일이 없다는 것에 놀랍다는 생각도 든다. 대체 왜 한국사람들이 영어를 잘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유학을 나가야 하거나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면 이렇게까지 영어에 돈과 시간을 소모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게다가 이제 번역과 통역도 기술적으로 쉽게 되는 사회가 온다는데, 영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취업이나 승진의 척도로 이용하는 것이 과연 필요한 일일까.


쓰다 보니 이렇게 영어가 사회에 효용성이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는데, 사실 나의 요지는 내가 그냥 개인적으로 영어로 말을 하지 못해서 답답하다는 것이고, 가끔은 영어 수준에 비하면 반의 반도 안 되는 스와힐리어에 대한 목마름까지 동승하는 바람에 한국말로는 말을 실컷 해도 마음이 답답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영어로 수업이라도 하나 할 수 있으면 속이 시원하겠는데, 요즘은 시간강사 자리도 얻기 어렵다고 하니 이제는 독백이라도 해야 되는 것인가 싶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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