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Habari Kenya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한수 May 10. 2018

Hongera, Hongera

홍게라의 추억

2014년 2월, 부모님께서 케냐에 있는 나를 보러 오셨을 때, 우리는 남들 다 한다는 사파리를 하러 떠났다. 여러 번 케냐를 들락거렸지만 연구에만 몰두했지 여행에는 관심이 하나도 없었던 나는 (물론 비싸기도 했기 때문에) 나름 심혈을 기울여 현지 지인인 여행사 사장을 통해서 예약과 절차를 잘 처리해서 갔다. 처음 갔던 곳이 홍학으로 유명한 나쿠루(Nakuru)였는데, 국립공원 안에 있는 호텔에서 지내던 중에 정말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마구 터지는 일이 있었다.


저녁에 여러 가지 공연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열심히 먹고 있었는데, 근처에 있는 테이블의 커플을 위해 직원들이 케이크도 준비하고 폭죽을 터트리면서 노래를 불러주는 시간이 있었다. 생일인가 보다, 아니면 결혼기념일인가 보다... 그렇게 대충 넘어가려는데 호기심이 많은 우리 아버지께서는 가만히 있지 않으셨다.
 
"탱아, 스와힐리로 축하한다는 말이 뭐꼬?"
"아~ 아빠, 제발 그냥 가만 좀 있으시면 안 될까?"
"뭔데. 좀 가르쳐주라."
"아이 참. 홍게라(Hongera)라고 하는데..."
 
나의 말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기어이 그 테이블로 가서 "홍게라, 홍게라 (축하합니다, 축하해요)"를 연발하셨다. 웬 중국인(?) 아저씨가 나타나서 그런 인사를 하니 그 커플은 나름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 같았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텔방으로 돌아가면서 한 직원에게 아까 그 커플 오늘이 기념일이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직원은 "그게 아니고, 원래 이틀 이상 숙박하면 우리가 그런 서비스를 한다"라고 대답했다. 우리 셋은 한동안 얼마나 박장대소를 했는지 모른다. 특히 엄마와 나는 호텔 계단을 올라가지도 못할 정도로 한참을 주저앉아서 웃었다. 호기심천국인 우리 아빠는 결국 전혀 축하할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넨 이상한 외국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건 웃기기도 했지만 또 너무 우리 아빠스러운 일이었기에 더 우스웠던 것 같다.


요즘도 생일이나 누군가에게 축하 인사를 해야 하는 때가 오면 아빠와 홍게라의 추억이 떠올라서 혼자서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흐흐.


홍게라, 홍게라.

매거진의 이전글 세 친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