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편으로 마무리-
봉인해제와 함께 떠오른 그 34킬로라는 몸무게는 내 마음속에서도 꽤나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나는 벌써 4년이 흐르는 동안 감히 그 숫자를 꺼내서 생각해보거나 글로 써볼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 같다. 연구자랍시고, 인류학자랍시고, 섵부르게 가난을 논하고, 빈곤과 불평등을 논하겠다고 끄집어낼 수 있는 그런 숫자가 아니었다. 그 몸무게로 하루하루를 밀면서(스와힐리어에서는 어려운 삶을 "밀어낸다(sukuma)"는 표현을 많이 쓴다) 살아가는 S의 삶은 내가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고고한 언어로 떠들어댄들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그 숫자를 어떤 봉인처럼 마음 깊은 곳에 묻어버렸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번에 내가 겪은 급격한 체중저하는 그 봉인의 해제를 가져왔다. 화려한 건강검진 전문병원에서 00.0킬로라고 체중계 위에 떠오른 숫자를 읽었던 그 무미건조한 간호사의 목소리와 함께 말이다.
몸무게가 좀 미달이라고 S의 삶을 말로 글로 구현할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건 정말로 웃기는 소리이고, 약간은 원초적인 소리로 들릴 수도 있는데, 나는 내게 살이 없어지고 뼈가 튀어나오는 몸을 가지면서야, '아 이게 바로 S의 느낌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앙상한 그녀의 몸이 느꼈을 법한 느낌과 비슷한 느낌을 내 몸으로도 겪을 수 있었고, 그래서인지 나는 일상적으로 S가 어떤 감각과 경험을 했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무릎뼈를 덮는 살이 없어져서 양 무릎의 뼈가 옆으로 닿았을 때 느껴지는 그 불쾌한 통증. 어떻게 앉아도, 어떻게 누워도 뼈가 의자나 바닥에 닿아서 아픈 느낌에 몇 번은 고쳐서 앉거나 누워야 겨우 편한 자세를 찾을 수 있는 일상. 이 모든 것들을 그녀는 작고 캄캄한 오두막에서, 제대로 된 침상도 없었던 그 허름한 집에서 어떻게 겪어내고 살았을까. 대체 그 몸으로 출산은 어떻게 한 것이며 아이를 안고 보듬는 동안 여기저기 아픈 곳은 없었을까. 새학기가 돌아와서 학비를 다 내지 못한 큰 아이가 집으로 돌려보내지면 그 작은 몸이 부서져라 헐떡거리면서 학교로 뛰어가 선생들에게 사정을 하는 것은 또 어떻게 했던 것일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푼돈을 더 벌어보겠다고 머리에 이고 어깨에 지고(가끔은 둘 다 동시에) 나르던 포대들이 어깨뼈에 닿아서 몹시 아프지는 않았을까. 그러면서도 '너는 이렇게 무거운 것을 못 든다'며 내가 들어주려고 하는 것들을 빼앗아 들고, 그녀가 짐을 들고 가는 것인지 짐이 그녀를 매달고 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뒤를 따라가는 나를 돌아보면서 "라키니 니메슈쿠루 뭉구 (그래도 나는 신께 감사한다)"라며 환한 얼굴로 웃던 S. 내가 찾아가면 바닥에 앉는 것이 안쓰러워서 야단야단을 하며 의자를 내어주고, 집이 너무 가난해서 그 흔한 차 한 잔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워 형편이 나은 친척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던 그녀의 마음은 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내가 그녀를 만나는 동안 수요일이면 사다 나르던 웅가(케냐 사람들의 주식 우갈리를 만드는 옥수수가루)는 S와 그녀의 세 아이들이 먹기에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을 테다. 그렇지만 그녀는 내가 가방에서 꺼내놓는 웅가 한 봉지를 마치 큰 보물인 듯 귀하게 받으면서 고마워했다. 지금도 그녀가 내게 고맙다고 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아싼테 싸나, 타이. 아싼테 싸나. 뭉구 아쿠바리키 (정말 고마워, 타이. 정말 고마워. 신이 축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