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해제 3: 체중과 바꾼 봉인(중)

by 심한수

- 상편에서 이어서


2018년 7월 24일을 기점으로 약 두 달 동안 급격한 신체적인 변화를 겪었다. 체중이 빠져도 그렇게 빨리 많이 빠질 수 있는 줄 몰랐다. 두피에서도 손가락 끝으로도, 발톱을 통해서도 무엇인가가 쫙쫙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1분 1초 사이에도 몸이 삭는 듯한 기분이었다.


추석을 지내면서 상황이 좀 나아지기는 했다. 동네 00 내과 선생님의 진료가 뭔지 모르게 마음에 경종을 울린 것 같기도 했다. 남은 인생을 바치고 싶은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서 교류할 기회가 있었는데, 좀 더 오래 살면서 이 일을 해내고야 말겠다는 열정이 불타오르기도 했다.


몸을 챙기기 시작했다. 열심히 먹기도 했고, 웃을 수 있을 때는 마음껏 웃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정말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집에 체중계가 없어서 살이 붙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기분에 뭔가 나아지고 있다는 자기만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12월이 되었다. 생계전선에 변화가 생겼고, 나는 채용 관련 신체검사를 하게 되었다. 그런 종류의 신체검사로 돈을 많이 버는 것 같았던 화려한 병원에 들어가서 접수를 하고, 피를 뽑고, 엑스레이를 찍고, 시력과 청력을 검사하고, 드디어 체중계 위에 올랐다.


00.0킬로 네요. 평소 체중 맞으신가요?


체중을 담당하는 간호사의 무미건조한 정보전달은 한 0.3초가 걸렸을 것 같은데, 나는 그게 3분처럼 느껴졌다. 요즘 세상에, 깡마른 여성들의 몸이 온갖 미디어를 장식하는 세상에 그 정도 몸무게 뭐 별건가 싶을 수도 있는데, 나는 그게 너무나 낮고 낯설게만 느껴졌다. 뭐라 대답을 할 틈도 없이 다음 검사로 안내가 되어 체중계에서 내려오는데, 그러던 중에 갑자기 머릿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봉인해제!"


어릴 때, 사촌동생들이 열심히 보던 일본 만화영화에 <카드캡터 체리>라는 것이 있었다. 주인공 소녀 체리가 무슨 마법 같은 것을 부려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 와중에 항상 외치는 대사가 그거였다.


봉인해제.


그리고 머릿속에는 그녀의 몸무게가 떠올랐다. 내가 봉인처럼 꽁꽁 싸매어서 기억의 뒤편으로 애써 밀어놓고 있었던 S의 몸무게.


타이, 나 보건소에 갔는데, 몸무게가 34킬로 밖에 안 나간대. 몸무게를 늘여야 한다는데...


산더미 같이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서 짊어지고 팔아 몇 푼의 동전을 벌던 그녀의 몸무게. 어느날인가 흙바닥에 앉아 쉬던 중에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팔과 다리를 내밀면서 내게 들려주었던 그녀의 몸무게.


워낙 작은 체구이기도 했지만, 나는 나보다 두 살이 많은 나이의 그녀가, 세 아이를 출산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그녀가 가진 그 몸무게를 듣고 할 말을 잊었다. 담담하게 자신의 쇠약한 몸을 내게 펼쳐 보여주는 그녀를 나는 어떤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었을까. 그녀와 세 아이가 살던 캄캄하고 작은 나무집으로 매주 수요일이면 케냐 사람들의 주식인 우갈리(Ugali)를 만드는 재료인 옥수수가루를 한 포 씩 사다 나르기 시작했던 것은 아마 그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녀와 나의 몸에 대한 이야기는 하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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