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해제 2: 체중과 바꾼 봉인(상)

by 심한수

작년 7월 24일부터 상당한 양의 체중이 빠졌다. 엄청나게 더웠던 날로 기억한다. 날씨와 내 처지와 인생의 도전을 한꺼번에 감당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체중저하가 아주 급격하게 시작되었고, 2개월이 지난 9월 말 추석 즈음에는 성인 인생에서 체중이 최저점을 찍는 순간까지 치달았다. 그러니까 그건 10대 성장기 청소년 때의 체중이었다.


보통은 체중계 위에 잘 올라가지 않고, 체중도 늘 유지되는 편이었는데, 스스로가 생각해도 몸의 변화가 꽤 크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8월의 어느 날 체중계 위에 올라갔는데, 거기에 찍히는 숫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기는 소리지만 ‘살기 위해서’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밥알이 모래알 같았지만, 먹히지도 않는 음식들을 정말 꾸역꾸역 입속에 집어넣었다. 고깃국물 같은 것은 몇 컵이나 준비해서 쓴 보약을 삼키듯이 들이켰고, 비록 괴로움에 잠을 잘 수는 없어도 몸을 편히 하고 누워서 휴식을 취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9월 말이 되었는데, 다시 체중계에 올라가니 이번에는 눈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체중이 내려가 있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몸과 얼굴과 피부색은 소위 기아를 겪는 사람들을 연상시키는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기다가 추석 즈음에는 심한 감기몸살이 시작되어 몸상태가 정말 엉망이 되었고, 볕도 잘 들지 않는 작은 방에서 격한 기침에 시달리던 나는 내가 혹시 그 몹쓸 병에 걸린 것이 아닌가 싶은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설마 아닐 거야, 이건 망상이야.


그렇게 스스로를 밤마다 다독이기는 했는데, 젊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의 입장에서 이건 책임감의 문제라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내가 나가는 학교가 나 때문에 방송을 타는 것은 아닌가 싶은 두려움까지 내 코 앞에 닥친 어느 날,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우리 동네에서 평판이 좋은 00 내과를 찾아갔다.


00 내과 원장님은 환자들과 소통도 잘하시고 재밌는 의사 선생님인데 처음에는 그냥 감기려니 하고 나를 진찰하시다가 체중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얼굴을 확 바꾸셨다.


환자분, 이건 병적이에요. 오늘 받을 수 있는 검사는 다 받고 가세요.


내가 볼 때 원장님과 나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음이 분명함에도, 그 생각 속의 병명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물론 검사 결과를 봐야겠지만 뭐랄까, 원장님도 나도 그걸 말하는 순간에 그게 정말 벌어질 것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건 무슨 볼드모트도 아니고 참).


다음날은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이었고, 나는 집으로 내려가는 차에 몸을 실어야 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민폐(?)를 끼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스크도 단단히 하고 사람들을 피해(?) 다니며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저녁의 고속도로가 교통체증으로 복잡해지고 버스의 속력도 느릿느릿했던 어떤 시점에 눈을 떴고 마침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00 내과 원장님이었다.


별 문제는 없네요. 몸상태가 안 좋은 것 치고는 다 깨끗해요.


나는 원장님께 거듭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원장님과 나는 끝까지 그 병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마치 그 병을 겪었고 거기에서 완치라도 된 것 같은 안도감을 느꼈다. 딱딱했던 몸의 경직이 스르르 풀리는 느낌도 들었다. 뭔지 모를 기운이 몸속으로 돌아오는 것도 같았다.


그렇게 병에 대한 걱정을 겨우 해소하고 나니, 이제는 내 꼴을 보고 충격을 받을 엄마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자라면서 내가 이렇게 쇠약한 모습을 보였던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험난한 유학생활과 필드워크를 해내면서도 이런 꼴이 된 적은 없었다. 만 37년 동안 키운(?) 자식의 이런 모습을 엄마가 어떻게 감당할지에 대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중에 엄마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내 모습을 보고 눈물을 글썽였다고, 가늘어진 내 목에 선 핏대를 보고 너무나 충격을 받았었노라고 말했다. 이미 성인이 되어 품에서 내 보낸 자식이지만 몸이 그 모양 그 꼴이 되었으니, 자식을 키워본 적이 없는 내 입장에서도 엄마의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스스로를 보호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또 하면서 나는 2018년의 가을, 그러니까 나의 귀국 1주년을 맞이했다.


- 진짜 봉인 이야기는 중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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