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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Jul 10. 2016

God loves this skin

그 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루는 시내에 약속이 있어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마타투(케냐의 미니버스)를 기다리는데, 한 5개월 정도 전에 학교에 수업하러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났던 일본 수녀님을 다시 만났다. 마침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아서 같은 마타투를 탔고, 빈자리가 많이 없어서 맨 뒷자리에 함께 앉아 반갑게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수녀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나 어떻게 케냐에 일하러 오시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그런데 술에 살짝 취해서 냄새를 풍기던 차장이 내 옆자리에 앉아서 이런저런 말을 시키기 시작했다. 내 팔목을 건드리면서 "God loves this skin (신은 이런 피부[하얀 피부]를 사랑하신다)"이랜다. 술에 취해서 하는 소리로만 치부하기에는 또 뭔가 울분이 담긴 느낌이 들었다.


차장은 계속 그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나에게 시비를 좀 걸고 싶은 것 같았는데 나는 그냥 대충 웃으면서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다. 수녀님은 그런 내가 걱정이 되셨는지 마타투에서 먼저 내리시면서 "He is drunk (저 사람 술에 취했는데)"하시며 나를 계속 돌아보셨다. 수녀님께는 괜찮을 거라고 안심을 시켜 드리고 인사를 나눴다. 그렇지만 차가 나의 목적지인 종점에 가까워지면서 빈자리가 많아지고 주변에 동료 승객들이 없어져서 좀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앞쪽에 앉아 있던 어떤 아저씨 옆의 빈자리로 재빨리 가서 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차장은 내 옆으로 와서 뒤쪽 빈자리에 가서 같이 앉아 이야기를 하잖다. 허허. 그냥 여기 앉아서 이야기를 하자고 앉은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대신 그이를 내 건너편 자리에 앉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늘 나오는 이야기는 결혼 이야기다. 결혼했느냐, 케냐 사람하고 결혼해야 말도 늘고 오래 머물 수 있지 않겠느냐, 그리고 나는 어떠냐... 의 순서로 질문이 나온다. 외국에서 연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 질문에 일일이 불쾌한 반응을 보이기가 솔직히 좀 어렵다. 내 경험상 이런 질문을 받고 복잡하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은 그냥 결혼했다고 하는 것인데, 이것도 사실 한국 사람과 결혼했다고 하면 별로 효과가 없다. 그럼 여기서 다른 남편을 만들라는 말로 나를 놀리면서 계속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미 애를 낳아서 키우고 있는 마마 지쿠*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게 아니면 남편 이름이 오촐라(Ochola)**라고 했던 적도 있다. 나한테 궁금증이 동해서 장난을 치다가도 그런 대답을 들으면 다들 웃고 넘어갈 때가 많았다.


아 그런데 이 아저씨가 술기운이 너무 올라서 그런지 도무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신은 너와 같은 피부의 사람들만 사랑하신다고 계속 시비를 건다. 설상가상으로 옆자리 아저씨도 내려버렸다. 결국 내 옆에 와서 앉겠다는 이 차장을 향해 나는 그냥 복도 쪽에 앉아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고, 건너편에 계속 앉혀 놓고 동네 종점까지 이야기나 계속 들어줘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그리고 신은 모두를 사랑하신다며, 나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그 신을 변호했다.


그런데, 그의 몸에서 풍기는 술냄새에 머리가 띵해지고, 마타투가 움푹 패인 곳이 많은 도로 때문에 덜컹거리면서 우리 동네 초입으로 들어갈 무렵, 이 차장을 영원히 기억하게 될 일이 생겨버렸다.


앞 쪽에 벙거지 모자를 쓰고 아까부터 앉아 있던 덩치 좋은 아저씨가 다가와서 아주 느린 동작으로 스르르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리고 그 물건이 무엇인지 내가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찰칵'하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어느 순간 차장의 양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알고 보니 사복경찰"이었던 이 아저씨는 차장을 끌고 뒷자리로 가서 대화를 시작했다.


다른 승객들은 웃기도 하고 뒤를 슬쩍슬쩍 쳐다보기도 하면서 별 일이 아닌 듯이 반응했지만, 나는 약간 혼란을 느꼈다. '이게 혹시 나한테 트집을 잡은 것 때문에 벌어진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면 내가 가서 그 정도의 일은 아니라고 얘기를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뒤에서 들려오는 두 사람의 대화를 자세히 들어보니, 체포된 이유는 오늘이 아니라 어제 있었던 일 때문인 듯했다. 매일 마타투 운행이 끝나면, 마타투 차장은 그날의 수금을 버스 차주나 회사에 보고하고 가져다줘야 하는데, 아마도 이 차장은 어제 그 돈으로 삥땅을 친 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도 거기에 열을 받은 차주가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결국 차장은 마타투가 종착지에 가까워지자 마자 이 사복경찰에게 체포된 것이다.


마타투가 종점에 도착한 후, 사복경찰은 수갑을 찬 차장을 데리고 내려서 어디로 인가 사라졌고, 나는 그 정류장에 서서 방금 있었던 일들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뭔가 복잡하게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는데, 정리는 또 잘 되지 않는 그런 기분이었다. 차장이 신이 어쩌고 저쩌고 나에게 했던 이야기들도, 경찰에게 왜 이러냐며 하소연하는 모습도, 그리고 일본인 수녀님의 인생 이야기들도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마타투라는 같은 공간에서, 그리고 함께 덜컹거리던 시간 속에서 그렇게 얽혀버렸다.



*완지쿠(Wanjiku)라는 키쿠유(Kikuyu) 공동체에서 흔한 여자 이름의 애칭

**루오(Luo) 공동체에서 흔한 남자 이름이자 유명한 케냐인 인류학자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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