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Habari Kenya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한수 Jul 07. 2016

나이로비의 아이들이  버스를 타는 법

마타투(케냐의 미니버스)가 시내를 벗어나 교외로 접어들면, 정류장마다 같은 색깔의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우르르 서서 마타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이들의 얼굴은 “이번 마타투는 탈 수 있을까?”라고 말하는 듯, 간절함인지 기대감인지가 가득하다. 어떤 마타투 차장들은 자신들의 눈치를 보며 서 있는 아이들을 쳐다보면서 혀를 끌끌 찬다. 차장들에게 아이들이란 일단 타면 쫓아낼 수도 없고, 또 차비는 반밖에 안 내거나 조금밖에 내지 않아도 어떻게 하기가 어려운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보통 차장들은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매일매일 정해진 횟수만큼 만차로 운행을 해야 하고 또 차비를 정확하게 수금해서 내야 한다. 덕분에 아이들이 많이 타면 탈수록 차장들이 기본적으로 채워서 회사에 갖다 내어야 하는 돈이 모자랄 수도 있기 때문에 이들은 아이들을 태우는 것이 정말 달갑지 않다. 또 조금이라도 자기 호주머니에 돈을 남기려면 아이보다는 성인을 태우는 것이 분명 이익일 테다.


나는 언젠가 동네 아이들 세 명과 함께 마타투를 타고 시내에 나들이를 갔다. 붙어있는 두 좌석에 몸집이 작은 아이 세 명이 나란히 앉고 나는 건너편 자리에 앉아 마타투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아이들의 보호자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차장은 (보통 부모들은 차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아이들을 자기 무릎에 앉히고 가거나 세워서 태우는 경우가 많기에) 누가 돈도 안 낼 거면서 애들을 셋이나 앉혔냐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의 고함소리가 끝나고 나서야 내가 조용히 “니타리파 (내가 낼 거예요)”라고 말하니 그는 약간은 멋쩍은 표정을 짓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아이들이 차지한 자리 때문에 발생할 자신의 손해가 두려웠을 차장의 마음도 이해는 했지만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사라지는 그가 내심 못마땅하기도 했다.


많은 아이들이 하교하는 오후 4시가 되면 어떻게든 차장들의 눈길을 피해서 마타투에 올라타려고 눈치를 보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온몸으로 막고 성인들만 태우려는 차장들의 전쟁이 시작된다. 그렇지만 차장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에는 작은 몸집들을 이리저리 쑤셔서 탑승하는 데 성공하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만약 차비를 다 낼 수 있는 아이라면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가지만, 많은 아이들이 집에서 통학버스비를 낼 형편이 안되기 때문에 그런 경우는 보기 힘들다. 보통은 작은 아이 둘이서 성인 한 명의 차비를 내고 하나가 다른 하나의 무릎 위에 앉아서 가고, 그것도 안되면 셋이서 돈을 모아 내고 두 사람 자리에 셋이 앉아서 간다.


어떤 아이들은 돈이 충분히 있건 없건 일단 타고 보자는 정신으로 마타투를 타서 둘이서 혹은 셋이서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실밥이 터진 교복 호주머니 속의 동전들을 탈탈 털어 계산한다. "므나 페사 응가피? (너네 돈 얼마 있는데?)" 하고 물어보면 하나하나 20실링이요, 10실링이요, 하면서 근심 어린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가 막상 차장에게 낼 돈이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나면 얼굴이 환하게 바뀌면서 웃는다.


그렇지만 가장 흔한 경우는 돈이 충분하지 않아서 조금 큰 마타투의 복도와 앞뒤에 서서 가는 경우이다. 작은 아이들이 흔들리는 마타투 안에서 휘청휘청할 때마다 앞과 뒤 그리고 옆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의 가느다란 팔을 잡아준다. 운이 좋은 아이들은 마음씨 좋고 짐이 없는 아주머니들의 무릎 위에 앉아서 가기도 한다. 어떤 때에는 빈자리가 있어서 차비를 다 내지 않은 아이들이 차장의 눈치를 살살 보면서 슬쩍 앉기도 하는데, 엄한 차장들은 그럴 때마다 "시마마! 시마마! (일어서! 일어서!)" 하면서 눈치를 주고, 마음 씀씀이에 여유가 있는 차장들은 "케티, 케티 (앉아, 앉아)"라며 인심을 베푼다. 가끔은 차비가 있는 아이들이 한참 걸어가야 하는 친구들의 책가방을 두 개, 세 개 들고 타기도 하는데, 지퍼가 고장 나거나 끈이 떨어진 가방이 많아서 하마처럼 일을 크게 벌린 가방에서 가끔 책이나 공책이 쏟아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순간도 많다.


방금 마타투 창 밖으로 걸어가는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커다란 책가방 두 개를 품에 안은 아이는 나와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내 옆에서 휘청거리던 아이는 내가 내민 손을 보고는 쭈뼛거리다가 결국 내 무릎 위에 앉더니 금세 고개를 떨군다. 도로에 움푹 팬 곳이 많아서 쉴 새 없이 마타투가 덜컹거리는데도 아이는 세상모르게 잠이 들었다. 잠든 아이가 흘린 땀의 습기가 느껴지려던 무렵 마타투는 아이들의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옆에 서 있던 아이의 친구가 “암카 (일어나)” 하고 아이의 어깨를 흔들어 깨운다. 마타투 입구 근처에 있던 아이들은 또다시 차장의 눈치를 보면서 재빠르게 뛰어내린다. 좁은 복도에서 커다란 책가방과 함께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들은 좌석에 앉아 있는 어른들의 손과 손을 거쳐 겨우 입구로 향한다.


아이들은 마음이 급하다. 보통 차장들은 운행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정류장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것도 무척 싫어하는 법이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전쟁’을 했던 차장이 작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내릴 수 있도록 손도 잡아주고, 더 작은 아이들은 번쩍 들어 올려서 내려준다. 그리고는 마타투를 가만 두지 못하고 부릉부릉 거리는 기사에게 외친다. “응고자, 응고자. 와토토 웽기 와나슈카! (기다려, 기다려. 내리는 애들 많아!)” 그는 시간도 알고, 돈도 아는 사람이겠지만, 아이들을 챙기는 법도 아는 차장이다.  하지만 아마도 내일 오후 아이들의 하교시간이 돌아오면, 또 마타투를 타려는 아이들과 아이들을 막아서려는 그이의 실랑이가 벌어질 테다. 돈은 돈대로 벌어야 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챙겨야 하는 차장은 너무나 신경이 쓰이겠지만,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음에 안도하고 얼마 없는 동전을 만지작거리면서 흔들리는 마타투에서 휘청거릴지도 모른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수정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God loves this ski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