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이는 쓰레기를 뒤지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내가 찾고 있던 여인의 오빠였다. 그에게 다가가 나 지금 누구누구를 찾고 있다고 하니 그이는 주먹을 내밀면서 인사를 건넸다 (흔히 고타(gota)라고 부르며 주먹을 마주치는 인사 방법. 주로 남자들이 많이 하는 인사인데, 나는 처음 케냐에 갔던 시절에 이게 뭔지 몰라서 상대가 내민 주먹을 손바닥으로 감싸서 억지로 악수를 했던 우스운 기억이 있다). 쓰레기를 뒤지던 손이라 악수를 하는 대신에 내게 주먹으로 인사를 건네는 그에게 나도 주먹을 내밀어 인사를 했다. 나는 그이를 몰랐는데 그이는 여동생에게 들어서 나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사람들이 자신들을 초코라(Chokora*; 케냐에서 길에서 떠도는 아이들이나 쓰레기를 뒤지는 사람들을 비하하면서 부르는 말)라고 놀리는데 이렇게 인사하러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나중에는 잊지 못할 친구가 되었던 아이작과의 첫 만남이었다.
아이작과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지나가다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외국인인 내 모습이 뭔가 어색하고 멋쩍어서 그냥 엉거주춤 지나가는 때가 많았는데, 그이는 한 사람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인사를 하고는 했다.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아주 중요한 의식인 듯 인사를 잊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그의 모양새를 싫어하거나 겁내는 사람들이 바짝 얼어서 인사에 답도 하지 않고 지나가면, 나는 또 무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는데, 그는 또 그냥 웃으면서 넘어가고는 했다.
아이작은 함께 한참을 걷다가 쉴 때, 내게 목이 마르지 않느냐, 배가 고프지는 않으냐고 늘 물으면서 플라스틱이나 재활용 쓰레기를 팔아 버는 그 푼돈으로 길에서 파는 차이(케냐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밀크티), 오렌지, 바나나 따위를 사다 주고는 했다. 나는 그렇게 받은 오렌지나 바나나가 너무 귀하게 느껴져서 나중에 아이작과 여동생이 사는 집에서 엄마와 삼촌을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몰래 주려고 가방에 숨기고는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결국 아이작에게 들킬 때도 있었는데, 그는 "너 또 그거 애들 주려고 그러지. 애들 주지 말고 너 먹어"라면서 내가 오렌지를 까서 입에 넣는 것을 꼭 지켜보고는 했다.
케냐에서 난 참 많이 얻어먹었던 것 같다. 하루 수금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으면서도 구운 옥수수니 사탕이니 사다가 나와 같이 먹으려고 하는 마타투(Matatu; 미니버스) 차장 소년들이 있었고, 외상을 달고 사는 인생이면서 구멍가게에 앉아서 내가 먹는 빵을 자기 앞에 달아 두라고 말하는 삐끼 총각도 있었다. 시장 구석에서 집도 없이 살아가던 아저씨는 가만히 내 앞으로 다가와서 오렌지 세 개를 내밀었고, 나를 그저 길가에서 만났을 뿐인데 멀리서 온 친구에게 대접하고 싶다면서 진득한 차이를 대접하는 아저씨, 아줌마들도 있었다. 그 밖에 파인애플이나 망고, 오렌지 등을 내 손에 쥐어주고 갔던 사람들은 셀 수가 없이 많다.
너무나 가난하면서도 그 와중에 많은 것을 나누려고 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일렁거린다. 많이 가진 자만이 나누는 것이 아니다. 물질적인 여유가 있어야만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눔이란 남과 기꺼이 나누겠다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우리의 선택이다.
* Chokora를 영어로 번역하면 scavenger, 즉 먹을 것을 찾아서 쓰레기나 버려진 것들을 뒤지는 동물 또는 사람을 의미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의 블로그에 실린 글을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