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Habari Kenya

케냐에서 만난 중국 1

케냐에서 중국인이 되다

by 심한수

저녁 5시가 넘어 귀가를 할 때면 버스에서 Ciku(완지쿠(Wanjiku)라는 케냐에서 흔한 여성 이름의 애칭)라는 디제이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을 들을 때가 많았다. 제목은 영어로 Busted! 였는데, 번역을 하자면 "딱 걸렸어!"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방송은 기본적으로 불륜 또는 바람을 피우는 사연을 전화로 연결하여 자세하게 캐는 몰래 라디오였다. 그러니까 보통 청취자가 보내오는 사랑, 연애 관련 사연을 선정하여 그 청취자가 의심하거나 불만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연인이나 배우자)에게 완지쿠가 신분을 숨기고 전화를 걸어서 그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었다. 버스에서 몇 번 이 방송을 들으면서, 좀 웃긴 이야기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도 같이 듣는 승객들이 웃을 때 따라 웃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실 이거 굉장히 잘못된 거잖아'라는 생각에 불편함을 느낄 때도 있었고, 사생활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항의하지 않을까 궁금하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연관(?)되는 사연이 나오는 바람에 케냐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또 하나 추가한 일이 생겼다.


그날의 사연은 이러하다. 사연을 보낸 남자는 여자 친구를 의심하고 있었다. 이 여자 친구가 최근 케냐에서 도로를 건설하는 일을 하는 중국인 첸리라는 인물을 만나서 바람을 피우고 있는데 대체 진도가 얼마나 나갔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디제이 완지쿠가 사연을 여기까지 설명했을 때, 나와 함께 버스를 탄 사람들이 이미 마구 웃기 시작했고, 시선은 33인승 버스를 채운 승객들 중에 유일한 한국인이었지만, 또 '중국인'이었던 나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서서히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약간 과장해서 내가 그 첸리의 사촌이라도 된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건 전초전에 불과했다.


그 남자의 요청을 수행하기 위해서 디제이 Ciku는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 첸리의 어머니인 척하면서 엉망진창의 문법과 중국어 억양을 마구 흉내내기 시작했다. 버스 안은 이런저런 웃음소리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그 버스에 있었던 '중국인'인 나는 무슨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기사가 제발 라디오 채널을 좀 돌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었다. 결국 첸리의 어머니를 가장했던 디제이는 이 여성으로부터 첸리와 결혼하고 싶고, 중국에 가서 살고 싶다는 대답을 끌어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서 이 여성과 사연을 보낸 남성을 즉석에서 전화연결을 시켰다. 이후로는 심지어 그 두 사람의 말싸움까지 방송이 되었는데, 이 과정 내내 버스는 웃음바다가 되었고, 내 옆자리 승객들과 앞뒤에서 내 존재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나를 흘끗거리면서 쳐다보고 웃기 시작했다. 여기에다가 디제이는 결정타를 날렸다. 이 사태가 종료된 후 그녀가 특별히 선정한 음악은 바로 영화 <쿵푸판다>의 주제곡 "쿵푸 파이터"였고, 도로공사를 하는 중국인들에게 헌정한다고 덧붙이는 것이 아닌가. 이 선곡에서 사람들은 지금까지 웃었던 것보다 더 크게 웃었다.


음악이 끝나고 방송에서 연결한 청취자들은 모두 디제이를 칭찬했다. "You made my evening (덕분에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냈다)"거나 "Your Chinese English was so wonderful (너의 중국식 영어가 정말 좋았어)" 등의 반응이 나왔다. 그런데 나는 왠지 억울했다. 사실 그 중국인은 등장하지도 않았고, 바람은 같이 폈는데 결국 디제이의 어설픈 중국식 영어 때문인지 마치 중국인을 우습게 만드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왜 나는 중국인도 아닌데 하필이면 버스라는 공간에서 중국인 대표로 이 상황의 묘한 '주인공'이 되어야 했는지.


(이날의 방송은 지금도 유튜브에 "Busted Chinese (걸려든 중국인)"라는 제목으로 올라가 있다. 중국인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았는데 저런 제목을 쓴 것도 생각해 볼 부분이다.)


나는 여러 가지 정체성들의 충돌을 느끼면서 이 상황을 내면적으로 열심히 고민했다. 그 버스 안에서 나는 한국인이었고, 또 나는 중국인 취급을 받는 동양인이었고 (그러니까 사실상 중국인이기도 했다), 또 나는 인류학자였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불편함을 느꼈고, 맥락적으로 중국인(동양인)으로서 불편함을 느꼈고, 또 나는 인류학자로서 위와 같은 불편함을 느끼는 나에 대해서도 불편함을 느꼈다. 뭔가 디제이에게 전화라도 걸어서, "당신 지금 엄청나게 인종주의적인 일을 했다"라고 화를 내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케냐에서, 인종적인 편견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그곳에서 이런 농담인지 장난인지를 들었다는 것에 어떤 실망감인지 배신감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쾌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심지어 그 다음날이 바로 영국으로부터 독립 50주년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케냐에서 나는 아침저녁으로 "칭총, 칭총 (중국어 소리를 흉내 내는 소리)"으로 나를 부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살았다. 길거리에서 떼를 지어선 오토바이 택시 기사들이나 버스 승객들을 불러 모으는 일을 하는 호객꾼(보통 마캉가(Makanga)라고 한다)들이 나에게 다가서면서 우르르 이렇게 부를 때면, 솔직히 도망가고 싶을 때도 많았다. 칭총 대신에 "시스터"라는 여성에 대한 보편적인 호칭으로 나를 불러주는 사람들에게는 고맙다고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내 앞에서 가라데니 쿵푸니 자기가 아는 것이 있다면서 팔다리를 휘두르며 시범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고, "너희는 모두 쿵푸를 하지 않느냐," "너희는 왜 다 똑같이 생겼느냐," 그리고 "중국에서는 어떻게 아이를 하나밖에 못 낳느냐"는 등의 중국과 관련된 상당히 많은 질문들을 받아봤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이 영어나 스와힐리어를 하지 못하는 중국사람을 나에게 데려와서 통역을 좀 하라고 부탁한 일도 있었다.


내가 '중국인'이어서 겪는 이런 일들이 너무나 많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냥 대충 넘기는 수준에 이르기도 했다. 솔직히 하루에도 열두 번은 겪었던 일이어서 그냥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하는 것인 양 취급하면서 무심히 지나쳤던 것 같다. 당시에 하고 있던 연구가 인종이나 정체성과는 무관한 부분도 있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었음에도 등한시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케냐에서 연구를 하는 동안에 '칭총'으로 대변되는 나의 '중국인'으로서의, 그러니까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서 도망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중에 접한 중국인과 케냐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 때문에 생긴 뉴스는 이 고민을 좀 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케냐에서 만난 중국 2>로 이어집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