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의 삶에 대한 두 영화
2007년 여름에 유학을 떠나기 전에 신촌 아트레온에서 여성영화제가 있었다. 그때는 영화제 영화들도 거의 평론가 모드로 봐야 된다는 묘한 사명감에 불타던, 참으로 피곤하게 살았던 시절이었다. 영화도 좋은 영화를 열심히 봐야 한다는 생각에 펜을 들고 심혈을 기울여 몇몇 영화를 선정했던 기억이 난다. 그중의 하나가 <동백아가씨>다. 소록도에서 70년이 넘는(지금은 아마도 80년) 인생을 살아온 이행심 할머니의 생애사를 따라가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역사적으로 소위 문둥병이라고 불리는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기피의 대상이었다. 한센병으로 나타나는 신체적인 변화와 병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시절, 한반도의 한센인들도 사회적인 놀림과 멸시를 당했다. 하지만 그들이 본격적으로 신체적인 구속을 당하기 시작한 것은 이 땅이 식민지이던 시절이다. 일제는 남달랐다. 마치 식민지 사회를 "청소"하는 듯이 한센인들을 모아 소록도에 격리시켰다. 제국주의 시대의 영국이 식민지 인도의 한센인들에게 저지른 것과 상당히 비슷한 전략이었다.
그 소록도에서 가족들은 이산과 통제를 겪어내야 했다. 미감아라고 불리던 감염되지 않은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떨어져야 했고 성인들은 강제로 생식능력을 제거당했다. 시 '파랑새'로 유명한 한하운 시인도 이들 중의 하나로 알려져있다. 소록도의 한센인들은 사회의 건강을 명목으로 실현하는 개인의 몸에 대한 극단적인 통제 속에서도 삶을 이어간 생존자들이었다.
서설이 길었는데, 아무튼 <동백아가씨>는 그 모든 역사를 이행심 할머니의 삶과 노랫소리를 배경으로 따라간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다. 할머니가 임신을 숨기고 필사적으로 아들을 낳아 살려내기 위해 애쓴 사연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쏟았던 기억도 난다. 나는 지금도 <동백아가씨>를 들으면 이행심 할머니 생각을 한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소록도에서 40년 넘게 봉사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된다며 몰래 돌아가버린 큰할매와 작은할매에 대한 이야기다.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이자 수녀인 마리안느와 마가렛, 그들의 가족, 그리고 그들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현재와 과거를 따라가는 이 다큐는 케냐에서 인연을 맺은 지인이 참여한 작품이라서 더 챙겨보게 되었다.
두 수녀님의 이야기는 이미 신문과 뉴스로 많이 알려져 있었다. 참 세속적인 질문인지만, 그토록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 어떻게 소록도를 선택하고 그곳을 집으로 삼는 소명을 받아들였던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훈장이니 노벨상이니 떠들썩한 주변 공기 속에서 두 분은 소리 없는 대답을 전한다. 마치 가던 길에 산이 있어 그냥 그 산을 기꺼이 넘었을 뿐이라는 듯이. 전쟁의 폐허였던 한국에서도 또 더더욱 외진 땅이었던 소록도에 발을 디딘 두 수녀님은 당신들의 육신에 불편이 찾아오기 전에는 한센인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오스트리아의 추운 겨울을 뒤덮는 하얀 눈 위로 소록도 사람들이 평생 잊지 못할 두 할매의 미소가 마치 시처럼 담담하게 그려진다. 모두를 예수로 섬기는 것이 그토록 당연했던 두 할매를 보면서 오랜만에 동백아가씨 이행심 할머니의 노랫소리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