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백의 그림자>를 읽고

by 심한수

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들 중에 연락을 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국민학교와 중학교도 같이 나온 친구들이다. 우린 묘하게 정체성이 강한 동네 출신 아이들이었다. 말투도 달랐고 봉고차문화도 달랐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마산으로 나가는 봉암다리 어귀가 잠기면 학교에 늦게 도착하는 것은 우리동네 애들 뿐이었다. "너네 양곡애들만 늦었다"라고 말하던 담임선생님의 말이 다 기억난다.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나는 고등학교만 같이 다닌 친구가 거의 없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고등학교만 같이 나온 친구 중에 내가 나보다 더 신뢰할 때가 많은 친구가 딱 하나 있다. 책을 사랑하고 책을 만드는 친구다.


친구가 너무 좋아하는 소설이라면서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를 읽어보라고 빌려줬다. 유명평론가들을 움찔하게 할 문체였다. 단숨에 읽었지만 뭔지 모르게 압도당했다. 특색이 있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무서우면서도 싫지 않은 느낌이랄까.


소설 속에서 사람들이 지치고 힘겨울 때 그림자가 꿈틀거리면서 일어난다. 그건 끔찍할 만큼 두려운 상황으로 묘사되는데 그럼에도 사람들은 밥을 먹고 사랑도 하면서 살아간다.


너무나 춥고 피곤했던 어느 날. 혹시 내 그림자도 달아나지 않을까 잠시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