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군을 위한 수어 프로젝트 3

P군, 나의 오래된 미련을 일깨우다

by 심한수

우리는 P군의 의사를 정확하게 알 도리가 없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가 미국 수어를 배우고 싶다는 의사를 확인했다. 그의 부모님과 가족들도 그 선택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이어서 N교수는 P군이 자신이 가르치는 미국 수어 입문반을 청강생으로 수강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P가 학교로 찾아갈 수 있도록 봉사자를 찾았고, P는 언제나처럼 혼자서 건물을 잘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예상치 못한 큰 난관에 부닥쳤다. 청각장애를 가진 난민 청년이 미국 수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착한 이야기를 은연중에 기대하고 있었던 우리의 바람을 심각하게 재고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던 것이다. P군은 N교수의 수업을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그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P와 같은 특수한 입장에서 세상을 보지 못하는 우리의 탓이라면, 탓이기도 했다.


N교수의 수업에 들어오는 청인 학생들은 비록 수어를 처음 배우는 친구들이기는 했지만, 공용 언어라는 것을 배우고 그것을 통해 사회 속에서 소통해 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한 언어를 배운 사람이 다른 언어에 대해서 이해도가 빠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논리이다. 하지만 P군은 달랐다. 그는 단 한 번도 모어라든가 공용어를 사용해본 적이 없었고, 타인들과 그것을 공유해 본 적도 없었다. 물론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이런저런 소통방식을 20여 년 동안 발전시켰지만, 그것으로 언어를 통한 소통 체계를 경험해봤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었다. 말하자면, P군은 한 번도 언어를 가져보지 못한 상태로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그런 사람에게 갑자기 미국 수어라는 체계화된 언어를 주입시키는 것은 무리수였던 것이다.


N교수와 나는 함께 반성했다. 그리고 P군에게 수어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조금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P군의 동료 교수이자 언어 습득의 전문가인 K교수와 의논도 했고, P군만을 위한 맞춤 교육을 마련하기로 했다. 굳이 미국 수어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해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수어'를 끌어내면 그다음부터는 미국 수어를 토대로 다듬는 훈련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내가 떠날 날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 더 일찍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가 떠나기 전에 P군과 N교수가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떠나기 전까지 P군이 어떤 방식으로든 수어의 표현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지만 그건 안타깝게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가끔 N교수와 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P군이 드디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떤 수어적인 표현들을 해내고 있다고 들었다. 그건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 수어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바디랭귀지 형태로 누구든, '아... 그걸 말하는구나' 하는 정도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손을 맞대고 지붕모양을 만들어 보여주면 집을 의미하는 것이 그 예이다. 그런 작은 변화 조차도 너무나 크게 느껴질 정도로 P군의 침묵은 길고 길었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P군의 도전을 읽어내는 능력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P군은 이제 수어의 세계에 발을 디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내 차례라는 생각을 했다. P군의 도전을 보면서 예전에 배우다 말았던 한국 수어를 다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한글 지화를 제외하고는 다 까먹어 버렸지만, P군을 생각하면서 다시 배워보려고 입문반을 신청했다. 내가 P군을 돕겠다고 설쳐대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그가 수어에 대한 나의 오래된 미련을 다시 깨워준 셈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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