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 엄마들

by 심한수

오늘 선배 인류학자가 일하는 곳에 갔다가 굉장히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그분이 일하는 곳과 같은 건물에서 일하고 있는 민주콩고 출신의 난민, 마마 자와디(가명)를 만난 것이다. 그녀는 내가 미국을 떠나서 한국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만난 콩고 사람이었다. 바로 6개월 전에는 매일매일 만나서 콩고 엄마들과 일했었는데 그게 까마득한 과거처럼만 느껴지는 요즘이었기에, 마마 자와디를 만난 것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선배가 나를 마마 자와디에게 소개했고, 내가 케냐에 살다왔다고 하자 그녀는 커다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는 큰 목소리로 "하바리 (Habari,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나는 "살라마 사나 (Salama sana, 평안합니다), 하바리 야코 (Habari yako, 당신은 안녕하십니까)?"라고 되물으며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난다).


그 얼마나 그리웠던 말인가. 아줌마와 나는 서로 얼싸안고 소리를 질렀다.


사실, 한국에 있는 민주콩고(콩고 민주공화국) 난민들은 대부분 수도 킨샤사(Kinshasa) 지역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망명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거대한 나라의 동부에서 많이 쓰이는 스와힐리어를 할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마마 자와디의 어머니는 그 동부의 한 지역 출신이었고 그녀 자신도 케냐에서 생활한 적이 있어서 스와힐리어가 유창한 사람이었다 (스와힐리어는 케냐와 탄자니아를 비롯한 동아프리카 전역에서 많이 쓰인다). 우리는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스와힐리어를 모두 섞어서 한참 수다를 떨었다. 콩고가 전쟁으로 아수라장이 되면서 그녀의 가족들은 전 세계 곳곳으로 정치적 난민이 되어 흩어졌다고 한다. 어쩌다가 한국까지 흘러온 그녀는 길고 긴 고생 끝에 난민지위를 얻었고 이제는 콩고 사람이라기보다는 한국사람 같은 아들을 키우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바로 6개월 전까지 나를 므왈리무(mwalimu, 선생님)라고 부르며 함께 미국 생활을 공부했던 수많은 콩고 엄마들과 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부분이 전쟁과 자원을 둘러싼 갈등으로 산산조각이 난 북키부(North Kivu)와 남키부(South Kivu) 출신이어서 그 지방의 스와힐리어 사투리로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면서 내가 그 보다는 표준어에 가까운 나이로비식으로 스와힐리어를 하면 그게 우습다고 깔깔거리던 그이들.

오늘따라 많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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