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에 빨래하러 간 사연
최근 일터에서 30분 걸리는 곳으로 이사했다. 약 5개월만에 편도 1시간 30분의 통근길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소위 말하는 지옥철은 유학 전에도 겪어보았던 일이지만, 다시 돌아와서 10년 만에 겪어보니 역문화충격 수준으로 괴롭고 힘들었다. 대출에, 발품에, 개인적으로는 꽤나 고민과 고생을 하고, 반지하를 가까스로 피해서 작은 원룸을 구해 약 2주 전에 이사를 했다.
그런데 원룸에 딸려있는 통돌이 세탁기가... 10년도 더 된 느낌에 너무나 더러워서 도무지 사용할 수가 없었다. 혼자 씻고 닦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집주인에게 내가 새 세탁기를 구매하겠으니 오래된 세탁기는 좀 꺼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젊고 합리적인 집주인이 새 세탁기를 사서 넣겠다고 해줘서 반가운 마음으로 세탁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탁기가 오면 빨래를 할 요량으로 가지고 있던 모든 옷을 다 끄집어내서 입다가 드디어 오늘 한계가 왔다. 일단 가진 옷이 거의 없기도 했다. 나는 앞으로 험지에 가서 일할 계획으로 지난 1년 이상 구직활동을 했고, 또 나의 열정과 학력과 경험으로 그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기에 (착각이었다) 옷도 거의 기부하거나 없앤 상태였다. 심지어 내일은 2박 3일의 여행까지 앞두고 있었기에 오늘 빨래를 안할 수가 없었다.
옷과 수건 등을 여행용 트렁크에 차곡차곡 넣어서 길을 나섰다. 걸어서 20분이 넘는 거리에 있는 동전 빨래방을 목표로. 그런데! 그 빨래방은 흔적도 없었다. 폐업을 한 것인지 검색한 정보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소위 말하는 멘붕이 왔다. 한밤중에 어디인지도 잘 모르는 동네에서 빨래가 가득한 여행가방을 들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빨래방을 찾아가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다.
후자를 선택해서 버스에 올라 10분 거리에 있는 빨래방으로 향했다. 그 빨래방이 요즘 소위 핫하다는 연남동 한복판에 있는 것은 나중에 깨달았다. 유학을 나간 사이에 뜬 동네이기에 나에게는 첫 입성이었다. 멋진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과 예쁜 가게들 사이에 나는 부시시한 모습으로 빨래가 든 여행가방을 돌돌 끌면서 외국인 관광객인 듯 걸었다. 여행가방을 끌고 숙소를 찾는 진짜 관광객들이 있어 다행스러웠고 이상한 동지의식이 느껴졌다.
빨래는 이제 건조기 안에서 돌아가고 있다. 이제 곧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묘하게 우스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