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는 다 담아지지 않는 그 아침
이른 아침, 마타투(Matatu, 미니버스)를 타러 나가는 길은 언제나 어둑어둑했다. 아침을 제대로 못 먹은 사람들을 위해 바나나나 삶은 계란 따위를 파는 노점상들과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정류장은 늘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였다. 여기저기 뜨거운 차이(Chai, 밀크티)를 끓여 파는 사람들이 피우는 연기 사이사이로 마캉가(Makanga, 삐끼)들이 마타투를 꽉꽉 채우기 위해 지르는 호객소리가 파고들었다. 그렇게 삐끼들이 손님들을 불러 모으면, 차장들은 움직이는 마타투 몸체에 체조선수처럼 유연하게 달라붙어서 빈틈없이 승객들을 채워 넣었다. 될 수 있으면 한 명이라도 더 채우는 것이 중요했다. 그 와중에 거리의 설교사들은 교통안전을 기원하면서 성경을 흔들며 큰 소리로 기도를 하고, 승객들이 사다카(Sadaka, 헌금)로 채워준 동전을 짤랑거리면서 걸어 다녔다.
파란색이나, 초록색, 또는 갈색의 교복을 입은 작은 아이들이 걸어서 학교로 가는 모습도 보였다. 엄마나 유모의 손을 잡고 가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비슷한 또래끼리 함께 손을 잡고 가는 아이들도 많이 보였다. 아이들이 신고 있는 검정 구두는 분명히 전날 밤에는 광이 나도록 닦았을 테지만, 길가의 진흙과 먼지 때문에 이미 더러워져 보였다.
시계가 6시 정도를 가리키면, 내가 올라탄 마타투가 악명 높은 나이로비의 교통체증 속으로 들어갔다. 걸어가는 사람들은 마치 느릿느릿 움직이는 자동차들과 함께 박자라도 맞춘 듯, 그 사이사이를 파고들어 자신들의 길을 만들었다. 잠깐 차들이 속력을 내어 움직일 때면 그 자리에 잠깐 멈춰야 했지만, 그 사이에 바뀐 미로 같은 틈들을 따라서 결국에는 원하는 경로를 만들어 움직였다. 파고들 공간이 없어 보이는 공간에도 절묘하게 파고 들어서 차들과 차들 사이를 탐색하여 지나갔다. 정말로 꽉 막혀서 교통체증이 심한 순간에는 주로 젊은 남성들인 노점상들이 그 교통체증의 늪에 뛰어들어 온갖 물건들을 팔기 시작했다. 과일이나 생수, 심지어는 그림액자나 작은 가구들도 팔아댔다.
길가로 눈을 돌리면, 재활용 금속이나 나무들로 멋들어진 침대나 탁자들을 만들어 파는 주아칼리(Jua Kali, '사나운 해'라는 뜻으로 햇빛이 강한 야외에서 수공업 제품을 만드는 노동을 의미) 상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보통의 케냐 사람들은 비싸서 사기 어려운 그 제품들은 주로 나이로비의 서쪽에 거주하는 백인들이나 부유한 외국인들이 주요 소비자들이었다. 주아칼리의 반대편 길가에는 다 떨어진 포대를 끌고 다니는 남자와 여자들이 보이곤 했다. 아마도 깜깜한 새벽에 나와서 플라스틱이나 깡통 등 재활용 물건을 매입하는 업자에 팔 수 있는 물건들을 주으러 다니던 사람들인데, 빛이 밝아오는 그 시간 즈음에 그들의 포대는 이미 꽉 차서 더 이상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일 때가 많았다.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동네들의 어귀에는 노란색이나 파란색의 플라스틱 물통들을 가득 실은 므코코테니(mkokoteni, 리어카의 일종)도 많이 보였다. 그 무거운 손수레를 끄느라 지친 모습이 역력한 일꾼들이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보면 마타투 안에 구겨진 듯이 앉아 있는 내가 왠지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조금 더 버스가 나아가면 이런저런 공사판에서 일당을 받고 일하기 위한 남성 노동자들이 와글거리면서 서있는 인력시장이 보인다. 말이 인력시장이지 그냥 버스 정류장 한 퀴퉁이인데, 건물이나 도로 공사 현장으로 가는 트럭들이 멈춰 서고, 책임자가 사람들을 부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르르 달려가서 트럭 뒤에 올라탔다. 가끔은 어떻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탔을까 싶을 정도로 꾸역꾸역 이리저리 서서 트럭의 난간을 잡고 서있는데, 그러면서도 버스 창 너머로 보이는 하얀 내 얼굴을 알아보고, 반갑다고 손을 흔들면서 인사를 하는 그 케냐 사람들에게 나는 차마 웃으면서 손을 흔들지 못했던 적도 몇 번 있었다.
시내에 도착해서 마타투에서 내리면, 또 다른 거리의 경제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시끄러운 소음과 매연, 그리고 사람과 차들로 가득한 그 거리를 걸어가면 책과 신문을 늘어놓고 파는 노점상들과 여기저기 쭈그리고 앉아서 구걸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침부터 진흙과 먼지투성이가 된 사람들의 신발을 닦는 남녀 노동자들이 즐비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신발을 닦는 사람들이 정말 몇 배로 많이 나와서 줄을 지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저 천조각 하나와 물을 담을 수 있는 양동이 하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비가 오는 날에는 그렇게 푼돈을 벌러 나오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 복잡한 중심가를 헤집고 나와서 도심 외곽의 길가로 나가면 외국에서 수입한 중고 옷이나 신발들을 가득 늘어다 놓고 파는 사람들이 보였다. 보행자들이 다닐 공간이나, 외국의 원조로 번듯하게 만들었지만 쓸모가 없었던 자전거 도로까지 점유하고 열심히 물건을 팔던 그이들은 어디선가 단속공무원들이 나타나면 잽싸게 물건들을 싸 짊어지고 도망치는데도 참 능숙한 사람들이었다.
그 모든 움직임과 갈등, 노동과 빈곤이 담긴 공간 속에 내가 있었다. 끊임없는 움직임을 나의 움직임으로 따라잡으면서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생각을 하고, 또 맛을 보았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쉴 틈이 생기면 손가락이 부서져라 볼펜을 움켜쥐고 필기를 했다. 모자라지 않을까 싶었던 그 기록의 반의 반도 졸업논문에 집어넣지 못해서 현장연구 내내 긴장 속에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것이 약간은 후회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