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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Apr 20. 2018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와이오밍으로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락스프링스까지

바스러진 등산화로 요란하게 여행을 시작하고, 또 급하게 산 얄팍한 운동화를 신고, 그렇게 와이오밍으로 들어가기 위해 미국 장거리 버스 그레이하운드를 탔다. 처음 타는거라 놓칠까봐 걱정이 되서 일하는 아저씨들 두 명과 줄서있는 몇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고 약간 부산스럽게 돌아다녔다. 아니 시간은 다 되었는데 덴버가는 버스밖에 없어서 아니 저는 와이오밍 락스프링스 가는데요, 거기가는 버스는 어디서 타나요, 물어봐도 다들 확실한 대답을 안주는거다. 알고보니 덴버가는 버스가 중간에 많은 정류장(이라고 해봐야  결국 주유소에 패스트푸드점이 붙어있는 형국)에 멈추는데 나의 목적지도 그 중의 하나였던 것. 심지어 버스도 표에 나온 시간과  다르게 30분이나 지나서 출발했다. 결국 나는 뭘 몰라서 호들갑을 떠는 동양여인네가 되고 말았다.
 
친구  KSP의 고향집은 와이오밍 남부의 탄광/가스 산업 중심의 소도시다 (이 말은 즉 기후변화를 믿지  않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곳이라는 말). 거기까지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렌트카나 자가용을 이용하는 편이라 나와 같은 목적지의 사람들은 5명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사람이 많아서 냄새나는 버스 내부의 화장실 옆에 앉을까봐 걱정을 했던 나는 다행히 타자마자 비어 있던 기사 아저씨 뒷자리에 앉아버렸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이런 장거리 버스여행에 '전문가'들인지 온통 담요 같은 것을 들고 파자마 차림으로 타자마자 잠이 들어 코를 곯기도했다. 나는 겨우 3시간 여행이었지만 어떤이들은 이런식으로 버스를 3대 혹은 심지어 4대나 갈아타고 미국을 횡단하기도 한다. 내 옆자리 아주머니도 오레곤에서 유타까지 한 번, 유타에서 콜로라도 덴버까지 또 한 번, 그리고 아마도 시카고 정도까지 한 번, 마지막으로 목적지인 델라웨어까지 길고 긴 경유를 하면서 여행하시는 중이었다.  

 

뭔가 황량하면서도 멋있었던 와이오밍의 경치


그런데  사실 이런 여행이 비행기 여행보다 싼 것은 아니다. 미국에는 중소항공사들도 많고 싼 비행기표를 구할 방법도 많아서 오히려 버스를  여러번 타고 동서부로 여행하는 것이 비쌀 수도 있다. 그럼에도 버스를 계속 이용하는 분들의 경우는, 먼저 나처럼 워낙 비행기 노선이 별로 없는 곳으로 가는 길이거나, 공항에서 신분증명을 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인 경우다. 예로 들면 노숙자나 이주노동자들은 돈이  생긴다고 한들 비행기를 타러 가기가 어렵다. 특히 미국 전역에서 일하는 멕시코 및 남미 출신의 '서류 증명이 안되는 (undocumented)' 미등록 노동자들은 그레이하운드가 일터를 찾거나 가족을 보러 갈 때 이용할 수 있는 장거리 여행수단인 것이다.   
 
스페인어를 쓰고 짧은 영어로 눈과 얼음에 대한 호기심을 표현하시던 옆자리 아주머니도 그런 처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눈덮인 경치를 쳐다보다가 또 졸다가 3시간이 훌쩍 지났다. 어느새 나는 목적지에 도착하여 마중나온 KSP와 얼싸안고 인사를 나누고 영화에서나 보던 미국 탄광산업 공동체에 관광객으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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