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언니의 일본어 기초반 수업에 따라갔다. 원래 언니는 짧은 방문을 하는 나와 시간을 더 보내기 위해서 수업을 빠지겠다고 우겼다. 하지만 언어 수업을 많이 들어봤던 내 입장에서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생소한 언어를 배우면서 그 첫 수업을 빠지면 진도를 놓쳤다는 생각에 중도에 그만두게 될 수도 있었다. 나는 언니를 수업에 밀어 넣으면서 일본어 회화와 히라가나 공부를 담당하는 선생님들에게 짧은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서 참관을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선생님들은 흔쾌히 허락해줬고 나는 구석자리에 살짝 숨어 앉아서 오랜만에 초급 일본어 수업을 청강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어떤 신부님께서 일본어 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말씀을 주셨는데 그게 꽤 인상적이었다 (물론 이건 내가 인류학자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신부님은 서양분이셨는데 거의 50년 전에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하셨다. 지금은 모국어만큼 편하게 일본어를 하시는데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깨달은 점을 공유해주셨다.
신부님 생각에 서양의 언어는 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런데 일본어를 배워보니 이 언어는 메시지 전달에 더불어 '관계 (relationship)'에 대한 언어라서 새로웠다고 하셨다. 영어라면, 어린아이에게나 어르신에게나 먹으라는 메시지를 같은 단어로 전달하지만, 일본어에서는 상대방이 나와 어떤 관계인지에 따라 그 표현이 많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건 물론 한국어에도 해당되는 부분이다).
그렇게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오랜만에 언어 인류학의 대가인 아시프 아가 교수님의 대학원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교수님이 쓴 책에도 일본어와 한국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존칭어의 세계를 설명하는 챕터가 있었다. 그때 내 눈에는 정말 언어연구의 천재처럼 보였던 그 교수님은 한국인도 잘 모르는 연변말을 다 아실 정도로 지식이 풍부하셨는데 그분의 수업을 통해 나는 평생 써오던 모국어인 한국어에 대해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일본어의 존칭에 대한 신부님의 말씀에 이어서 기초반 수업이 진행되었다. M언니가 이 생소한 동양의 언어를 배우려고 애쓰는 모습이 약간 안쓰러웠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저런 서비스업종에 종사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짧은 일본어를 이미 꽤 구사하고 있었다. 직장에서 일본어를 쓸 일이 없어서 이 언어에 대해 정말 백지상태로 출발하는 것은 M언니뿐인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 함께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언니는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히 배운 것이 있다며 기뻐했다. 사실 언니는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아리가또"만 연신 외치고 있었는데 내가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하며 이게 맞다고 하니 좀 혼란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신부님의 말씀과 나의 짧은 도움으로 식당이나 슈퍼에서 사람들에게 제대로 인사하려면 아리가또에 고자이마스를 붙여서 존칭으로 완료해야 함을 확실히 느낀 것이다.
저녁식사를 하러 도착한 음식점에서 주문을 했다. 우리의 주문을 받고 주방으로 돌아가는 종업원에게 언니는 처음으로 자신의 영국 억양을 열심히 숨긴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외쳤다. 일본 생활 6개월 차 M언니의 일본어 배우기는 그렇게 첫 발자국을 순조롭게 디딘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