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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Apr 15. 2018

도쿄에서 겪을 수 있는 흔하지 않은 일

K수녀님을 추억하며 콩고신부님의 말씀을 듣다

M언니를 따라 도쿄 소피아대학 이냐시오 성당의 국제(영어)미사에 갔다. 나는 천주교가 아니지만 천주교 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을 따라 미사에 참석할 기회가 많았기에 선뜻 언니를 따라나섰다. 게다가 케냐에서 여러 수녀님들과 신부님들에게 신세를 많이 진 덕분에 천주교 공동체에 친근함을 느끼는 부분도 있었다 (그래도 세례는 안받으면서).


오늘은 특히 나이로비의 길가에서 만난 일본 출신의 K수녀님을 추억했다. 수녀님은 평복을 입고 다니는 프랑스에서 시작된 한 수녀회의 일본지부에서 케냐로 파견되셨던 분인데 일흔이 넘은 연세에도 건강한 에너지로 내게 웃음을 많이 주셨었다. 수녀님은 나와 같은 길을 지나가다가 자신처럼 동양인인 내게 말을 거셨는데, 이후에 시내에서 마타투를 타는데 우연히 다시 만나서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수녀님 덕분에 공동체로 초대받아서 다른 일본 수녀님들과 르완다 출신의 수녀님들을 만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 K수녀님이 다니신 대학이 바로 소피아대학이었다. 수녀님은 이 대학의 학생이 되어 어쩌다 세례를 받으셨고 수녀가 되는 길을 선택하셨다고 했다. 수녀님이 졸업한 학교의 성당에 들어와서 내가 앉아 있으니 재밌다는 생각이 들면서 또 잘 지내고 계시는지 메일이라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K수녀님을 추억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90프로는 필리핀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일본에 필리핀 이주노동자가 많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구나 싶었던 순간이었다. 호텔에서도 객실 청소나 짐을 옮기는 사람들이 필리핀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아마도 일본사람들 중에서 인력을 충원하기 어려운 노동을 담당하는 듯하다.

드디어 미사가 시작되었다. 신부님들이 입장하시는데 가만 보니 신부님 한 분이 내가 아는 곳에서 오신 것이 아닌가 궁금했다. 내 짐작이 맞았다. 그분은 콩고에서 오신 신부님이라고 소개가 되었다.
 

콩고 신부님은 영어에서부터 스와힐리어까지 평화라는 단어를 여러 가지 언어로 한참 동안 열거하셨다. 그리고 시리아나 소말리아처럼 지금 바로 이 순간 전쟁과 갈등을 겪는 곳들도 열거하셨다. 예수님이 희랍어로 평화, 즉 샬롬을 말씀하셨을 때 그 의미를 지금의 맥락에서 생각해 보자며 목청껏 열심히 강론을 하셨다. 뭐랄까 전쟁이 만연한 나라에서 나고 자란 젊은 신부가 열정을 담아 할 수 있는 그런 강론이었다.


콩고신부님의 평화에 대한 말씀, 아니 간절한 희망을 마음에 담고 성당을 나왔다. M언니를 위한 응원 방문이었지만, 나에게는 결국 추억과 희망을 되새기는 여행이 되었다.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없는 파란 하늘을 보는 것은 물론 말할 것도 없이 귀한 보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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