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오밍으로 가는 길에 만든 웃기는 추억
2016년 크리스마스에는 미국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던 KSP의 가족에게 초대를 받았다. KSP와 나는 애리조나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또 논문 때문에 죽도록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동지애로 친해진 친구였다. 그녀는 와이오밍의 락스프링스(Rock Springs)라는 탄광도시 출신이었는데, 미국 사람들도 잘 가지 않는 그 동네에 내가 선뜻 가겠다고 하니 무척 반가워했던 것 같다. 함께 인류학을 공부하기도 했고 또 내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친구였기에 와이오밍으로 떠나는 모험(?)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도 잘 알고 있었을 테다.
그런데 와이오밍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내가 살던 도시에서는 직항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비행기를 타고 이웃하는 주인 유타주의 솔트레이크시티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그레이하운드라는 미국 전역을 다니는 고속버스를 타고 3시간 가까이를 달려 락스프링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여기에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락스프링스에 가기도 전에, 아니 내가 출발하기 위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벌어진 우스꽝스러운 사건이다.
또 다른 친한 친구 H가 나를 공항에 내려다 주고 떠났다. 나는 즐겁게 성탄 인사를 하고 공항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출국장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발 밑을 내려다보니 세상에나, 내 신발이 부스러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정학하게는 내 등산화의 밑창이 스펀지처럼 부스러지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산악지대이고 눈이 많이 오는 락스프링스의 날씨를 고려해서 가지고 있던 신발 중에서 가장 튼튼하다고 믿었던 신발을 꺼내 신었는데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 등산화는 우리 아버지께서 한창 등산을 다니시던 무렵 내 손목을 끌고 가서 사주신 등산화였는데, 사실 미국까지 그걸 가지고 와서는 제대로 신은 적이 없었다. 그게 거의 9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오래된 등산화이기는 했다. 게다가 뜨겁고 건조한 애리조나의 날씨 덕분에 그 밑창이 그렇게 바스러질 정도로 망가졌을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 타이밍이 정말로 곤욕스러운 타이밍이었다. 나는 체크인을 하고 검색대로 향하기도 전에 부서지고 있는 신발을 신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황당했다. 보고 또 봐도 그 등산화는 쩍쩍 갈라지면서 망가지고 있었다. 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부스러기가 떨어졌고, 그건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빵부스러기를 뿌리는 것처럼 보였다. 공항을 돌아다니면서 신발 파는 곳을 수소문했지만, 도대체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저 그 등산화의 밑창이 내가 솔트레이크시티에 도착할 때까지만 버텨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비행기에 올라탔다.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유타 솔트레이크 시티까지의 비행은 1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등산화는 그 짧은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더 심하게 부스러졌다. 이제는 아예 밑장이 반이상 떨어져서 내가 발을 조금만 세게 움직이면 다 떨어질 것처럼 보였다. 밑창이 아주 달랑거리는 상황에 와서야 비행기는 솔트레이크 시티에 도착했고, 나는 어떻게든 빨리 공항을 나가서 신발을 사서 신어야겠다는 마음이 절실했다.
달랑거리는 밑창을 조심스럽게 끌면서 비행기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공항으로 이어지는 통로에서 그만 밑창 하나가 날아가고 말았다! 뒤에 따라오던 사람 중의 하나가 "What is that? (저게 뭐야?)"라고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그리고 그 일행인 듯한 사람이 이어서 "That's a sole! (저거 신발 밑창이야!)"라고 하는 것도 들렸다(지금도 그 목소리가 기억난다). 무슨 유리구두를 잃어버린 신데렐라도 아니고 신발 밑창을 잃어버린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쏜살같이 통로를 빠져나갔다. 어서 빨리 화장실에 들어가서 달랑거리는 또 다른 밑창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밖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바로 앞에서 또 다른 밑창이 떨어지고야 말았다. 나는 짧은 순간에 그걸 후다닥 주워서 가까이 있던 쓰레기통에 버렸다. 평생 그렇게 빨리 움직여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재빨리 화장실로 직행해서 밑창이 다 날아간 내 등산화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우스웠던 것은 그렇게 밑창이 다 날아간 대로 뭔가 밑창이 얇은 부츠 같은 것을 신은 듯이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단은 이목은 피할 수 있고, 또 걸음도 제대로 걸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나는 곤욕스러우면서도 스스로 너무 웃기다는 기분으로 화장실을 나와서 우버를 통해 차를 한 대 불렀다.
우버 기사는 소말리아에서 온 난민 출신으로 미국에 정착한 청년이었다. 나는 신발 밑창이 다 날아간 위기 상황에서도 궁금증이 동하여 그에게 언제 왔느니, 어느 다다브 캠프를 거쳐 왔는지, 소말리아어나 스와힐리어는 기억하는지 등등을 물었고, 청년은 내가 난민들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것이 반가웠는지 여러 가지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처음 유타에 와서 길에 쌓인 눈을 보고 깜짝 놀라서 밀가루인 줄 알았다는 것, 사실은 캠프에서 태어나서 소말리아에는 가본 적이 없다는 것, 미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힘들고 어려운 점들이 많았다는 것 등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왜 내가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타겟(Target, 미국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대형마트)에 가는지도 궁금해했다.
그이에게 나는 친구를 만나러 와이오밍에 가야 하는데, 친구가 사다 달라고 부탁한 것이 있어서 그렇다(실제로 와이오밍에는 이런 마트가 많이 없어서 사람들이 유타에 나와서 쇼핑을 하기도 한다)고 둘러대고 내렸다. 타겟이 문을 닫을 시간이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급히 매장으로 들어가서 눈에 들어오는 가장 싼 신발을 골랐다. 12불이었다 15불이었나 모르겠다. 회색의 얄팍한 컨버스 스타일의 운동화였는데, 그때는 그 운동화가 그 어떤 고급 신발보다도 훌륭해 보였다 (지금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다). 값을 치르고 운동화를 가지고 다시 또 우버를 불러서 예약해둔 호텔에 들어갔다. 짐을 풀고 정신을 차리고 다 부서진 등산화를 쳐다보니 혼자서도 한참 웃을 수 있었다.
다음날, 다 부서진 등산화는 그 호텔방의 쓰레기통 바로 옆에 가지런히 두고 나왔다. 눈이 쌓여 춥고 얼어붙은 솔트레이크시티의 거리를 얄팍한 회색 운동화를 신고 나서서 짤막한 관광을 했다. 발이 무진장 시렸지만 그래도 이렇게 밑창이 멀쩡한 신발을 신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흐흐.
와이오밍으로의 여행은 그렇게 요란한 추억을 만들면서 이제 겨우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