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함

by 김짜란

재경은 자신이 지하철 출구 천장 같다고 생각했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 사람은 아래를, 지상으로 나가는 사람은 위를 쳐다보는, 그 시선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천장. 그곳 천장은 그 덕에 더러웠다. 그렇다고 역겨울 정도로 더럽진 않았다. 외부의 공기가 통해 먼지가 쌓인다거나, 노숙자들이 대소변을 두지 않았으니까.
재경은 자신의 인생도 그렇다고 느꼈다. 완전히 바닥도 아니고 완전히 하늘도 아니라고. 추운 날엔 춥고 더운 날엔 덥고, 어쩌다 저 안 지하철 히터가 운 좋게 불어오는 것. 그게 제 인생 같았다. 숫자로 표현해 보자면 토익 830점. 높다면 높고 낮다면 낮은 점수였다. 저 바닥 쓰지 못할 점수는 아니나, 좋은 기업엔 갈 수 없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 종종 이득을 보는 정도.
그런 점수를 가졌기에 재경은 아르바이트 번역일을 했다. 정직원은 재경을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서류가 주어지면 그걸 한글로 타이핑하거나, 한글을 영어로 타이핑하거나. 그래서 목적지로 향하게 할 뿐이었다.
지하철 하고 비슷한가. 재경은 문득 생각했으나 이내 생각을 거두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책상 한켠 많지 않은,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검지 두 마디 정도의 분량이 쌓여있다. 불평하기도 애매한 분량.
재경의 한평생이 그랬다. 가정이 화목하냐기엔 어색하고 폭력적이었으나, 증거를 모아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 학대는 없었다. 사랑한다는 말이 오가진 않았으나, 서로의 생일 즈음 네 생일이 곧이지 않느냐 하며 가지고 싶은 것을 물었다.
그렇기에 재경은 항상 그 언저리에 머물렀다. 그렇기에 그 언저리 선이 어느 날 엉켜 제 목에 감겨 삶을 멈추고 싶었다.
답답하다. 그게 재경이 할 수 있는 표현의 전부였다. 바다에서 물 위아래로 까닥이는 부표 같아 마음껏 숨을 들이마시지도 내뱉기도 어려운 상태. 그래서 남들에게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어중간한 불행은 어디나 있었고, 강렬한 불행은 도처에 있었고, 그렇기에 공감을 가장한 일반화 소리가 입을 막았다.
다 그렇게 살아. 이겨내고 사는 거야.
재경은 항상 궁금했다. 정말 그런 걸까. 내가 나약한 걸까. 사람들 모두 그 깔딱이는 선에서 타이밍을 맞춰 숨을 쉬었다가 참고, 어느 날은 실패해서 물을 먹고, 그저 삶이 멈추길 바라지 않는 걸까. 나만 삶이 멈추길 바라는 것뿐일까. 나만 들숨은 아프고 날숨은 버겁게 느껴지는 걸까.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계획하게 된 일이었다. 자신의 장기를 조금씩 잘라 파는 것. 재경에게도 인류에게도 다행스럽게 세포는 재생 능력이 있다. 그래서 시도해 본 것이다. 하다 죽으면 누군가에겐 고마운 은인으로 남을 것인, 그 인생이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스스로 죽는 건 죽음이 무서웠고, 더 사는 건 더더욱 암담했으니.
정상적이고 길디 긴 합법적인 길을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의 문의가 쏟아져 내렸다. 정말 파는 거냐, 얼마큼을 파는 거냐, 혈액형은 무엇이냐. 처음에는 무서워서 글을 삭제했다. 그 간절함 들은 재경의 인생엔 없던 것이었으므로. 파도가 들이치면 애써 도망가야만 하는 수영을 채 다 배우지 못한 어린 펭귄처럼.
그다음엔 자신이 멍청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기를 꺼낼 사람, 이식할 사람, 일을 행할 장소, 도구들 까지. 그래서 하나하나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선택한 큰 일탈이었으므로 놓고 싶지 않았다. 저를 향한 그 강렬하고도 절박한 갈망들을 잊을 수 없었다.
일단 병원 알바를 시작했다. 간단했다. 대학병원 기간제 근로자로 들어갔다. 자격증이 없어도 되는, 흔히 말하면 시다바리. 눈에 띄지 않는 사람, 재경에겐 딱이었다. 그 일을 구하는 사람치곤 젊었고, 막 시작하는 애들보단 오랜 기간 번역 알바를 했으므로 책임감을 어필할 수 있었다. 처음 배정된 곳은 내과 초음파실이었다. 한 달 차에는 배우느냐 정신이 없었다. 그냥 중요치 않은 일회용 작은 칼들과 주삿바늘, 소독약 정도를 훔쳐 나올 생각이었다. 한데, 생각보다 많았다. 자신이 훔쳐 나갈 수 있는 것이.
마약류만 잠가두고 나머지는 하나씩 빼면 모를 것이었다. 세포 검사를 위한 아주 작은 세포 담는 용액부터, 기구를 소독할 가루약들, 일회용 조직을 자르는 용의 메스들은 그냥 커터칼 수준이라 한 번에 여러 개를 훔쳐도 상관없었다. 니들도 마찬가지였고, 멸균 거즈도 마찬가지였다. 세포를 집어내는 건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소독을 하고 매번 개수를 새는 포셉 같은 것들은 건들지 않았다.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언제든 갈아치워 질 수 있는 시다바리가 물품을 채우기에, 상관없었다. 중요치 않은 일에 그 누구보다 성실히 했던 재경이라 아무도 의심치 않았다.
보호색 같이 똑같은 색의 옷을 갈아입는 곳도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의료 창고를 지나 존재했기에 무엇이 어디로 언제 들어오는지 알 수 있었다. 의사들을 위해 돌아가는 대학병원 안에서 고객도 아닌 의사의 시다바리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덕에 어디에 있던 의심받지 않았다. 더군다나 진료를 위해 여러 병동을 도는 교수들이 있었기에 그들의 시다바리는 더더욱 어디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항상 발걸음이 가벼웠다. 도둑질인데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최선을 다하면 웃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큰 일탈이 점점 완성되어 갔으므로.
하나 문제가 있었다. 장기를 잘라 파는 것이 생각보다 대수술이라는 것이었고, 이미 암시장에서 의사들까지 갖춰진 장기밀매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 중간 유통과정 사람들만 돈을 가져가지, 정작 파는 저에겐 얼마 떨어지지 않는다는 계산이 섰다. 심장을 다 팔아도 고작 2억 5천이라니.
그러다 문득 의사들의 연구동의서가 떠올랐다. 어차피 검사하기 위해 세포 뜯어내는 거, 연구를 위해 조금 더 뜯어내자는 요지의 동의서였다.
그거라면, 연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것도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삶 아닐까, 누구에게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차피 자신이 온전히 소유하지 않을, 빨랫줄에 줄줄 감겨 멈추고 싶은 인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 막을 내린다면 나쁘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죽음이 될 터였다.
그래서 수정을 해 올렸다. DNA 혹은 세포 팔아요. 연구 목적으로 쓸 것이라면 누구에게든 내어줄 수 있었다. 재경의 글은 장기만큼은 아니었으나 빠르게 연락이 왔다. 연구를 채워야 하는 교수들이 특히 반응이 많았다. 그중 가장 긴 글을 쓴 사람을 만났다. 떵떵거리던 의사들이 자신을 만나 어떻게든 설득하려는 것이 좋았다. 그 애매한 신분들 사이에서 뭐라도 된 것 같았다. 제 신분이 애매하지 않아 진 것 같았다. 항상 제멋대로이던 의사들은 진짜 가능한 것이냐, 저는 슛만 쏘고 나머지 것들은 다 준비된 것이 맞느냐, 물으며 전전긍긍, 고양이 앞 쥐 같았다.
그 모습이 우스웠다. 짤랑짤랑 애매하게 헤매던 자신의 존재가치가 그들로 인해 높아진 것 같다 느끼는 제 스스로도 우스웠다. 모두가 각자가 원하는 것을 두고 아등바등하는 것이 같잖았다. 겨우 이것, 이 관심과 애정 가지고 행복해하는 저 자신이 제일 그랬지만. 모두가 관심과 애정을 위해 아등바등하는 게 맞았지만, 자신이 제일 우스웠다. 이제야 깨닫다니.
깨닫는다고 멈출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 처음 교수에게 받은 돈으로 초음파 기계를 샀다. 젤도 샀다. 그러니 그 원하는 부위를 보기엔 아주 좋은 여건이 갖춰진 것이다. 의사 한 명과 그를 보조할 한 명. 그 둘만 오면 됐다.
의사와 보조가 혹시나 경찰일까 봐, 안 그래도 살기 암담한데 더 암담하게 만드는 놈들일까 봐, 누군가 따라붙는지 보기 위해 일부러 먼 곳에서 약속을 잡았다. 그 둘을 데리러 가는데 검은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시각장애인용 막대로 탁탁 소리를 내며 지하철로 내려가고 있었다.
안에는 블록이 따로 없기에 꽤 해멜텐데. 지나칠까 하다가 멈추고 그 앞에 섰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 팔 잡으실래요?
눈은 선글라스 때문에 보이지 않았으나 남자의 입은 크게 반달모양을 만들었다. 들어가는 보조개가 마치 휘어지는 눈을 연상케 했다.
감사합니다.
앞에 팔 있어요.
남자는 스틱 대신 재경의 팔을 잡았다. 손이 겨울인데 따듯했다. 자신은 항상 찬데, 이 한 겨울에 따듯하다니. 앞에 계단이 시작된다며 입을 연 재경은 환승역이라 여기저기에서 들이닥치는 파도 같은 사람들을 피해, 미로 같은 길을 찾아 걸었다. 그 혼자라면 세배는 더 걸어 정류장을 찾았을 것이다. 내려간 정류장에는 덜렁 A4용지로 파업으로 인해 배차간격이 일정하지 않다는 안내만 쓰여있었다. 그는 절대 모를 내용이었다.
파업으로 늦는대요.
와 감사합니다. 전혀 몰랐어요. 선생님 아니었으면 내내 몰랐거나, 여기 제대로 도착하지도 못했겠죠.
검은 바다에 갇힌 고래를 보는 느낌이었다. 안 갑갑한가. 바다는 넓다지만 검디 검은 바다 안에 있는데도 그는 환하게 재경에게 웃어 보였다.
얼마나 걸리는지도 쓰여있나요?
그건 안 쓰여있는데- 잠시만요.
청소하는 파란색의 아주머니가 눈에 띄어 다가가 물어봤더니 30분은 기다려야 한단다.
30분 정도 걸린대요.
아- 그래요? 기다리면 되겠다. 감사합니다.
손이 떨어진 자리가 이상하게 시렸다. 그만큼 지하철 안에는 사람도 없었고 찬바람도 불었다. 이런 지하철 안에 그를 덩그러니 내버려 두고 갈 순 없었다. 다른 일이 생겨도 그는 모르고 이 안에 갇혀야 할 테니까. 그래서 선약인 사람들에게 양해 문자를 넣고 옆에 앉았다.
아, 같이 타고 가시나요?
네.
거짓말이었다. 어차피 그는 내가 탔다가 내려도 알지 못할 테니, 혹은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리면 되니 상관없었다. 그래서였나 재경은 무례한 질문을 했다.
안 답답해요?
아까는 반달모양을 하던 것이 이내 그믐달 모양이 되었다. 이상했다. 웃을 질문이 아닌데. 어느면으로 보나 무례하고 모호한 질문이었다. 하나 그 단호한 입매는 재경을 혼내지도 않았지만 답을 주지도 않았다. 대신 질문을 돌려주었다.
답답한가요?
재경이 보기에 남자가 답답하냔 것인지, 재경 스스로의 인생이 답답하냐는 것인지 애매모호한 질문이었다.
네. 애매해요. 그래서 질렸고, 멈췄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자신의 생각대로 대답했다. 한번 구멍이 나자 그 찰랑거려 재경에게 답답함을 선사하던 물이 쏟아져 내렸다.
죽는 건 무섭고, 힘들고, 성공 못하면 더 힘들잖아요. 그리고 계획도 해야 하고 실행도 내가 해야 하고. 그래서 그냥, 어느 날 멈췄으면 좋겠어요. 그냥 끝이요. 기쁨도 슬픔도 다 사라지고 고요만 남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그렇게.
차있던 물이 쏟아졌으나 찔끔, 아직도 답답했다. 그게 숨을 거칠게 만들어서 남자는 손을 뻗어 재경의 무릎가에 손을 얹어 토닥였다. 그제야 재경은 진짜 물을 쏟아냈다. 아까 쏟아낸 건 썩은 물이 만들어낸 아주 작은 가스였을 뿐, 부패한 물이 드디어 쏟아져 나왔다.
하- 이게 너무 싫어서 멍청한 짓도 하려고 해요. 세포를 떼어 팔 거예요. 집에 작은 이동식 초음파기도 사놨어요. 건하고. 마취약은 버리려던 거 몰래 빼내왔고요. 모든 준비를 다 했어요. 오늘은 디데이고. 왜 그랬는지 알아요? 관심이 고팠나 봐요. 세포를 원하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원하더라고요. 나도 준비를 끝내면서 알았어요. 한심해요. 이래야 관심이, 내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게. 고작 하고 싶어 한다는 게 내 세포 파는 일이라서, 하면서 기쁜 일이라는 게 나를 다치게 하는 일이라는 게.
오래오래 썩은 찌꺼기들은 마음 저 아래 붙어있겠지만 물은 쏟아져내렸다. 그 긴 말들을 들어주던 남자는 토닥이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 토닥임에 작은 바람이 일어 찌꺼기까지 닿는 느낌이었다. 아주 오래된 기억들. 얼룩진 기억들. 그것들이 처박혀있는 찌꺼기들. 그것들에 바람이 불었다. 실로 오랜만에.
이름이 뭐예요?
재경이요.
남자의 질문에 이번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눈이 안 보여요. 그래서 가끔은 잘못 내려요. 졸다가 방송을 대충 들으면 엉뚱한 역에 내리곤 하죠. 그러면 참 곤란해요. 어떤 날은 뜬금없이 내 처지가 절망적이죠. 나는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 그런데요, 지하철은 또 와요. 뭣보다 나는 안 보여서 모르는, 컴컴한 곳, 잘못된 것이 환승역일 때가 있어요. 환승역에 잘못 내리면 다른 열차를 타고 새로운 길로 가기도 하죠. 그 길이 더 좋을 때가 있어요.
그때 열차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다.
같이 타고 가요. 이 열차 타고 다른 길로 가봐요.
저는-
안탈 거 알아요. 그러니까, 같이 가보자고 하는 거예요.
어릴 적 잘못을 덮어주던, 모른 척하다가 나중에 일러주던 신부님이 생각났다. 그의 손을 잡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졌고 재경은 안내하려 팔을 내미는 대신 그 손을 잡았다. 그렇게 둘이 지하철에 올랐고 재경은 이내 나타나는 한강을 쳐다보다 말했다.
내가 안 탈 거라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안 보이면 잘 듣게 되거든요.
남자는 빙그레 웃더니 창쪽으로, 빛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보이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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