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가 설명하지 못하는 '나'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요즘의 스몰토크는 MBTI로 시작된다. 상대방이 ISTJ라고 답하면, 알파벳 네 글자에 담긴 의미를 곱씹으며 후속 질문이 이어진다. "오, 저도 TJ인데!"처럼 공감이 이어지기도 하고, "아, T라서 그러셨구나~"하는 첫 번째 색안경이 상대방에게 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대화가 자연스럽지 않다면, 마치 MBTI 유행에서 괜히 뒤처지는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MBTI 토크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내향 (Introversion)과 외향 (Extroversion), 직관 (iNtuition)과 감각 (Sensing), 감정 (Feeling)과 사고 (Thinking), 인식 (Perceiving)과 판단 (Judging) 16가지 성격 지표의 의미를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지난 몇 년 간의 MBTI 유행이 불편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나다. 네 가지 지표의 비율이 애매하게 4~50퍼센트씩 분포된 사람이라면 MBTI 토크를 이어가는 데 있어 굉장히 불편한 존재가 된다. 나의 MBTI는 ISFP로 나왔지만, 그 결과가 내 성격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MBTI 테스트 결과를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다.
MBTI가 설명하지 못하는 ‘나’
나는 다수와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남들 앞에서 공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은근히 즐긴다. 자라온 환경 덕에 누가 봐도 현실적인 어른이 되었지만, 동시에 마음 깊숙이 한 곳에서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 내가 존재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해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불편하더라도 그냥 내가 해버리지, 뭐"라고 이야기하는 '나'도 있지만, 때로는 환경과 상대에 따라서 피도 눈물도 없는 공감력 제로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 여행 갈 때는 목적만 정해두고 무계획을 즐기지만, 자산 관리는 엑셀로 정리해서 꽤나 꼼꼼하게 관리하는 편이다. 이렇게 다양한 나를 16가지 유형 중 하나로 정의하기에는 내가 너무도 다양하다. 이 때문에 MBTI의 틀로 사람의 유형을 정의하는 방식에 거부감을 느낀다.
MBTI에 과몰입하는 사람들
전 세계 인구가 80억이 넘어가는 2024년에도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16가지로 사람의 성격을 구분하는 MBTI가 엄청나게 유행이다. 더 놀라운 점은 MBTI 과몰입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유행 초기에는 이 열풍이 그다지 와닿지 않다가, 처음으로 과몰입자를 마주하게 되면서 나라는 사람을 알기 전에 누군가 MBTI로 사람을 먼저 정의하고 판단하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게 됐다. 사람에 대한 판단이 MBTI 결과 분류로 끝이 나고, 색안경을 벗지 않고 시간을 두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려는 직접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들의 유형을 구분 지으려는 인간의 노력은 계속된다. 과거 띠별 궁합, 혈액형 궁합에 이어서 MBTI별 궁합표가 존재하는 세상에 우린 살고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띠, 혈액형은 과학적 근거가 없었기에 사람을 볼 때 보조 수단일 뿐 서로를 알아가려는 노력이 더해졌던 것 같은데, 지금의 유행은 그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우리는 왜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에 빠질까?
MBTI의 등장 배경은 흥미롭다. MBTI는 캐서린 쿡 브릭스와 그녀의 딸 이자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카를 융의 초기 분석심리학 모델을 바탕으로 1944년에 개발한 자기 보고형 성격 유형 검사이다. 그 등장 배경을 찾아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계 진출을 희망하는 여성들이 적합한 직무를 찾도록 도와주기 위해 개발되었고, 캐서린이 딸과 약혼자가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도 서로에게 끌리는 이유가 너무나 궁금해서 인간의 성격을 직접 연구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심리학자들에게도 외면받는 이 MBTI가 오늘날 이토록 큰 인기를 끄는 이유는 아마도 인간관계가 복잡해진 시대에 주는 단순함 때문일 것이다.
SNS의 발달로 인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나의 정체성에 대해 잃어갈 가능성이 높아진 시대가 되었다. 항상 타인과의 비교에 놓이는 자아 혼란의 시대에서 MBTI는 사람들에게 마치 게임처럼 몇 가지 문항에만 대답하면 나의 성격이 어떠한지를 정의해 주는 심플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무겁지도, 또 가볍지도 않은 서로에 대한 질문이 서먹한 분위기를 쉽게 아이스브레이킹할 수 있는 좋은 대화 소재거리가 되기도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단순함이 지나치면, 사람을 MBTI라는 틀에 가두고 판단하는 위험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MBTI 결과가 그 사람은 아니다.
MBTI 유형 분류에만 몰두하게 되면, 나 자신도 잃고 내 눈 앞의 사람도 잃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MBTI로 단순히 정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내 배우자는 어렸을 때부터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고, 논리적 사고로 문제를 해결하는 공대 출신 엔지니어다. 물론 어떤 면에 있어서는 항상 논리를 통해 이해하려고 하고, 그 논리가 설명되지 않으면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가까운 사람에게는 도무지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일에도 따뜻한 마음을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이다. 어느 특정 포인트를 보고 내가 이 사람을 "대문자 T"라고만 정의하기에는 그 안에 숨겨진 따뜻한 감정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렇듯 사람을 어떤 틀로 정의하지 않고, 시간을 함께 하며 있는 그대로 한 사람을 알아가는 이 과정은 너무나도 흥미롭고 소중하다. 사람을 알아가는 일은 단순 성격 검사의 결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된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옆에 있는 사람을 더 잘 알아가는 데 시간을 쏟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한다. MBTI가 아닌,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시간을 들이고 관심을 기울이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