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맞이한 직장인의 긴 여름방학

진정한 쉼이란 뭘까

by 타닥

올여름 51일의 뜻하지 않은 여름방학을 가지게 됐다. 회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이직할 회사의 긴 여름휴가 기간 때문에 원하는 대로 빨리 첫 출근을 할 수 없어서 본의 아니게 백수 기간이 늘어났다. 주변에 다들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니 정말 부럽다고들 한다. 한편, 정작 당사자는 이렇게까지 긴 휴가를 원하지 않았다. 결혼 준비로 인해 텅텅 비게 될 통장 잔고가 항상 눈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이러한 주머니 사정과는 관계없이 어디 여행이라도 길게 다녀와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덧붙인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왠지 비어있는 체크리스트에 어떻게든 뭐라도 채워 넣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 찰나에 스친다. 노는 것도 이렇게 계획과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라니.


여름방학을 맞이한 나는 특별히 더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대학원을 병행했고, 학회지 게재, 이직 준비와 업무 자격증 취득 준비 등으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행도 20대에 혼자 유럽여행을 두 차례 다녀왔던지라 더 이상 혼자 긴 쓸쓸한 여행은 하고 싶지가 않아 졌다. 30대가 되면서 여행은 아무쪼록 2인 이상이어야 한다는 주의가 되어버렸다.
긴 여름방학에 대한 별다른 계획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두 가지 일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병원에서 건강 검진과 동남아 가서 마사지받기였다. 직장 생활을 핑계로 등한시했던 건강 관리와 그저 가만히 비치 체어에 누워 유유자적하며 휴양을 즐기고 싶었다. 막상 이 두 가지를 클리어하고 나니 또 갈 곳을 잃었다. 여전히 한 달이라는 시간이 더 남아있었다.


사람이 목적과 의미 없이 쉬게 되면 소파와 침대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이번에 몸소 체험했다. 하루하루를 낭비하는 느낌이 들어 근처 수영장의 초급반에 등록하려고 하면 이미 다 예약이 끝나있고, 생각했던 계획이 안 되고 또 다른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려고 하면 막상 또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럼 또다시 TV 앞으로 몸을 향하게 된다. 긴 시간을 이렇게 목적 없이 지내니 왠지 모를 죄책감이 앞선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살아온 시간이 너무 길었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 여유를 즐기면서도 한편으론 조금 불안하기도 하다.


최근에는 하루를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우기 위해 카페에 가거나 도서관에 가는 시간이 늘었다. 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 평일 오후 반차를 쓰고 카페에 갈 때마다 ‘이 시간에도 카페에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라고 생각하며 엄청 부러워했었다. 막상 내가 그 사람이 되고 보니 카페에 가는 것도 이제는 너무 일상이 되어버려서 처음과 같은 기쁨은 살짝 덜해졌지만.
그러나 한편으론 혼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게 하루의 일과인 이 순간이 언제 또 찾아올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더 크다. 이번 긴 여름 방학 동안에는 글을 통해 생각과 감정들을 정리하며 쉼을 즐기고 있다. 하루를 너무 바쁘게 살지 않아도, 이렇게 천천히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뜨거웠던 감정과 복잡했던 머리를 잘 쉬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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