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의미

모든 것은 일. 단지 하루 일과 중 하나

by 타닥

잠 못 드는 어느 도시의 밤

잠시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2개월 동안 백수로 지내왔던 시점에 내가 지금 현재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 있었다. 바로, 새벽까지 뜬 눈으로 지새우는 하루하루가 늘어나는 걸 발견하게 되었을 때였다. 회사에 다니고 있었을 때는 출근 후 바로 커피 한 잔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점심시간 후 오후 근무 시간이 되면 커피 두 잔, 그리고 오후 회의가 끝나면 커피 세 잔. 일일 할당량을 채우지 않는 날이 없었다. 하루 커피 세 잔을 마셔도 집에 돌아와서 저녁잠과 밤잠이 둘 다 가능했던 내가 이제는 커피를 마시지 않더라도 새벽 늦게까지 잠 못 이루는 일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한시적 백수의 시간은 딱히 무언가 생산성 있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시간이 엄청 잘 흐른다. 나를 위해 아침 겸 점심을 만들고 그리고 식사를 치우는 이 단순 생계활동 중 단 한 가지의 일만 하더라도 한두 시간은 훌쩍 흐른다. 물론 기분에 따라 넷플릭스를 보거나 가끔 마음이 내킬 때면 카페에 가서 노트북을 들고 그날의 할 일을 한다. 더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도서관에 가서 책 한 권을 읽어낸다. 이렇듯 백수의 일상도 나름 쏜살같이 지나갔었는데, 커피 세 잔에도 멀쩡하던 내가 이제는 이상하게 커피를 마시지 않은 날에도 새벽 2시까지 또렷한 정신으로 깨어있곤 한다. 쉽사리 잠에 못 드는 날이면 꼭 그날의 하루를 다 못 살아낸 느낌이 든다. 그리고 다음 날도 불쾌한 기분으로 잠에서 일어난다. 눈을 뜨면 오전 11시가 훌쩍 넘은 적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럼 꼬박 1.5일을 날려버린 느낌이 든다.


회사를 다닐 때는 머릿속에 항상 해결하지 못한 숙제들과 함께 집으로 퇴근하기 일쑤였다. 지금까지 회사에서 맡았던 일은 항상 문제점의 꼭지에서 해결을 촉진하는 역할이었다. 개발 단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이슈나 리스크를 사전에 인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관 부서의 팀원들과 함께 회의를 통해 논의해서 문제 원인분석과 개선안을 도출해 내는 일이었다. 항상 머릿속에 미해결 된 이슈들이 맴도는 일상을 5년 이상 겪다 보니 더 이상 내게 일로서 해결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지금이 낯설다. 해방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무언가 내 안에서 그날 소모되어야 할 에너지가 완전히 소모되지 않은 것만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직장인에서 잠시 벗어난 지금, 내게 일이란 무엇일까?

한 때 일에 대한 의미를 찾기 위해 ‘일’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책을 검색해서 읽어보기도 했었다. 직장인으로서 일이란 무엇일까, 인생에서 일이란 무엇일까라는 뭔가 거대해 보이는 이 질문을 던지며 내 마음에 딱 꽂힐 답을 고대하며 책을 꾸역꾸역 읽어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직장생활 8년 차, 처음으로 길게 가진 휴식 시간 속에서 집 소파와 침대 위에서 의미 없는 시간을 한 달여간 보내고 나니 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문득 이해가 되는 것 같은 요즘이다. 요 며칠 카페인 없이도 쉽사리 새벽까지 잠에 못 들었던 건, 일을 하지 않아서였다. 직장에 가서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저 그날에 몰두한 활동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녁에 약속이 있는 날엔 그래도 비교적 평상시보다 빨리 잠에 들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상대방에 집중하는 일이라 그런 날은 에너지가 소진이 되어 밤잠을 새우는 일은 없었다. 다가올 여행을 위해 여행지를 조사하고 일정 계획을 정리한 날에도, 집 근처 공원에서 러닝을 하고 온 날에도 취침 시간이 너무 늦은 새벽 시간을 넘지 않곤 했다.


그동안 ‘일’이라는 개념을 너무 직장에서의 생산 관점으로만 바라보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검색을 해보니 ‘일’이라는 단어가 무려 13가지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첫 번째 의미는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 또는 그 활동의 대상’이다. 나는 이 설명에서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일에 대한 의미를 직장이라는 장소에 국한하여 줄곧 해석해 왔던 것이었다.


그러나 직장에 잠시 벗어나 있는 지금, 일이 굳이 직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삶 전반에 걸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어 단어 ‘work’는 열심히 땀 내고 움직여서 어떤 결과 값을 얻어내는 행위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행위 대상이 모든 게 될 수 있다. 그 활동이 반드시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되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열심히 땀 내고 움직여서 나만의 결과 값을 만들어냈다는 것만으로도 일이다.


지금까지 어쩌면 모든 인풋에는 남들이 인정할만한 아웃풋이 따라야 한다는 생산성과 효율 중심의 사고방식에 너무 물들어 있던 것 같다. 다른 이의 인정을 전제로 하는 결과 중심적 사고로만 ‘일’을 접근하다 보니 자꾸만 일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과관계를 찾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다른 이의 관점에서 일을 바라보니 그것이 나에게도 의미 있는 행위일지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서 자꾸만 일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지 않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일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 것도 같다. 일과 같은 몰두의 활동은 그저 일과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하루 밤을 잘 숙면하고 다음 날 좋은 컨디션으로 보낼 수 있게 우리를 이끌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의 삶에서 ‘일’이라는 활동은 하루를 더 잘 살아내게 하는 수단이며, 살아감에 있어 꼭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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