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참으로 어리석은 동물이다
사랑니를 뽑았다.
사랑니는 일본어로 오야시라즈(親知らず)라고 불린다. ‘부모도 모르는 사이에 난 이’라는 의미다. 부모도 모르는 사이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니가 자라났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나와 자연스레 함께했다.
사랑니는 이를 뽑을 때 첫사랑을 앓듯 아프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별은 몇 번 겪어도 쉽게 적응되지 않는다. 익숙해지기 쉽지 않은 일이다. 매번 처음 헤어지는 듯한 고통이 따른다.
사랑니는 유착되기 전에 빨리 뽑는 게 좋다고 한다. 그러나 망설여졌다. 단지 두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오랜 시간 함께해 온 것을 한순간에 제거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사랑니를 뽑기로 결심한 건 어쩔 수 없는 이유에서였다. 양치질이 힘든 위치에 있었기에 충치의 위험이 컸고, 피곤할 때마다 잇몸이 부어올랐기 때문이다.
많은 고생 끝에 사랑니를 뽑았다. 비스듬하게 매복되어 있는 탓에 크게 절개도 했다. 마취가 풀린 후에 아픔과 고통이 찾아왔다. 진통제를 먹어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욱신거리는 통증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뺨이 퉁퉁 부어 있었다. 부은 뺨에서 발견한 건 이제는 나가버린 작은 조각이었다. 있을 때는 몰랐다. 함께하는 게 당연했으니까. 발치를 하고 나서야 그 자리의 허전함과 텅 빈 느낌을 깨달았다. 왜 꼭 잃고 나서야 깨닫는 걸까. 인간이란 얼마나 어리석은 동물인 건지.
구멍이 뻥 뚫린 자리를 혀로 살짝 만져 본다. 상처가 덧나니까 하지 말라고 주의했던 행동이다. 그럼에도 그 흔적을 더듬고 싶은 건 나의 욕심이다. 한두 달이면 살이 차오른다고 한다. 그렇게 빨리 아물다니 신기한 일이다. 지금은 견딜 수 없는 아픔에 온 정신이 쏠려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상처가 반드시 아문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솔로몬 왕의 반지에 새겨진 말처럼 모든 것은 시간이 치유해 준다. 그러나 지나가기 전까지는 버티는 수밖에 없다. 이를 악물고 견디는 것만이 답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내 아픔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게 된다는 걸지도 모른다. 성인이 된 지 9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진정한 어른이 된 기분이다. 세상은 내 아픔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 오늘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간다. 할 일이 많다는 게 다행스럽다. 아픔을 온전히 느낄 틈이 없다는 것이 묘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사랑니는 지치(智齒)라고도 불린다. 사리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는 시기가 이제야 찾아오는 걸까.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부은 뺨을 조심스레 만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