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
택시는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법이 없기에 언제나 어디에서나 이방인이다. '택시운전사'(감독 장훈)라는 제목이 곧 이 작품의 방향이다. 영화는 택시 기사와 그가 태운 독일 기자가 1980년 5월 광주에 도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런 설정이라면 보통 영화는 기자의 활약상을 다루면서 그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주로 피해자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택시운전사'의 주인공은 말 그대로 택시운전사다. 이 제목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당시 그곳에서 벌어진 참상의 현장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외부인의 눈으로 보겠다는 일종의 의지 표현이다.
택시 기사 만섭(송강호)의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다소 길게 보여주는 건 일반적인 캐릭터 구축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상식적인 선에서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속물인 평범한 사람이라고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만섭은 곧 당시 광주 현장에 있지 않았던 모든 관객이 될 수 있다. '택시운전사'는 필부필부의 눈으로 그때의 광주와 광주 사람들을 봤을 때 그게 무슨 일이었고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알고 느껴보자고 제안하는 작품이다.
심각해보이는 설정이지만, '택시운전사'는 사실상 '선(先)웃음·후(後)감동' 흥행 공식을 답습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1부에 해당하는 초반 60분이 송강호의 개인기를 활용한 재미 파트라면, 2부에 해당하는 77분은 눈물 파트다. 익숙하고 상투적인 설정이지만, 그만큼 위력적이다. 대배우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송강호는 대부분 장면에서 유효타를 날린다. 토마스 크레취만·류준열·유해진의 호흡은 인간적이어서 감동적이다. 게다가 최근 관객은 거대 권력에 의해 짓밟힌 약자의 이야기에 함께 분노할 준비가 돼 있다. 이건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인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영화다.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는 건 이 작품의 큰 미덕이다. 이 의외의 담백함은 신파 서사에 대한 일부 관객의 반감을 의식한 의도적 연출이 아니다.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너무나 가혹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남겨두고 홀로 서울로 올라가는 이방인의 미안함은 분명 통곡과는 거리가 멀다. '택시운전사'는 가해자를 향한 울분을 거침없이 토해내기보다는 피해자들의 넋을 어루만져주려는 시도에 가깝다. 과장되지 않은 감정은 오히려 공감의 크기를 키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다만 상업영화로서 무난하지만, 이른바 '광주영화'로서 '택시운전사'가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 작품은 아픔을 무릅쓰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함으로써 작은 희망을 이어간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은 영화일 것이다. 이 메시지는 그것 자체로 도덕적·윤리적으로 옳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합당한 평가이겠지만, 그것이 관객에게 광주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거나 광주를 전에 없던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라고는 볼 수는 없다. 광주에 대한 '택시운전사'의 시선은 오히려 동어반복에 가깝다. 건강한 상식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관객이라면 '택시운전사'의 메시지 정도는 이미 체화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한계는 '택시운전사'가 150억원이 투입된 대규모 상업영화로써 정체성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다. 흥행이라는 절대 목표는 보편성을 가장한 편하고 쉽고 안일한 결정으로 귀결하고, 이런 선택들은 대체로 영화의 날을 무디게 할 뿐만 아니라 생기마저도 잃게 한다. 매우 이례적으로 개봉일 한 달 전에 열린 시사회(개봉 한 달 전에는 보통 제작보고회를 한다), 이후 쉬지 않고 이어진 '택시운전사' 대대적인 홍보 활동은 이 작품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인지 파악할 수 있게 하는 방증이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송강호의 존재에 관한 부분이다. 최근 '택시운전사'를 비롯해 그를 캐스팅하는 데 성공한 일련의 작품들은 송강호의 연기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게 수많은 작품들이 송강호를 잡으려는 이유이고, 이 의존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기도 하다. 물론 배우 또한 영화의 일부분이기에 특정 배우의 부재를 가정하는 게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송강호를 제외한 다른 요소들의 완성도를 높이지 못한 채 그의 연기력으로 버티는 식의 연출을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10년 전 '화려한 휴가'가 있었다. 5년 전 '26년'이 있었다. '화려한 휴가'는 상업영화 장르 안에 광주민주화운동을 처음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지만, 그 의미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한 작품이었다. '26년'은 그때의 울분을 액션스릴러물로 전환한 시도가 인상적이었지만, 완성도는 역시 기대 이하였다. '택시운전사'는 분명 앞선 두 작품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진에 만족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움직임이 결코 진짜 '광주영화'가 도착했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글) 손정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