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정빈 Sep 22. 2017

차를 연주하다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

 운전할 때 음악이 필요한 이유를 '베이비 드라이버'(감독 에드가 라이트)는 안다. 질주할 때는 왜 빠르고 경쾌하며 강한 음악이 있어야 하는지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안다. 으르렁대는 배기음과 속도를 높일 수록 빠르게 사라지는 창 밖 풍경, 차 안 작은 공간을 꽉 채운 멜로디와 비트가 만드는 묘한 쾌감, 바로 그것 때문이다. 안에서 부글대는 에너지를 참지 못하고 흘러나오는 노래에 추임새를 넣는 그 흥분 하나로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베이비 드라이버'다. 주인공 '베이비'(안셀 앨고트)가 아무리 긴박한 순간에도 상황과 딱 맞는 음악이 있어야 운전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설정은 이 작품의 방향을 알린다.


 이야기는 평범한 범죄영화 서사와 다르지 않다. 기가 막힌 운전 실력을 가진 한 청년이 있다. '베이비'라는 별명을 쓰는 그는 이른바 '탈출 전문' 드라이버로, 무장 강도 팀에 소속돼 이들의 도주를 돕는 역할을 한다. 강도 집단 리더인 박사(케빈 스페이시)에게 빚을 진 탓에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해왔던 베이비는 꾸준하면서도 완벽한 운전으로 채무를 청산하는 데 성공하고, 범죄와 인연을 끊으려 한다. 그러나 박사의 협박에 못이겨 마지막으로 참여한 일이 꼬이면서 쫓기는 신세가 된다.


 밴드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플로전'(The Jon Spencer Blues Explosion)의 노래 '벨바텀스'(Bellbottoms)가 흐르는 5분30초 분량의 오프닝 시퀀스를 보고 나면 '베이비 드라이버'가 어떤 영화인지 감이 온다. 말하자면 진짜 주인공은 음악이다. 자동차 액션 장면은 물론 배우의 연기까지 영화의 많은 요소가 노래가 선사하는 에너지를 극대화하는 데 복무하는 듯하다. 라이트 감독은 그가 사랑하는 노래들을 가장 흥겹게 즐기는 방법을 찾다가 운전할 때 그 재미가 최고조에 달한다는 걸 알았고, 그런 이유로 이런 뮤직카액션영화 '베이비 드라이버'를 구상한 것처럼 보인다(라이트 감독은 선곡 후에 노래에 맞춰 이야기와 액션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베이비는 밴드로 치면 보컬이자 기타리스트다. 그가 운전하는 자동차는 베이비의 밴드 동료이면서 악기다. 차에서 나는 모든 소리가 음향이다. 베이비가 노래를 따라부르며 핸들을 돌리고 와이퍼를 움직이는 건 일종의 무대 퍼포먼스다. 질주하던 차가 급격히 방향을 바꿀 때 순간적으로 페달을 바꿔 밟으며 기어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기민한 움직임은 현란한 기타 솔로 연주다. 편집 지점이 노래가 전환하는 순간과 조화를 이루고(물론 의도적으로 어긋나기도 한다), 인물이 처한 상황과 가사 또한 들어맞는다(일부러 상황과 반대되는 가사의 노래를 삽입하기도 한다). '베이비 드라이버'라는 영화 자체가 하나의 음악이다.

 한 편의 긴 뮤직비디오 혹은 뮤지컬 같기도 하고 콘서트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작품은 삽입된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사운드 효과가 좋은 극장에서 볼 것을 추천한다). 존 앤 얼의 '할렘 셔플'(Harlem Shuffle), 모던 러버스의 조너선 리치먼이 부른 '이집션 레게'(Egyptian Reggae), 비치 보이스의 '레츠 고 어웨이 포 어와일'(Let's Go Away For Awhile), 데인저 마우스의 '체이스 미'(Chase Me), 그리고 퀸의 '브라이튼 록'(Brighton Rock) 등 명곡은 액션영화 치고는 다소 긴 113분의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 '뜨거운 녀석들'(2007) 등에서 보여준 라이트 감독 특유의 냉소적이지만 재기발랄한 유머 감각을 맛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다. 폭발할 듯한 에너지를 보여주는 장면 사이사이 자기 자리를 제대로 찾은 코미디 요소는 달릴 때와 멈출 때를 아는 듯 영화의 균형을 맞춘다. 의도가 들여다 보이는 게 아니라 재치를 타고난 창작자의 개그라는 점에서 편하고 흥겹다. 베이비를 연기한 안셀 엘고트를 중심으로 케빈 스페이시·제이미 폭스·에이사 곤살레스·존 햄·존 번탈 등의 확고한 캐릭터 연기도 인상적이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한바탕 신나게 즐겨보자고 만든 영화가 맞지만, 그렇다고해서 직관과 감각만으로 연출된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작품보다 정교하게 구축돼 있다. 인물 작명부터 캐릭터를 어떻게 소개하고 움직여 나갈지, 액션은 어떻게 시작해서 어디서 마무리 지을지, 이 와중에 이야기는 어떻게 전진시켜나갈지, 배우들은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가 정확하게 계산돼 있다. 게다가 이 모든 걸 음악에 맞춰 진행해 간다. 분명한 건 흔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거다. 극장에서 큰 화면으로 보면서 크게 듣지 못한다면, 이 작품의 많은 걸 놓치게 된다.


(글) 손정빈


작가의 이전글 성장의 공포, 공포의 성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