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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빈 Sep 22. 2017

성장의 공포, 공포의 성장

 '그것'(감독 안드레스 무시에티)이 어떤 영화냐고 묻는다면, 간단히 대답하기 힘들다. 공포영화이면서 성장영화다. 낭만적이고 잔혹하다. 귀여운데 섬뜩하고 징그럽다. 해와 숲과 물이 있지만, 비와 하수구와 오물도 있다. 용기와 비겁, 결합과 해체, 농담과 진담, 행복과 비애가 같은 자리에 있다. 어쩌면 이건 온통 장난으로 보이기도 하다가 때로는 진지함이 지나치기도 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런 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쉽게 말해도 그만인 영화다. 재밌다. 흔해빠지지 않았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선 과도기적 존재들이 그들이 가진 내밀한 두려움을 깨고 나와 한 뼘 더 성장하는 서사는 정직하고 올바르고 보편적이지만, 새로울 게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남다른 통찰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건 이야기를 담아내는 방식에 충분히 공을 들여서다. '그것'은 단순히 성장담을 공포영화에 녹여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러닝 타임 내내 상징적인 이미지들을 파격적으로 교직하면서 그들의 일보 전진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1988년 데리, 빌의 동생 조지가 사라진다. 1년이 지났지만, 동생의 실종에 여전히 죄책감을 느끼는 빌은 여름방학이 되자 본격적으로 조지를 찾아나선다. 그는 이른바 '루저클럽' 친구들인 리치·에디·스탠을 설득해 함께 조사를 시작하고, 새 친구들인 베벌리·마이크·벤까지 끌어들여 동네를 헤집고 다닌다. 그런데 이들에게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삐에로 형상을 한 알 수 없는 존재가 친구들의 눈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자 위협을 느낀 이들은 동생 찾기를 하나둘씩 포기하기 시작한다.


 공포스릴러물의 그림자 속에 있지만, '그것'은 결국 유쾌하고 명랑한 청춘성장영화다. 온종일 우르르 몰려 다니기 좋아하는 그 우정, 시덥지 않은 농담과 장난들, 이성에 막 눈뜨기 시작했을 때의 호기심, 무모한 용기와 막연한 두려움 등 커가는 시기의 상징과도 같은 것들이 '그것'에 있다. 조지의 실종과 이 사건에 대한 빌의 아픔이 상대적으로 더 부각될 뿐, 루저클럽 친구들 모두 각자의 고민에 둘러싸인 성장기에 있다. 루저클럽 멤버들을 가혹하게 괴롭히는 헨리의 사춘기 또한 녹록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것'은 공포영화의 공포를 관객을 놀래키는 데 쓰지 않는 공포영화다. 성장을 막아서는 건 그들을 둘러싼 세계의 온갖 제약이고, 영화는 이 제약들을 살인마 광대 페니와이즈가 선사하는 공포로 치환한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었다고 크는 게 아니다. 마음 속 깊이 자리한 두려움을 하나씩 이겨내지 못한 사람을 성숙했다고 할 수는 없다. 페니와이즈를 막지 못하는 어른들이 페니와이즈 만큼이나 공포스럽게 표현되고, 이들이 중심이 된 데리라는 마을이 알 수 없는 무기력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공포의 시각화는 '그것'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온갖 생각들이 동생의 실종에 집중돼 있는 빌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조지의 환영을 본다. 엄마의 과도한 보호 속에서 온갖 약을 챙겨 먹는 에디는 끔찍한 모습을 한 나병 환자를 마주한다. 엄마가 없는 집에서 생리를 시작하며 여자가 된 베벌리의 공포는 쏟아지는 피로 표현된다. 사고로 부모를 잃은 마이크가 부모의 사고 당시 모습인 것처럼 보이는 장면을 자꾸 보게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측면에서 페니와이즈는 루저클럽의 성장을 독특한 방식으로 돕는 '미친 데미안'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포영화의 전형적인 장소들을 상징적으로 활용하는 부분도 눈에 띈다. 숱한 영화들이 깊고 어두운 곳을 통과하는 걸(가령 터널과 같은) 더 나은 존재 혹은 새로운 존재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로 설정하는데, '그것'에서 루저클럽이 헤매고 다니는 중수도와 하수도가 바로 그런 공간이다. 이 모든 파이프들이 모이는 어느 오래된 버려진 장소에서 루저클럽이 페니와이즈와 결전을 벌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깊고 어두운 곳, 오래되고 버려진 곳은 사실 공포물의 클리셰 중 클리셰다.


 그러니까 새로운 이야기나 새로운 설정이나 새로운 인물 같은 건 없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을 한 군데 펼쳐놓고 그것들을 재조립해 완성됐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궁금한 영화인 건 분명하다. 이 작품은 앞서 조던 필레 감독이 '겟 아웃'에서 공포물에 사회 비판을 접목해 또 다른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글) 손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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