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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빈 Nov 15. 2017

김혜수, 그가 할 수 있는 것

김혜수는 여전히 "내가 배우에 적합한 사람인지 고민한다"고 했다.

 배우 김혜수(47)를 만나기 전 그에 대한 이미지는 '연예인' '스타' '배우' '패셔니스타'와 같은 것들이었다. 물론 이 단어들에는 어떤 가치 판단도 담겨 있지 않다. 그냥 그렇다는 것. 어린 시절 배우 생활을 시작해 삶 대부분 시간을 말 그대로 '톱스타'로, 그야말로 화려하게(겉으로 보이기는) 살아왔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고 있으니 이 막연함이 꼭 나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닐 것이다. 


 내가 지금껏 만나왔던 이른바 최고 위치에 있는 배우들의 공통점은 세 가지 정도다. 생각보다 수더분하다는 것, 오히려 매너가 좋다는 것, 언제나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혜수 역시 그랬다. 그는 김혜수를 생각할 때 떠올렸던 단어들과는 멀어도 너무 먼 사람이었다. 인터뷰어의 질문을 경청하는 태도, 가장 좋은 답변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어떤 질문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성실히 답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인터뷰를 많이 하다 보면 상대가 어떤 마음으로 답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는 항상 밝게 웃었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을 본 적 있을 것이다. 타고나기를 영리하고 영민한 사람. 배우 중에도 그런 인간들이 있다. 딱 한 명을 예로 들자면 강동원이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길어질테니 요약하자면 이렇다. 그는 한 마디로 영화에 대한 이해가 높다. 상상력이 좋다. 그런데 현실감 또한 좋다. 강동원이 '어떤 시나리오를 읽고 있는지'는 영화 관계자들에게 꽤나 좋은 정보다. 그가 진지하게 보는 시나리오는 괜찮은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니까. 

 그렇다면 김혜수는? 그는 강동원과는 다른 스타일이다. 강동원이 '감각적'이라면, 김혜수는 '반성적'으로 보였다. 김혜수는 시행착오를 겪고 자신의 실수들을 고쳐나가며 더 나은 배우가 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강동원보다 느릴 수 있지만, 더 정확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끊임 없이 생각하는 사람이랄까. 인터뷰를 하다보면 당연히 역할과 연기에 관한 불편한 질문이 나온다. 평범한 배우들은 대개 피해간다. '최선을 다했다'고 에둘러가거나 '감독 디렉션이 그러했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김혜수는 그러는 법이 없다. 그는 인정한다. 새 영화 '미옥' 인터뷰 때도 그랬다. 그는 "차갑고 드라이하게 그리려고 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내 연기가 미흡했던 부분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사실 그건 김혜수의 잘못이 아니라 이안규 감독의 패착이다). 김혜수 정도 되는 베테랑 배우가 기자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반성 그리고 전진. 나는 그것이 김혜수를 지금의 위치에 올려놨다고 본다. 그러니까 김혜수는 강동원과는 다른 쪽으로 비범한 사람이라는 거다(일반적으로 강동원 같은 사람만 머리가 좋다고 여겨지지만, 김혜수 같은 스타일 또한 그에 못지 않게 똑똑한 사람이다). 이번 인터뷰 때도 그랬다. 그가 했던 몇 가지 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 중 두 가지를 공유한다.



 첫 번째,


 "내가 정말 연기하기 적합한 사람인지 늘 생각해요. 이걸(배우를) 오래할 수 있을지…. 단순히 제 연기가 나쁘게 평가받거나 좋게 평가받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배우라면 저래야지'라는 배우들이 많으니까요. 반면 전 그렇지 못한 것 같고요. 얼마 전에 우연히 TV에서 해주는 '밀양'을 봤어요. 개봉 때도 봤죠. 근데 다시 보니까 또 다른 거예요. 송강호, 전도연. 그때도 엄청난 연기라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흐른 뒤에 보니까 그들의 연기가 정말 위대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두 분 연기 보면서 새삼 배우의 위대함을 느낀 거죠. 그때 제가 아니라 저런 사람들이 배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도연씨한테 연락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서….(웃음) 영화가 끝나니까 새벽이 됐는데, 잠깐 집 밖으로 나와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어요. 마음이 막 심란해지거나 그랬다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기분이 더 말끔해지더라고요. 인정하게 됐어요. 


 이때 질문이 있었다. '연기하기 잘했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내가 봐도 연기를 잘했다고 생각한 작품이 있었나요?'


 김혜수는 단박에 대답했다. "아직 없어요."



 두 번째,


 "그럴 때 있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저하고 딱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시나리오, 그런 캐릭터가 들어올 때요. 하지만 전 시나리오 읽어보고 내 능력 밖이라고 생각하면 안 해요. 도전을 하냐 안 하냐의 문제가 아니죠. 저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제가 할 이유가 없잖아요. 저 말고 다른 사람이 한다면 이 작품이 더 좋아질텐데, 제가 욕심을 부리면 안 되는 거죠. 그렇게 저한테서 넘어간 배역이 많아요. 잘 된 작품도 있고, 안 된 작품도 있죠(어떤 작품인지 김혜수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잘 됐다고 해서 배가 아프거나 안 됐다고 해서 '내가 할 걸 그랬나' 이런 생각은 전혀 없어요. 전혀요. 다만 제가 할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때 도전합니다. 저는 저를 없애고 완벽하게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연기는 하지 못했요. 저한테 아주 작은 거라도 소스가 있어야 해요.


(글) 손정빈 뉴시스 영화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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