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염력'의 연상호 감독을 만나다
연상호(41)는 연상호와 싸운다. 실사영화 데뷔작인 '부산행'(2016)으로 1000만 관객을 달성한 역대 두 번째 감독이 되고도 그는 일부 관객에게 '내가 알던 연상호가 아니다'라는 비판 혹은 비난을 들어야 했다. 1997년 단편 애니메이션에서 경력을 시작해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나아갔고,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실사영화로 분야를 확장해 또 한번 성공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래픽노블에도 손을 대 온갖 장르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처럼 한국영화계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에게 마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표현이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연상호스러운 것'이라는 말이다.
아마도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를 지나오면서 연상호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어떤 스타일이 바로 그 '연상호스러운 것'의 정체일 게다. 징글징글한 서사, 처절한 캐릭터, 통렬하게 가슴을 치는 메시지…. 이랬던 그가 더 많은 대중을 상대하기 위해 상업영화의 문법을 적극 끌어드린 '부산행'을 내놨으니 그의 변심에 실망한 팬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부산행' 이후 약 1년 6개월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실사영화는 '부산행'보다 더 대중적인 코드의 오락영화 '염력'이다.
평범한 중년 남성에게 초능력이 생기고, 그가 그 힘을 위기에 빠진 딸을 구하기 위해 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편한 화법으로 관객을 즐겁게 하는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이 영화가 개봉하고 나면 또 한 번 '연상호스러운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가 상황이 펼쳐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변의 이런 말들에 대해 연 감독은 그저 "새로운 게 하고 싶고, 그렇게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영화를 오래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늘 작품을 구상하고 있고, 늘 작품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개봉 앞두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
"기대되고, 설렌다."
-'부산행'에 이어 두 번째 실사영화다. '부산행' 개봉 기다릴 때와 다른 게 있나.
"그때만큼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부산행'이 매우 잘됐다는 점이 주는 차기작에 관한 스트레스는 이미 정리를 하고 '염력' 작업에 들어갔다."
-'염력'에 관한 반응 찾아봤나. '부산행'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 대해서도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말한 것처럼 반응이 정말 많지 않나. 그래서 사실 뭐가 진짜인지 잘 모르겠다.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웃음) '부산행' 때와 비교하자면, 그때보다는 마음이 더 편하다. 당시에는 칸영화제 상영 뒤에 국내 개봉까지 두 달 정도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참 괴로웠다. 당시에 칸에서 국내외 언론의 다양한 평가가 있지 않았나. 리뷰들이 쏟아지는데, 정신을 못차리겠더라.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좀 낫다."
-'부산행' 때처럼 이번에도 이런 평가가 꽤나 많았다. '연상호 영화 치고는 평범하다.' 이런 발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어떤 기대를 말하는 건지 사실 정확히 잘 모르겠더라.(웃음) 누군가는 '부산행' 같은 영화를 또 만들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그 '기대'라는 걸 충족시키지는 못했을 거다."
-'부산행' 같은 영화를 또 원한다기보다는 '돼지의 왕'(2011)이나 '사이비'(2013) 같은 애니가 실사로 만들어지기를 원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얼굴'이라는 그래픽노블을 내놨다.(웃음) 일단 '염력'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새로운 걸 하고 싶었다. 코미디는 많은 감독님들이 도전하고 싶어 하는 장르일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 영화계에느 액션 스릴러가 개발된 것만큼 코미디 영화가 다양하지는 않다. 이제는 코미디 장르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있어야 할 때라고 봤다."
-새 만화 '얼굴'(1월15일 출간)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작가의 말'을 보면 "20년 동안 성실히 이야기를 만들어오면서 창작자로서 지쳤다"는 대목이 있다. 일종의 자기 고백 같았다. "지쳤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내 안의 인정욕구에 지쳤다는 말이다. 영화 처음 시작할 때, 영화를 만들고나서 칭찬받고 싶었다. 그렇게 계속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창작 활동을 하다가 '돼지의 왕'으로 처음 인정을 받게 된 거다. 후속작이었던 '사이비'도 마찬가지였고. 그걸(인정을) 놓치기 싫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부산행'을 만들 때 참 괴로웠는데, 그 또한 같은 이유때문이었다. '계속 인정받고 싶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와 같은 그런 거다."
-그런 지친 마음에서 벗어나서 만든 작품이 '염력'이었기 때문에 이 작품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유쾌한 건가.
"음….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굉장히 마음이 편한 상태에서 작업했다."
-그래픽노블 '얼굴'은 당신의 팬들이 원하는 '연상호스러운' 작품이었다. '부산행' 직후에 나온 애니메이션 '서울역'도 과거의 연상호에 더 가까운 영화였다. 장르에 따라 연출 방식을 명확하게 구분한다는 생각이 든다. 실사영화는 상업적으로, 애니메이션과 만화는 기존 연상호식으로.
"꼭 구분해 놓은 건 아니다. 다만 자본과 관련이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얼굴' 제작비는 내가 직접 댔다.(웃음) 제작비 누수도 내가 감당하는 거다. 그러나 실사영화는 다르다. 많은 분이 투자를 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의 돈이 들어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하는 건 불가능하다. 적어도 영화감독의 직업 윤리라는 측면으로 봤을 때 이 영화를 봐줄 보편적 고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로 벌어서 하고 싶은 애니메이션을 하는 데 쓴다는 느낌을 받는다.
"꼭 그렇지는 않다. 만화나 애니메이션도 잘 되면 좋은 것 아닌가.(웃음)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애니메이션과 만화에도 챙겨야 할 스태프가 있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지 않나. 다만 너무 계산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가령 이런 거다. 내가 지금 '부산행2'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다고 하면 이건 무조건 되는 기획 아닌가. 분명 흥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겠다는 거다."
-다시 '염력' 이야기를 해보자. 연상호는 분명 '돼지의 왕' '창' '사이비' '얼굴' 같은 걸 만들 수 있는 연출가다. 그렇다면 '염력'은 의도적으로 매우 쉽게 만들어진 작품으로 볼 수밖에 없다. 더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눈높이 조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만은 볼 수 없다. 크게 보자면, 지금껏 이런 B급 코미디에 아주 뭉특한 사회적 메시지가 결합된 작품이 흔하지 않았다. '부산행'을 만들 때 이제는 좀비물이 나올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한국 관객이 해외 좀비물을 꾸준히 봐오면서 좀비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었을 때였으니까. '염력' 때는 키치적인 코미디가 될 때가 됐다는 생각을 했다. 해외에서는 꽤나 인기있는 장르인데, 아직 한국에서는 큰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20~30대는 새로운 걸 어느 세대보다 빠르게 흡수하니까, 통할 거라고 봤던 거다."
-B급 코미디에 방점이 찍혔다고 해도 초능력을 소재로 한 만큼 기술적인 부분에서 신경쓰지 않을 수는 없다. 최근 각종 슈퍼히어로 영화가 나오면서 기술적 완성도에 대한 관객의 기준이 꽤나 높아진 게 걱정되지는 않았나.
"'부산행' 제작비를 '월드워Z'의 그것과 비교할 수가 있겠나. '염력'도 '어벤져스'와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염력' 130억원, '어벤져스' 2400억원). 이렇게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하면 되는 거다. 대신 B급 코미디라는 측면, 히어로영화의 클리셰를 따르면서도 안으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 독특함으로 승부를 보고 싶었다."
-'연상호 영화'를 보는 관객은 당신이 이번에는 어떤 메시지를 영화에 담아낼 것인지 기대한다. '염력'처럼 B급 슈퍼히어로 영화를 만들어도 그렇다. 그게 바로 당신도 언급한 "또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이런 시각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없다. 그런 부담감은 없어진지 꽤 됐다. 내가 만든 영화를 관객이 재밌게 보기를 바랄 뿐이다. 영화라는 매체는 만화나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르다고 본다. 영화는 잔상을 남기는 게 중요하달까. '인상 기억'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 실제로 영화는 그런 역할을 한다. 가령 어떤 영화에서 특정 직업의 인물이 관객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겼다면, 관객은 실생활에서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 일단 이미지가 좋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이번 작품에서 남기고 싶은 '인상 기억'은 무엇이었나.
"철거민들의 모습이다."
-말한 것처럼 '염력'은 용산 참사를 곧바로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당신이 시사회 후 열린 간담회에서 했던 말들은 이 작품과 용산 참사와의 연결성을 애써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분명히 해야 할 건 '염력'이 용산 참사와 관련 없는 영화라는 말이 아니라는 거다.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다. 용산 참사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도시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더 보편적으로 영화를 봐주기를 원했다. '염력'에는 용산 참사를 참고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쌍용차 사태를 참고한 장면도 있다. 관객이 용산을 떠올리는 건 아마도 컨테이너 때문일텐데, 이런 철거 현장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컨테이너다.(웃음) 다시 말하자면, '염력'이 용산 참사에 쏠리지 않기를 바란 것 뿐이다."
-'염력'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역시 홍 상무와 석헌의 대화 장면이다. 정유미 배우의 연기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가 이런 악역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소화해낼 거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홍 상무는 참고한 캐릭터가 있나.
"정유미를 참고했다.(웃음) 홍 상무를 지금의 홍 상무처럼 만들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정유미 배우가 알아서 잘하겠거니 생각했다. '부산행' 때 함께하면서 인풋과 아웃풋이 굉장히 빠른 배우라는 걸 알았다. 더 다양한 모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홍 상무를 맡아주기를 바랐다. 정유미 배우가 너무 잘해줘서 촬영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정유미 배우의 연기도 인상적이었지만, 그의 대사들도 하나같이 꽂히는 것들이었다. "진짜 초능려을 가진 사람들은 저기 위에 계신 분들"이라는 대사는 도저히 부정할 수 없더라.
"바로 그 대사가 이 영화의 출발점이었다. 초능력이라는 건 거대 조직 안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 그딴 능력에 관심도 없다는 것, 그걸 보여주는 거다. 나 또한 좋아하는 장면이고, 대사다."
-아직 이르기는 하지만 차기작 준비 중인지 궁금하다.
"작품은 늘 쓰고 있다. '염력'의 흥행 결과를 보고 선택이 달라지게 될 거다.(웃음)"
-예정된 애니메이션 작업도 있나.
"있다. '송곳'의 최규석 작가와 함께 준비 중이다. 이상한 호러 드라마다. 시나리오 작업 중인데 의견이 안 맞아서 계속 싸우고 있다.(웃음)"
(글) 손정빈 뉴시스 영화담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