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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빈 Jun 05. 2018

유아인의 책임감

유아인은 "배우란 시대를 대변하는 얼굴이어야 한다"고 했다.

 영화 기자라고 소개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대개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영화 많이 보시겠네요", 두 번째는 "연예인 자주 보시겠네요"다. 두 번째 말에서 파생하는 질문이 있는데, 그건 "어떤 배우가 제일 예뻐요?"와 "누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으로 정해진 배우가 있지는 않다. 고민하는 척을 조금 하다가 그날 그날 생각나는 배우를 말한다. 그동안 나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윤여정을 언급하기도 했고, 최민식을 말하기도 했으며, 차태현이라고도 했고, 송강호나 김혜수, 이병헌·강동원·전도연 등을 입에 올렸다.


 이 배우들의 이름을 대면 대개 고개를 끄덕인다. 이러한 동의에는 연기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이들의 경력에 이견이 있기 힘들다는 일종의 합의 같은 게 있다. 그러나 예외인 배우가 있다. 종종 언급하곤 하는 이 배우의 이름이 나오면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 한다. 그리고 뒤따르는 질문. "걔 좀 이상하죠?"

 "좀 이상한" 이 배우는 유아인(32)이다. 그는 청소년드라마로 경력을 시작한 배우로는 드물게 성인 연기자로 안착하는 데 성공했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내달려 또래 세대를 대표하는 배우가 됐다. 데뷔 이후 15년, 이제 유아인은 한국 영화계를 이야기할 때 빼놔서는 안 되는 이름이 됐다.


 착실하게 쌓아올린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는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었다. 유아인은 아마도 소셜미디어에 자기 생각과 철학을 거리낌 없이 털어놓은 최초의 연예인일 게다. 그로 인해 촉발한 논쟁들을 피해가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언어로 돌파하려했다는 점도 여느 스타들과는 달랐다. 일례로 최근 이른바 '애호박 논란'은 이 사건의 의미를 떠나 유아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처럼 독특하고 흥미롭기에 사람들은 유아인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몇몇 발언과 행동을 두고 '또라이'라고 쉽게 규정해버리거나 어느 시상식에서의 수상 소감을 보고는 '게이같다'거나 '약 한 것 같다'고 서슴없이 판단해버렸다. 그의 군(軍) 문제나 조문(弔問) 방식에도 갖가지 말이 오갔다. 그래서 유아인은 배우로서 받는 높은 평가와는 달리 언제나 문제적 인간이었고, '좀 이상한' 애였다.


 나 또한 유아인에 대한 이러한 선입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난 그의 연기에 대해서도 다른 기자들보다 박하게 평해왔다. '언제나 강렬하지만 매번 뛰어난 건 아니다.' 이것이 지금도 '번ㅇ' 이후에도 유지하는 유아인의 연기에 관한 내 생각이다.


 다만 유아인을 인터뷰한 뒤,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가 연기를 대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이 태도는 유아인이라는 인간의 타고난 성정(性情)까지도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의 말에는 적절한 자만과 적당한 겸손이 묻어있었다. 너무 겸손한 사람은 오히려 오만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내게 그의 균형은 인상적이었다. 그의 타고난 영민함과 고민 끝에 갖게 됐을 진지함은 단순히 연기를 대하는 태도를 떠나 그가 삶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그가 했던 말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세 가지를 공유한다.   


첫 번째,


 "제 얼굴에 맞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다시 말하자면, 지금의 저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고 싶은 거죠. 제 필모그래피에 청춘에 관한 영화들이 많다면, 아마도 그것이 당시의 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었고, 제가 그걸 택했기 때문일 겁니다. 다만 그 안에서 관객이 지루하지 않게끔 변화를 줘야 해요. 만약 비슷한 캐릭터를 반복해서 연기하면 저조차도 제 얼굴이 너무 지루하게 느껴졌을 테니까요.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최대한 자유롭게 연기하는 게 배우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그게 바로 배우가 시대를 대변하는 얼굴이 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건 오만이 아니라 의무이고, 책임감입니다. 그런 것들이 배우가 가져야 할 덕목이겠죠. 전 제 선택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관객의 선택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니까요. 그건 당연한 겁니다."



두 번째,


 "제가 그분들한테 배움을 드릴 수는 없겠죠. 하지만 연기하는 즐거움은 충분히 줄 수 있습니다. 재미를 드리고, 신선한 자극을 드리는 거죠. 그게 후배 배우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전 선배·후배를 떠나 항상 활짝 열려있고 싶어요. 촌스러운 사람들이 꼭 '난 나야'라면서 주변에 어떤 것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해요. 진작에 프로인 사람들은 끊임 없이 배워요. 관찰하고, 들으려 하죠. 배우라는 직업은 이 세계에 관해 이야기하는 거니까, 어찌보면 당연한 거죠. 그런데 이건 또 어떻게 매우 놀라운 일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1000만 관객을 끌어모으는 배우가 되고, 모두가 상찬하는 배우가 됐는데도 이 열린 태도를 유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죠. 재밌는 건 그런 위치에 있는 분들 중에 이 태도를 갖고 있지 않은 분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제가 만나 본 분들 중에는요. 영화라는 게, 연기라는 게, 나 혼자만의 놀이가 아니라는 것. 함께 호흡하는 동료들 뿐만 아니라 관객까지 생각하는 배우가 돼야 한다는 것, 그게 중요해요."


세 번째,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전 그 숫자에 연연하고 있어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말해요. '넌 정말 안 그럴 것 같다고'요. 나이를 먹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느냐의 문제겠지요. 이십대 유아인의 얼굴과 삼십대 유아인의 얼굴이 계속 같을 수만은 없으니까요. 그때 그때 제 얼굴이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고, 배우로서 어떤 전환을 만들어내고 싶은 욕심이라고 봅니다. 그 욕심이 어떤 순간에는 강박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다만 영혼만큼은 계속해서 맑게 유지해가고 싶어요. 그건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거든요. 젊은 영혼을 가지고 있어야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봐요."


(글) 손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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