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터슨'
짐 자무시(63·Jim Jarmusch) 감독의 '패터슨'은 시(詩)다. 시 쓰는 버스 운전기사라는 설정부터 어딘가 시적이고, 이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반복과 차이'로 스크린에 써내려가는 방식이 결정적으로 시적이다. 그의 시는 평범한 일상을 예민하게 관찰한 결과물이다. 그러고보니 영화는 일상을 시로 쓰는 남자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관객은 그의 삶 일부를 주시하게 되는데, 버스를 모는 그 또한 승객의 삶 중 특정 순간들을 목격하는 게 일과다. 이 중첩은 일종의 운율이다. 월요일부터 일요일, 시인의 일주일은 일곱 개의 연(聯)이다. 그의 이름은 패터슨, 그가 사는 곳은 패터슨시(市)다.
시와 영화가 다르지 않다고 자무시 감독은 믿는다. 찰나와 영원을 몇 개 단어와 몇 줄 문장에 싣는 게 시이고, 생활 혹은 역사를 두 시간짜리 영상으로 축약하는 걸 영화로 본다면 두 장르는 매개체만 다를 뿐 같은 결국 곳을 본다. '패터슨'은 영화로 시를 쓰고, 시로 영화를 완성해 두 영역의 경계를 흐린다. 활자가 영상이, 영상이 활자가 되는 상호작용이 벌어질 때, '시'라는 단어가 주는 정서는 더 풍만해지니 이제 관객은 누구보다 예민해져서 패터슨의 아주 작은 심경 변화에도 크게 흔들리고 만다. 특별한 일 하나 일어나지 않는 118분은 그래서 지루할리 없다.
패터슨(애더 드라이버)은 캘리포니아 패터슨에서 버스 기사로 일한다. 그의 일상은 평범하다. 아내 그리고 불독 한 마리와 함께 사는 패터슨은 매일 아침 6시10분께 일어나 시리얼을 먹고 출근해 버스를 몰고 해가 지기 전에 퇴근해 아내와 저녁을 먹은 뒤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 단골 바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집에 돌아오는 일상을 반복한다. 한 가지 특별한 게 있다면 그가 틈틈이 시를 쓴다는 것이다. 아직 시집을 내본 적은 없지만, 그는 자신의 비밀 노트에 매일 시를 쓰는 시인이다. 영화는 그런 패터슨의 일주일을 담는다.
결국 영화에서 중요한 건 '무엇'을 다루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려내느냐다. 유별난 소재를 장착하고도 무기력한 작품이 있는 반면 이렇다 할 무기 하나 없이 관객의 마음을 손에 넣는 영화가 있다. '패터슨'은 후자다. 그러니까 '사건' 하나 없이 7일 간 일곱 번 반복되는 하루라고 해도 리듬과 운율 속에 담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영화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해결이라든가 성장으로 표현되는 결론 없이도, 눈물이나 웃음 같은 쾌감 없이도 마음 속에 평화를 조용히 안착시키는 것만으로도 어떤 영화는 그것만의 가치를 찾아낼 줄 안다.
반복과 작은 차이, 그 안의 리듬과 운율이 자아내는 묘한 긴장은 이 작품이 관객에게 선사하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가령 패터슨이 6시10분이 아닌 6시25분에 일어났을 때, 지각을 걱정하는 사소한 염려같은 것이다. 매일 똑바로 세워놔도 자꾸만 기울어져 있는 우체통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지, 아내가 사고싶다는 기타를 패터슨은 사줄 능력이 있기는 한 건지, 근심스러운 얼굴을 한 동료에게는 어떤 고민이 있는지, 영화는 그렇게 슬쩍 호기심을 자극해놓고 대수롭지 않게 답을 내놓는다. 빽빽하게 채우는 게 아니라 이렇게 넉넉하게 비워놓는 게 '패터슨'이 시가 되는 방식이다.
'왜 시인가?' '왜 일상인가?' '패터슨'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답한다. 시는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 시인은 많은 이들이 쉽게 지나치쳐버리기에 무의미로 남을지 모를 것들에 주목해 유의미한 어떤 것으로 격상한다. 영화가 처음 보여준 패터슨의 시는 겨우 성냥곽에서 출발한 작품이었다. 시와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들여다보면 바에서 벌어진 두 남녀의 흔한 사랑싸움은 '로미오와 줄리엣' 못지 않은 비극이 될 수도 있다. 아내와 영화를 보러 간 사이에 패터슨에게 벌어진 사실은 대단치 않은 어떤 일은 이 영화 관점에서 보면 대단한 좌절감을 안기는 사건이 되기도 한다.
'패터슨'이 힐링 혹은 위로와 같은 단어와 함께 놓일 수 있는 건 이렇듯 일상의 무의미를 유의미한 것으로 확장해내기 때문이다. 부질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당신들의 하루하루는 사실 매번 시로 쓰일 수 있을 정도로 새로움과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그렇기에 우리 삶이 부질 없이 흘러가버린다고 한탄할 이유가 결코 없다고 자무시 감독은 조용히 내뱉는다. 어쩌면 '왜 시인가?' '왜 일상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같다.' 일상이 시다. 시가 일상이다.'
(글) 손정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