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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빈 Jun 18. 2018

공유의 열등감

공유는 "달라지지 않으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배우 공유(39)를 처음 만난 건 2013년 12월, 그가 원신연 감독의 '용의자'로 복귀했던 때다. 내게 공유는 로맨틱코미디에서 주로 활약한 TV 스타, 화려한 외모로 수많은 여성팬을 보유한 청춘스타…딱 그정도였다. 그의 신작 또한 인상적이지 않았기에 큰 기대는 없었다. '공유와 인터뷰 했다'는 자랑 아닌 자랑거리가 생길 거라는 시덥지 않은 상상을 했을 뿐이다.


 내가 작성해 간 질문들은 대개 그의 '연기 변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배우들이 항상 듣는 지겹고 평범한 질문이다. 초짜 인터뷰어의 한계이기도 했고, 낮은 기대감이 허술한 인터뷰를 낳았는지도 모르겠다.


 난 당시 어리숙한 인터뷰어였지만, 공유는 인상적인 인터뷰이였다. 타고난 반듯함과 기분 좋은 매너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어떤 질문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자기 생각을 말할 줄 아는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연기를 향한 그의 진지함은 내가 그를 과소평가했음을 인정하게 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생각했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을지 궁금하다.'


 공유가 전도연과 합작한 영화 '남과 여'(2016) 개봉을 앞뒀던 시기에는 소속을 정치부로 옮겼던 때라 만나지 못했고, 같은 해 7월 '부산행'이 개봉하기 직전에 다시 영화 담당을 맡게 되면서 그와 두 번째 만남을 갖게 됐다.


 공유는 당시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남과 여'에서 전도연에게 주눅든 듯한 연기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그의 첫 번째 재난블록버스터영화인 '부산행'(2016년 7월20일) 개봉을 눈앞에 뒀고, 송강호와 함께한 김지운 감독의 '밀정'(2016년 9월 개봉)이 이제 막 예고편을 선보이는 중이었으며, 김은숙 작가의 새 드라마 '도깨비'(2016년 12월 방송) 출연을 결정한 뒤 본격 촬영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공유는 흥행은 물론 연기력에 대한 평가도 신경써야 했고, 오래 떠났던 TV드라마로 돌아와 자신의 스타성이 건재함을 입증해야 했다.


 그때 공유는 그저 솔직했다. '남과 여' '부산행' '밀정' '도깨비'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이야기했고, 현재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것들에 관해서도 보여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보여줬다. 그중 가장 잊혀지지 않는 순간은 그가 가진 일종의 '열등감'을 털어놓던 때다. 나약하게 보이기는커녕 연기에 관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그 과정 속에서 얼마나 괴로워 했는지 느껴지는 발언들이었다. 약점을 드러내 보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강해졌다는 걸 뜻할 것이다.


 당시 그가 했던 말들을 추려봤다.


 첫 번째,


 "욕심은 있죠. 그런데 욕심을 갖고 달려든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운이나 복이라는 말을 써요. 전 원래 호흡이 좀 느린 편에 속하는 배우죠. 다작을 해본 적이 없고, 1년에 한 편 정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좋은 작품이 제게 몰려왔던 것 같아요. 너무나 순조롭게 좋은 영화들이 들어왔고,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었어요. 물론 힘에 부칠 때도 있죠. 하지만 이 복을, 이 기운을 잡아야 했습니다. 언제 이런 기회들이 오겠어요. 당연히 열심히 해야죠."



 두 번째,


 "'도깨비'를 하겠다고 결정하기까지 엄청난 고민이 있었어요. 일단 판타지는 제가 두려워하는 장르였거든요. 자신이 없었어요. 당연히 소극적이고 비관적일 수밖에 없잖아요.(웃음) 그런데 '남과 여' '부산행' '밀정'을 연속으로 하면서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어요. 기라성같은 배우·감독들과 함께하는 건 좋았는데, 그게 연속적으로 이어지니까 상실감이 있었달까요. 그들을 보면서 내가 지금까지 소극적이고 안정적으로 연기를 해온 게 아닌지…자꾸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잃어버린 자신감을 드라마로 되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너무나 유명한 작가님과 엄청난 히트작이 있는 감독님이 제게 그렇게 애정을 보내주시니까, 감사한 마음과 함께 나를 완점히 믿어주는 분들과 함께 하면 소극적이지 않게 더 뻔번하게 놀 수 있을 거라고 봤어요. 음, '도깨비'는 참 힘든 결정이었어요."


 세 번째,


 "연기를 하면 할수록 제가 찍은 영화들을 마주하기가 두려워져요. 오래할수록 여유가 생겨야 하는데…갈수록 어려워집니다. 남들이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줘도 제 단점이 자꾸 극대화돼서 보인다고 할까요. 예를 들면 그런 겁니다. 10개의 연기를 했는데, 9개가 괜찮고 1개가 나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자꾸 그 한 개만 보이는 거죠. 그 한 개에 자꾸 집착하게 되는 거예요. 내가 나를 칭찬해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꾸 주눅이 들어요. 전도연('남과 여') 선배나 송강호('밀정') 선배와 함께 연기할 때 더 그랬죠."


 이때 물었다. "일종의 열등감 같은 것이었나?" 공유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네 번째,


 "두 사람과 연기하기 전에는 '이 정도면 된 거 아니야'라고 했던 때도 있어요.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을 해내는 사람을 볼 때, 아니면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 했던 것을 해내는 사람을 볼 때 마음이 좀 그렇더라고요. 저도 15년 정도 했는데, 그 시간이 어쩌면 안주하고 매너리즘에 빠졌던 시간이 아닐까…고민이 되더라고요. 어쨌든 최근 다양한 작품을 만나고, 거기서 구르고 깨지고 다치면서 결과적으로 저에게 아주 좋은 채찍질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과정이 몸과 마음 모두 지치게 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이때 제가 달리지 않으면 또 매너리즘에 빠질 것 같아요."


 여기까지 듣고나니 연기 생활 15년에 대한 소회가 궁금했다. 그러자 공유는,


 "아유 그런 거 물어보지마세요.(웃음) 겨우 15년 정도로 무슨…. 그냥 이정도만 말할게요. 잘 버텨준 것에 대한 감사 정도만요. 분명 녹록지 않은 일이니까요. 제가 저를 칭찬하는 데 인색하기도 하고, 너무 오글거려요.(웃음) '잘 버텼다" 정도로만 정리할게요."


(글) 손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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