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는 "내 길을 그저 뚜벅뚜벅 가고 싶다"고 말했다.
수년 간 배우와 감독들을 만나고, 그들이 출연하고 연출한 작품을 보면서 재능에 관해 자주 생각했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어떤 분야든 가장 높은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이 중요하다는 것.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건 아니다. 다만 노력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단계는 분명 존재한다. 분야가 예술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누군가는 '피나는 노력'을 이야기하지만, 그런 노력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노력도 재능이다. 최고가 되겠다는 야망을 품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누군가는 꿈도 못 꾸는 걸 어떤 사람은 상상하니까.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가수 겸 배우 이승기(31)는 잘 이해되지 않는 존재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난 그의 성공을 해석해내지 못했다.
연예인으로 국한하면 다소 평범한 외모를 가졌고, 노래 실력이 압도적인 것도 아니다. 준수하다고 할 수 있지만 결코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는 연기력,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활약은 강호동·이수근·은지원·김종민 등 동료들과 만들어낸 케미스트리에 가깝다. 이렇듯 뛰어나게 잘하는 것 하나 없는 이승기는, 그러나 현재 최고 엔터테이너 중 한 명이다. 이 거대한 성공을 우연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기에 이승기를 만나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싶었다.
이승기를 처음 만난 건 박진표 감독의 영화 '오늘의 연애'(2015) 개봉을 앞둔 시기였다. 이승기는 자신이 어떤 이미지를 가진 연예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연예계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는 건 중요하다. 간혹 일부 배우나 가수들은 '도전'이라는 단어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무모한 시도를 반복하다가 자리잡지 못하고 추락한다. 어쩌면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연예인들은 자기 영역을 구축한 사람들일 뿐이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하는 것. 그러나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자신을 잘 모르기에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연예인도 많지 않다. 이승기가 가진 특별한 재능이라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주변에서도 그랬어요. 그 연기는 이승기가 쉽게 너무 가는 거 아니냐고요. 그 말이 한편으로는 감사해요. 하지만 이건 연기잖아요. 모든 연기는 다 어려워요. 평소의 저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면 그것 자체로 인정받겠지만, 익숙함 안에서 스페셜한 뭔가를 보여줘야 하니까요. 저는 제가 안정적인 선택을 했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어요."
"물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겠죠. 캐릭터가 분명한 인물을 연기하는 것처럼요. 그렇게 하지 않았던 건 관객이 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급하게 뭔가를 이뤄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전 대중스타입니다. 제 멋대로 어떤 일을 할 수는 없어요.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무시하고 어떤 일을 추진하기는 어렵다는 말입니다. 나 자신의 발전만이 중요한 건 아니에요."
이후 이승기는 입대했고, 드라마 '화유기'를 끝낸 뒤인 올해 3월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었다. 더 인상적인 건 이때였다. 이 인터뷰에서 이승기는 '나를 안다'는 영민함을 넘어서서 남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에서 특별한 삶의 동력을 만들어내는 비상함을 보여줬다. 이건 다른 어떤 인터뷰이에게서 발견하지 못한 독특한 재능이었다.
2004년에 데뷔했으니까 벌써 15년차. 이른 나이에 이뤄낸 성공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시간이다. 계속해서 일을 해나갈 동기를 생산해내지 못하면 뒷걸음질칠 수밖에 없다. 전성기가 일찍 찾아온 연예인들이 겨우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나이에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대는 건 그런 이유때문이다. 슬럼프에 빠져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힘을 되찾고 일을 해보려고 하면 이미 퇴물 취급을 받는다.
이승기는 남자라면 누구나 가는 군대를 새 추동 방식으로 삼은 듯했다. 다시 말해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흘려 보낼 2년 군생활을 그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이승기가 제대 후 방송에서 '군대 이야기'를 그렇게 자주 말했던 건 아마 이런 이유때문일 게다. 그가 타고난 재능들은 꼭 연예인이 아니어도 어떤 분야에 있든 성공했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했다.
이승기의 말들을 추려봤다.
첫 번째,
"전 거의 평생을 연예인으로 살았잖아요.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제게 무언가가 필요하고 누군가가 있어야 할 때, 부족함을 느낄 때, 그 빈 공간을 채워주는 무언가가 꼭 있었습니다. 제가 스스로 챙긴 게 아니라 누군가가 챙겨준 것들이죠. 그게 자연스러운 일들이었으니까, 제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지 못했어요. 하지만 군대는 다르잖아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스스로 해내야 합니다. 빨래도, 청소도…배식을 받고, 설거지도 해야 하죠. 남들과 똑같이요. 누군가의 도움 없이 오직 제 힘으로 무언가를 했던 건 군대 가서 처음이었어요. 처음엔 두려웠지만, 저도 남들 못지 않게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러자 어떤 일을 해도 다 잘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마음이 군생활 이후 제 활동에서 드러나는 거겠지요. 제대 후 저의 모습에서 자신감이 느껴진다면 아마 연예인으로 할 수 없는 경험을 군대에서 했기 때문일 겁니다. 군생활을 특이사항 없이 무사히 마친 것, 제게 그만큼 큰 의미가 있었어요."
이 자신감이 아마도 '집사부일체'로 이어진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나 PD님이나 호동이 형, 수근이 형과 함께 할 수도 있었겠죠. 안정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안정적으로만 해서는 장기적으로 자생할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집사부일체'를 하게 됐어요. 최선을 다해보는 겁니다. 발버둥치는 거죠. 열심히 하니까 요즘엔 많은 분들이 재밌다고 해주시더라고요."
두 번째
"제가 벌써 15년차입니다. 이제는 누가 시켜서하는 단계는 지났어요. 시청자들이 정말 똑똑하시잖아요. 제 모습을 보면 신나서 하는 건지 억지로 하는 건지 충분히 알아요. 아마 제 팬이나 시청자들은 제가 신나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싶어 하실 겁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하는 일들은 모두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들이에요. 전 그저 제 길을 가고 싶어요. 20대 때는 고민하기도 했죠. 난 가수인지, 배우인지, 예능인지….(웃음) 이제 고민하지 않아요. 제가 노래를 하면 가수로 봐주실 거고, 연기를 하면 배우로 봐주실 거고, 예능을 하면 예능인으로 분리해서 봐주실 거라는 걸 알아요. 고민은 최소화하고 그냥 제 길을 뚜벅뚜벅 가고 싶어요."
(글) 손정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