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정빈 Jul 03. 2018

이종석의 괴로움

이종석은 "지금보다 조금은 더 편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잠이 잘 안 와요. '대세'라는 말에는 끝나버릴 것 같은 불안이 있습니다. 거품이 꺼지는 듯한 느낌이요. 전 그런 배우가 되고 싶지 않아요. 배우가 되기로 했을 때부터 품었던 생각이 있습니다. 꾸준히 연기하는 겁니다."


 "어떻게 배우로 살아남을지 고민이 돼요. '어떻게 해야 하지' '뭘 해야 하지'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판단이 잘 서지 않아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겠죠."


 "저에게 도전이라는 건 무작정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도 필모그래피를 얼마나 차근차근 쌓아올릴 수 있느냐가 진짜 도전이 되겠지요. 그러면서도 대중이 제게 가진 이미지를 소모하는 데서 그치지 않을 수 있다면, 배우로서 제 삶은 더 괜찮아 질 것 같습니다."


 4년 전 영화 '피끓는 청춘' 개봉을 앞두고 만난 배우 이종석(29)은 진지했다. 그때 이종석은 '대세'로 불렸다. 드라마 '학교 2013'과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잇따라 성공시킨 그는 또래 배우 중 김우빈과 함께 최고로 불렸다. 아이돌 스타 부럽지 않은 인기, 게다가 당시 노랗게 물들인 머리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지만 '성공의 맛'에 취해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의외로 차분했다. 장난기가 없지 않았지만, 연기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사뭇 진지했다. 위에 적은 게 당시 이종석이 했던 말들이다. 


 이종석의 불안이 더 멋진 인터뷰를 위해 꾸며낸 말이 아니라는 건 이후 그의 행보가 증명한다. 이종석은 '피끓는 청춘' 이후 출연한 드라마 '닥터 이방인' '피노키오' 'W'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모두 흥행시켰다.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 TV가 뒤섞여 무한경쟁을 벌이는 드라마 업계에서 결코 우연으로 볼 수 없는 성공이다. 

 순정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외모가 그의 성공에 발판을 마련해줬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그만큼 그는 독보적인 몸과 얼굴을 가졌다(개인적으로 실물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그의 성공이 결코 외모만으로 얻을 수 영역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의 연기가 시청자와 관객을 단번에 사로잡을 정도로 독보적인가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는 결코 타고난 배우가 아니다. '시크릿 가든'이나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그의 연기가 얼마나 엉성했는지 기억한다면 그가 결코 천재형 배우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다.


 이종석이 가진 힘의 정체를 알게 된 건 박훈정 감독의 영화 '브이아이피'(2017) 개봉 전 성사된 인터뷰 자리에서다. 그는 3년 전보다 더 차분하고 침착했다. 그 모습을 보자 '예전에도 꽤나 어른스러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러니까 그는 어딘가 어울리지는 않지만(그의 화려한 외모 때문이겠지만), 말 그대로 배우이니까 당연하게도 연기에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살아가는 세계와 그 안에서 내가 행하는 일을 향한 끝없는 고민, 폭발적으로 확장하지는 못하더라 최소한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그 영역을 아주 조금씩이라도 넓히기 위해 애쓰는 움직임들…. 더 좋은 삶을 만들기 위해 능력 만큼 중요한 건 어쩌면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능력은 아무렇게나 발현될 수 없다는 점에서 어떤 순간에는 태도가 전부이기도 하다. 그저 정진(精進)하는 것. 그게 이종석의 힘이다.


그가 했던 말 중 인상적인 세 가지를 꼽아봤다.



첫 번째,


 "언젠가부터 연기가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학창시절에는 발표하고 싶어도 손도 못 들던 내가 연기를 하고 있는데다가 그게 더 나아진다는 느낌이 드니까 참 좋았어요. 몇 년 동안은 괜찮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최근에 제 연기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늘었다는 게 연기가 좋아진 게 아니라 기술이 좋아진 것 같더라고요. 감정을 직접 느끼지 않더라도 기술적으로 이렇게 해버리면 된다…이런 거죠. 그러다보니 이게 정말 맞나…생각이 들고요.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했어요. 내가 얼마나 대단한 배우라고, 얼마나 대단한 연기를 한다고 이러고 있을까. 그런데 난 왜이리도 괴로울까…. 앞으로도 계속 연기를 하려면 현재 이 상황을 뚫고 지나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왔습니다. 전 사실 작품 들어가기 전에 생각보다 더 괴롭게 준비하는 편인데, '브비아이피' 때는 좀 편하게 내버려뒀어요. 감독님에게 맡기고, 선배님들에게 맡기고, 이 시나리오에 맡기고, 영화에 맡기는 거죠. 그런 방법도 있더라고요. 좀 편해졌으면 좋겠어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좀 더 편해지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전 집에 있으면 제가 나온 작품들을 하루종일 틀어놓고 있어요.(웃음) 일종의 모니터링이죠. 전 제가 연기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정확히 말하면 연기하는 저를 TV화면으로 보는 게 좋았쬬. 쾌감이라고 해야 하나. 이유야 어찌됐든 정말 좋아서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치열하게 하고 있더라고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제 연기를 계속해서 보다보면 점점 연기가 좋아지는 게 느껴져요. 그런데 어느 순간 연기가 똑같다고 느꼈습니다. 성장이 멈춰버렸어요.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죠. 도대체 왜 이렇게 밖에 안 되는 건지, 자괴감이 드니까 힘들더라고요. 제가 작품을 쉬지 않고 한 건 그런 자괴감을 느끼기 싫어서였어요. 일 안 하고 집에서 제가 한 연기를 보면 자꾸 그런 생각이 들 것 같았거든요. 연기하는 걸 일상으로 만들었죠. 그게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세 번째,


 "'닥터 이방인' 할 때 제 멘탈이 최악이었죠. 사실 그때가 칭찬을 가장 많이 받았던 때거든요. 그런데 이상하죠. 그때 제일 힘들었어요. 제가 하는 연기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쏟아지던 칭찬도 귀에 잘 안 들어왔죠. 제가 맘에 안 드는데 어떻게 좋아하겠어요.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송강호 선배님 문자 한 통 덕분이었어요. 7회 나가고 나서였던 것 같아요. 선배님 방송 봤다면서 '연기가 아주 좋아졌다. 계속 그렇게 해나가는 거야'라고 보내셨더라고요. 울컥 하더라고요. 그 문자 하나로 버텼어요. 사실 '닥터 이방인' 끝내고 쉬고 싶었는데, 왠지 쉬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있어서 연달아서 작품을 해버렸어요.(웃음)"


(글) 손정빈 기자

작가의 이전글 이승기의 자신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