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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런 Feb 22. 2021

투쟁의 성대는 끊을 수 없다.

권리를 침해 할 권리를 외치는 당신에게



권리, 일을 행함에 있어 당연시 되는 힘.


없다. 누구도 없다.

차별할 권리는 누구도 없다.


권리를 주장한다면 누군가의 입장에서 그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철수 서울 시장 후보는 퀴어 축제에 반대할 권리를 주장한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퀴어축제는 당연히 반대해야 하는 것이 된다. 

시끄럽다고 한다. 조용히 할 수 없냐고 한다.


돌이켜보자.


1919년 3월 1일. 자유를 위해 아우성 치는 그들에게도, 당신은 정숙을 요구할 수 있는가.

1960년 4월 19일. 속박을 벗으려는 젊은 외침에도, 당신은 시끄러움을 비난할 수 있는가.

투쟁의 성대는 끊을 수 없다.


정체성은 선택이 아니다. 생존이다. 그들을 비난 하는 것은 그들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존재를 부정하는 말은 더이상 말이 아니다. 총이고 칼이다. 퀴어 축제를 반대 할 권리는 그런 것이다. 그들 존재를 부정 할 권리. 그들을 비난 할 권리. 그들을 조용히 시킬 권리. 그들의 성대를 끊어버릴 총과 칼을 쥘 권리.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총과 칼을 쥔 상대를 조우 했을 때 당신은 뭐라고 외치겠는가. 살려달라고. 마찬가지다. 그들은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다. 그리고 당신은 그 소리를 줄여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구원의 외침을 투쟁의 소리를 줄여 줄 흉기 그걸 당신은 권리라고 부른다.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하는 권리는 권리가 아니다. 누군가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권리는 권리가 아니다.

누군가를 죽이는 권리는 권리가 아니다. 당신이 주장하는 권리는 권리가 아니다.

가난한 자의 권리처럼. 국민의 권리처럼. 유권자의 권리처럼. 여자의 권리처럼. 남자의 권리처럼. 내 가족의 권리처럼. 소비자의 권리처럼. 한국인의 권리처럼. 조선인의 권리처럼. 사람의 권리처럼. 

그들의 권리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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