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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이 Aug 09. 2022

<Ep.2>마음 편해질 결심

인스타그램의 글계정을 읽는 밤

2. 당신은 누구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까




  구가 느릿느릿 걸어오며 말했다.

  “드디어 누울 수 있다.”

  그는 방금 막 깨끗하게 씻고 머리에 아직도 물기가 잔뜩 남은 채다. 새 러닝을 갈아입고는 에고고고, 소리를 내며 털썩 쓰러지듯이 눕는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돌아와 쓰러지기 직전까지 쉴 새 없이 움직였을 것이다. 허리 디스크도 있어서 서 있는 일조차 힘이 드는 어떤 사람의 밥벌이.


짠한 마음이 눈빛으로 들킬까 봐 그를 쳐다보진 않는다. 구는 누운 채로 자세를 좌우로 조금씩 고쳐가며 스마트폰을 딸깍거리고 있을 것이다. 자주 봤던 어떤 장면은 눈으로 보지 않고 숨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다.      


  “마음 편히 좀 살고 싶다.”


  나는 비로소 구를 돌아다보았다. 구는 여전히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한 채로 말을 했다. 오늘 구의 업무는 한계치를 벗어난 모양이다.

항상 잘 버티기만 하는 구가 그런 무서운 말을 할 때면 나는 버릇처럼 고개를 모니터에 고정한다. 내가 글을 쓰며 앉아 있는 일이 그에게 너무 폐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까닭이다.



  말하자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게 문제다. 그가 일터에서 머리와 힘을 쓰며 고장 난 기기들을 고치고 연결하는 동안 나도 일을 한다.

그러느라 시간이 없어서 동동거리는 나를 보며 구는 집안일의 많은 부분을 자신이 책임지려 한다. 조금이라도 내가 더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려는 것이다.


  한때는 구가 건강이 좋지 않아 벌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동안 내가 일을 해서 그럭저럭 먹고사는 일을 해결해 왔고, 구도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라도 보답하려 한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힘들어하는 구를 볼 때면 자꾸 나 자신에게 질문하게 된다.


지금 하는 게 모든 걸 후순위로 내리고서라도 하고 싶은 일이 맞느냐고, 할 수 있겠느냐고.

우리를 위해서라면 같이 열심히 일하고 돌아와 맛있는 걸 만들어 먹고 편히 쉬는 일로도 충분하지 않으냐고.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얼마나 무책임해 보일까에 대해 생각하는 날도 있다. 아무리 내 몫의 일을 유지한다고 해도 곁에 있는 사람에게 생활의 부분을 의지하고 있다.

그 사람에게 빚진 시간을 갚자면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더 열심히 해야지. 더 잘하면 돼. 그런데도 정작 마음은 구의 한 마디에 스르르 무너지고 만다.      




  버티고 있던 얄팍한 둑이 무너지면 그 자리에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처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할 때면 내게 재능이 있느냐는 물음이 스스로에게 범람한다.

그런 날이면 나는 책을 읽거나 강연을 들으며 인스타그램 한 귀퉁이에 메모해두었던 글귀들을 꺼내 본다.      


  결국 쓰는 사람이 성공한다.

  쓰다 보면 반드시 실력은 나아진다.      


  바보같이 나는 이 말을 믿는다. 계속하면 나아진다고, 길이 있다고 말하는 이 문장을 붙들고 놓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이 생겨서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동안 그 일이 더 좋아졌기 때문이다. 좋아하니 잘 알고 싶어 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좋아하고 잘 알고 싶어진 일 앞에서 사람은 어느 만큼 바보가 되기 마련이다.

 

 실은 아주 오래전에도 쓰는 일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소설을 쓰는 수업이었다. 나는 그 수업에서 결코 주목받는 학생은 아니었다. 보통의 재능과 열정을 뛰어넘는 사람들이 그 수업에 나왔다.

그분들의 노력에 반의반도 따라갈 수 없었던 내가 종국에 알게 된 것은 결국 하고자 하는 내 욕심이 보잘것없다는 것뿐이었다.


  그 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때 만났던 동료들의 이름을 가끔 검색해 보곤 했다. 그러면서 가끔 흠칫 놀랐다. 버젓하게 네이버에 나오는 인물이 되어서가 아니다. 작품을 기고하거나 책까지 낸 문인들은 그 당시 잘 쓴다고 부러움을 샀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현재 작가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계속 썼던 사람들이었다. 그 시절 꼬박꼬박 나오지 않는다며 혼났었거나, 심지어 글이 별로라고 평가받기도 했던 이들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못할 거야.


  긴 시간 동안 괴로워하고, 자기를 의심하고, 미래도 의심하면서도 그들은 썼을 것이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그래서다. 실행하는 동안 실패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단지 그건 머릿속 이야기일 뿐이라 실제로는 여전히 실패에는 취약하다.

그래도 지속할 수밖에 없다. 다시 포기하는 순간, 누구도 아닌 다름 아닌 내가 나를 얼마나 미워할지 알고 있어서다.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 하는 세상으로 아무리 나를 밀어 넣어도 초라해지는 날에도 나는 인스타그램에 접속한다. 팔로우하고 있는 계정에 적힌 글들을 소리 없이 가만가만 읽는다.


이 순간 중요한 것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다.  이 계정들에서 내가 읽어내는 것은 지치지 않고 쓰는 꾸준함이다. 아무도 몰라줘도 우리의 이 시간을 더 아름답게 기록하고자 자신만의 의지로 써내려가는 대단함이다.


주차위반 벌금을 내고, 사과를 깎고, 떨어진 머리카락을 주우며 살아가는 일상이 기승전결의 완벽한 흐름 안에 있을 수 없다는 걸 우리는 그 글을 통해 알아간다.



  인스타그램의 짧은 글들은 마음 편히 살고 싶은 이 밤중의 누군가들에게 날아가는 위로일 것이다. 우리의 소망을 담아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닿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거기에 담겨 있다.

‘너도 힘들었니. 나도 그랬어. 내일은 더 나을 거야. 우리가 그렇게 만들자.’라고 속삭이며 손잡아준다.



  그 글들을 한참이나 읽고 나서 나는 비로소 편안해진다. 마음 편히 사는 건 우리 모두의 소망이라는 생각이 마침내, 찾아온다. 구에게 나는 눈을 맞추며 말한다.


  “내 소망도 마음 편히 사는 거야. 당신이랑.”


  그 말을 듣고 있는 구는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그저 씩 웃고 다시 스마트폰으로 눈을 돌린다. 내 글이 지친 구를, 구 같은 사람을 위로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지친 어떤 사람에게 내 글도 소망이자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스타그램에서 화살표를 누르고 새로고침을 하자 새로운 글귀들이 팔랑팔랑 나비처럼 솟아오른다.


오늘 밤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수줍게 도착해 지친 마음을 녹게 해 줄 글귀들이다.

 ‘좋아요’의 개수와 ‘덧글’의 숫자에 상관없이 그 짧은 글들이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닿고 있다.

글귀들이 제각기 움직이며 목적지에 도달하는 동안 우리의 꿈도 밤 속을 부지런히 날아간다.



좋은 글을 쓰는 일에 대해 매일 생각합니다.

설사 오늘 좀 부족하고 초라하더라도
열심히 살아낸 오늘이 내일을 더 멋지게 만들어준다고 믿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일상을 소중하게 만드는 법을 적고 있어요. 놀러오세요 :)
@tae.i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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