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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Aug 20. 2021

[버즈오브프레이/더수어사이드스쿼드]할리퀸변천사

할리 퀸 혹은 마고 로비 찬양사



한 사람이 모든 공을 독차지하는 그림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 만큼은 한 사람을 콕 집어 공치사해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영화가 하도 욕을 먹은 탓에 이런 표현을 써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 영광의 주인공은 단연 할리 퀸을 연기한 마고 로비라 하겠다. 굳이 그의 공을 나누자면 잘 뽑은 O.S.T. 정도 될까. 적어도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만큼은 할리 퀸으로 분한 마고 로비의 존재감은 대배우 윌 스미스를 압도했다. 많은 사람들이 할리 퀸 하면, 그 해 핼러윈을 강타한 그의 의상과 스타일링을 떠올릴 것이다. 양쪽으로 다르게 염색한 헤어 스타일에 깔맞춤 한 화려한 옷과 액세서리까지. 물론 나도 할리 퀸의 센세이셔널 한 비주얼에 넋이 나갔지만 정말로 인상적인 건 따로 있었다.


귀에 때려 박는 듯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특유의 말투와, 안면근육이 자유로워 보이는 풍부한 표정,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설득력 있게 만드는 마고 로비의 연기력까지. 내가 정말 마음을 빼앗긴 지점은 이런 것들이었다. 연기에서 좀만 더 힘이 빠졌다면 할리 퀸은 그만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고, 약간만 더 힘이 들어갔다면 다소 과장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후자의 한 예가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연인으로 출연했던 자레드 레토의 조커라고 생각한다. 순전히 마고 로비에 대한 팬심으로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여러 번 보면서 느낀 점이지만, 할리 퀸이라는 캐릭터는 얼핏 연기력이 크게 필요치 않은 것처럼 보여도 의외로 세심함이 요구되는 역할이다. 덕분에 영화를 보면 볼수록 영화 자체는 참 멋없다는 느낌이 드는 와중에, 마고 로비의 연기력에는 더욱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고 로비에 대한 찬양과 별개로 그가 맡은 할리 퀸이 영화 속에서 다루어지는 방식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핫팬츠도 아닌 팬티에 가까운 하의는 길게 말하고 싶지도 않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속 할리 퀸의 위치는 무더기로 등장한 남성 캐릭터 사이 ‘아이 캔디’, 즉 눈요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분명 액션 영화의 주연급 캐릭터에 태스크 포스 X의 일원이건만 그에게 부여된 액션 신들은 연출 면에서도, 분량 면에서도 아쉬움이 많았다. 그나마 주어진 서사라곤 누가 봐도 연인으로서는 빵점인 조커와의 로맨스뿐이었다. 하지만 할리 퀸이라는 캐릭터가 인기를 얻는 덕분인지, 그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두 편이나 더 개봉했다.



• 버즈 오브 프레이 (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 : 얼떨결에 이룬 여성 연대


그렇게 해바라기처럼 조커만을 바라봤건만,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지나 ‘버즈 오브 프레이 : 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이하 버즈 오브 프레이)'에서의 할리 퀸은 어쩐 일인지 조커에게 차여 혼자가 된다. 자신의 등 뒤에서 나름 든든하게 버티고 있던 조커 덕분에 온갖 사고를 치고 다녀도 보복을 당하지 않았던 할리.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는 한동안 두 사람의 이별을 감춘다. 그러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본인의 처지를 딱해하는 친구들의 대화를 듣게된 할리는 충동적으로 조커와의 이별을 공식화해버린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부터 할리는 많은 이들의 표적이 되고, 그러다 결국 고담시의 범죄 왕 블랙 마스크에게 납치되기에 이른다. 죽을 위기에 처한 할리는 마침 블랙 마스크가 엄청난 금융 정보가 담긴 암호화된 다이아몬드를 잃어버린 것을 눈치채고, 자신이 그 다이아몬드를 찾아 주겠다고 설득해 간신히 고비를 넘긴다. 알고 보니 그 다이아몬드를 훔친 범인은 평범한 십 대 소매치기 카산드라. 일단 살고 볼 심산으로 다이아몬드를 찾아 나섰던 할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블랙 마스크와 척을 진 블랙 카나리, 르네 몬토야 형사, 헌트리스와 함께 팀을 이루고, 카산드라를 지키기 위해 블랙 마스크 일당과의 답 없는 싸움에 돌입한다.


블랙 카나리 / 르네 몬토야 형사
헌트리스 / 카산드라 케인 (빨간 옷)


‘버즈 오브 프레이’의 가장 매력적인 점을 꼽자면 꽤 여러 사람을 죽여 봤을 할리가 의도치 않게, 그러나 분명히  마음이 동해서 좋은 일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할리 퀸이라는 캐릭터 특성상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그가 평범한 사람들, 혹은 히어로들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 보기는 힘들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 할리 퀸의 본질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리저리 떠밀리고, 마음이 약해지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옳은 일을 ‘저지른다’. 그러한 과정에서 다른 여성 캐릭터들과 역시나 충동적으로 팀을 이루어 협업한다. 그것도 자신의 목숨이 아닌 잘 알지도 못하던 어린 여자 아이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영화 내 다양성의 반영이다. 영화 초반, 할리 퀸이 조커를 만나기 전의 연애사가 짧게 지나가는데, 그중 한 명이 여성이다. 게다가 할리와 팀을 이루었던 르네 형사에게도 전 ‘여자' 친구가 있다. 캐릭터들의 인종 구성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백인, 흑인, 동양인에 라틴계까지. 주요 인물들의 인종 구성이 이처럼 다양한 영화는 21세기인 지금도 극히 드물다. 마고 로비는 탁월한 연기력과 출중한 외모도 모자라, 제작자로서의 재능과 높은 인권 의식까지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완벽할 수가.)



•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 나도 이제 리얼 파이터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에서 할리 퀸의 액션 신이 부족해 느껴졌던 아쉬움을 ‘버즈 오브 프레이’를 통해 채웠다면,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2021)’에서는 한 단계 더 발전한 모습을 즐길 수 있다. 기껏 탈옥에 성공해 카산드라라는 제자까지 생겼던 할리 퀸은 강도 짓을 벌이다가 욱하는 바람에 또다시 수감자 신세가 된다. 그리고 그 덕분에 또다시 ‘태스크 포스 X’의 일원으로서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작전에 투입된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할리 퀸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또라이 끼, 즉 ‘똘끼’를 선보인다. 달리진 점이라면 주로 방망이나 망치를 휘둘렀던 그가 이제 바주카포에 투창은 물론, 천 쪼가리(?)까지 다양한 무기를 활용한다는 사실이다.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인 덕분에  할리에게 부여된 액션 신의 강렬함도 2015년 작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가 싸우는 동안 들린 총성과, 비명, 그리고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몇 번이나 났는지 셀 수 없다. 그전까지는 또라이답게 별생각 없이 유쾌하게 상대를 물리쳤다면,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는 은은한 독기와 꽤 짙은 살기까지 느껴진다. ‘버즈 오브 프레이’에서의 경험 덕분인지, 본인 못지않게 암울한 과거를 지닌 동료들과 목숨 걸고 세상을 구할 줄도 알게 됐다. 물론 그에겐 여전히 좋은 일을 하고자 하는 선한 의도 같은 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혹은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리 했을 뿐.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2021)'에서의 할리 퀸


세 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것은, 작품을 거듭하면 할수록 할리 퀸이라는 캐릭터가 더욱 다층적이고 깊이가 있어졌다는 사실이다.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했지만 생각의 시작과 끝이 조커뿐인 섹시 아이콘을 거쳐, 자신보다 약하고 어린 존재를 지키기 위해 자신보다 강하고 악한 존재에 맞서 싸우는 여성 연대의 모습을 보여주더니, 이제는 평생을 용병 아버지 밑에서 훈련받은 동료 블러드스포트 못지않은 진정한 싸움꾼으로 거듭났다. 세 편의 영화를 통해 점점 더 단단한 서사와 캐릭터성을 쌓은 할리 퀸(혹은 마고 로비)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무척 기대된다.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27896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22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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