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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27. 2021
[당갈 / 다크 페이트] 효율에 충실한 외형
그러니까 운동합시다
돌이켜 보면 과거의 나는 내 외모나 몸에 대해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 지를 가장 신경 썼다. 그러다 보니 내가 추구했던 몸은 건강하기보다는 가녀리고 옷발이 잘 받는 그런 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가만히 앉아 정적인 활동을 하길 선호하는 나이기에 연약해 보이는 몸을 위해 운동 같은 걸 했을 리는 없고, 대신 먹는 양을 줄였다. 집밥을 먹을 때는 반 공기만, 외식을 하거나 못 참고 간식을 먹을 때는 칼로리를 일일이 따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와중에 굶을 생각까진 안 했다는 거다.
이렇게 해서 좀 더 가늘어진 몸에 쫙 붙는 니트와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었다. 제대로 걷기 힘들고 아파서 금방 포기하긴 했지만 어떻게든 하이힐도 신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머리카락은 가슴을 덮을 정도로 길렀다. 먹는 즐거움을 잃었고, 안 그래도 숱도 많은데 길기까지 한 머리카락을 감고 말리다 보면 중간에 지쳐 결국 한 시간 반은 족히 잡아먹었지만 상관없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때처럼 애쓰지 않는다.
이제 100세 시대다. 내가 정말 몇 살까지 살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으나, 일단은 오래 살 것을 염두에 두고 건강 관리를 하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오래 살자면 최대한 오랜 시간 노동을 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내가 보호 본능을 유발하는 몸보다는 건강한 몸을 추구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길어진 수명도 한몫 단단히 했다. 어차피 오래 살 것이라면, 내 노후를 위해 최대한 체력을 키우고 싶어 졌다.
이런 내 결심에 큰 영향을 준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영화 속 운동하는 여자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결국 운동을 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게 된다.
• 물리적 불편함을 덜어내다
영화 ‘당갈’의 마하비르 싱 포가트는 전직 레슬링 선수로, 아버지의 반대로 금메달의 꿈을 결국 이루지 못한 채 레슬링을 포기한다. 아들을 통해 그 꿈을 대신 이루겠다는 바람마저 줄줄이 딸만 넷이 태어나면서 좌절되고 만다. 그러던 차에 마히비 르는 첫 째 기타와 둘째 바 비타에게서 레슬링 꿈나무의 자질을 발견한다.
아버지의 계획을 듣게 된 어린 기타(왼쪽)와 바비타(오른쪽)딸들에게 레슬링을 시킨다며 주변 사람들이 조롱하고 따가운 시선을 보내지만, 마하비르는 이에 굴하지 않는다. 딸들을 강하게 키우며 훈련시킨 끝에 결국 국제 대회에까지 출전시킨다. 이러한 과정에서 마하비르는 딸들이 화장을 하거나 머리를 기르지 못하게 한다. 딸들에 대한 아버지의 강압적인 통제 자체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불현듯 무언가를 깨달았다. 인형처럼 가꾼 외모가 실용성 면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선수촌으로 들어가는 바비타 (왼쪽)과 기타(오른쪽)그 장면이 나의 상황과 겹쳐 보인 것은 물론이다. 운동을 해서 체력을 기르기보다는 굶어서 살을 빼고, 여러 면에서 불편하기만 했던 긴 머리카락을 소중히 하고, 돈과 시간을 들여 꼬박꼬박 화장품을 사모으고 매일같이 정성스레 화장을 했던 나의 과거가. 그리고 이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나의 모습이 남들 보기에는 좋았을지 몰라도, 무언가를 해내기에 최적화된 외형은 아니라고 말이다.
마침 이때의 나는 과거보다 가치관이 건강해지면서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졌다. 어떻게 하면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시간을 최소화할까 고민했다. ‘당갈’에 감명을 받은 나는 가장 먼저 외모에 들이는 시간부터 줄여 나갔다.
대회에 출전한 기타일단 메이크업을 그만두었다. 맨 처음엔 파운데이션 사용을 멈추었다. 리퀴드 타입이든 쿠션이든 안 그래도 내 피부를 불편하게 하던 것들이었다. 그다음에는 색조 화장을 관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브로우까지 버렸다. 그 덕분에 시간만 아낀 것이 아니었다. 피부가 좋아지고 고정 비용까지 크게 줄어들었다.
그다음 한 일은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이었다. 장발이었던 나에게 머리를 한 번 감고 말리는 과정은 거의 빨래를 하고 말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안 말리자니 그러다 탈모가 오고 머릿결이 상할 거라던 미용사의 말 때문에 무서워서 안 말릴 수도 없었다. 일단은 어깨 길이까지 머리카락을 쳐냈다. 그것만도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그러다 이내 궁금해졌다. 여기서 더 자르면 얼마나 더 편해질까? 야금야금 짧아지던 나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숏컷이 됐고, 미용실에 갈 때마다 열심히 숱을 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덕분에 이제는 감고 말리는데 10분이면 충분하다.
•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체력
‘당갈’을 보고 예뻐 보이는 데만 치중한 나의 외관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던 내가, 본격적으로 건강까지 챙기기 시작한 것은 터미네이터의 가장 최근 시리즈인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이하 다크 페이트) 덕분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깔끔한 숏컷과 탄탄한 근육질 몸을 뽐내던 그레이스의 공으로 돌리겠다.
영화관의 커다란 스크린에서 그레이스의 팔근육을 처음 본 나는 그야말로 ‘문화 충격’을 느꼈다. 한국의 미디어에서 그런 체형을 가진 여성을 보기란 쉽지 않았고, 바로 그 때문에 나는 날씬하고 맵시 있는 몸매만을 꿈꿔왔다. 그랬던 나에게 철사를 돌리자 생명을 얻은 듯 꿈틀대는 그레이스의 팔근육들은 경이롭게까지 느껴졌다.
철사를 고무줄처럼 돌리는 그레이스아무리 패고 또 패도 쓰러지지 않는 터미네이터 ‘Rev-9’에 맞서는 강인한 체력은 또 어떤가. 이미 그때쯤 해서 슬렁슬렁 운동을 시작했던 참이었다. 더 이상 나이만 믿으면 안 되겠다 싶었던 탓이다. 그나마도 살이 찌면 안 된다는 생각에 며칠에 한 번 운동하는 시늉만 했을 뿐, 어디 가서 ‘나 운동해요’라고 당당히 얘기할 만한 처지는 못되었다. 하지만 ‘다크 페이트’의 그레이스 덕에 강인한 몸에 대한 열망이 불타올랐다.
그때부터 나는 꾸준히 ‘몸매 유지’가 아닌 ‘체력 관리’를 위한 운동을 해오고 있다. 과거에는 그저 지방을 줄이는 데 집중해 간헐적으로 유산소 운동만 했지만, 이제는 온몸에 골고루 근육이 붙도록 신경 쓰고 있다. 그래서 내 돈 주고 살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악력기를 구매했을 뿐 아니라, 몇 달 전부턴 엄두조차 못 냈던 팔 굽혀 펴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두 번 하기도 힘들었지만, 이제는 하루 1 세트에 열 번씩, 총 3 세트를 하고 있다. 물론 다른 운동과 병행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