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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Sep 03. 2021

[딥 블루 씨] 인간에겐 재앙이지만 과연 그들에겐

인간 중심적인 시각을 걷어내면



인간 아닌 생명체가 인간을 공격하는 이야기들이 선사하는 스릴을 좋아한다. 대신 같은 스릴러 장르지만 인간이 같은 인간을 공격할 경우, 현실에서도 있음 직한 일이라는 생각에 마냥 재밌게 보지는 못한다. 유령은 생명체라고는 보기 힘든 탓에, 더 이상 스릴이 아닌 순수한 공포의 영역으로 넘어가 마찬가지로 크게 즐기지는 않는 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인간 아닌 생명체들 나오는 영화들은 이러하다. 에이리언과 쥬라기 공원 시리즈, 상어나 악어 등의 포식자가 나오는 것들, 그리고 좀비물까지. 이런 생명체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의 경우 현실성이 적당히 떨어지면서도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에 SF적 요소가 더해지면 조금 더 웅장하지만 긴장 상태로, 자연재해 물일 경우 주인공과 함께 녹초가 되는 기분으로 감상하게 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취향 때문에 최근 감상한 영화들이 있다. 상어가 등장하는 ‘딥 블루 씨’와 ‘언더 워터(원제 The Shallows)’이다. 두 영화 모두 재미나 스릴 면에서 합격이었으니 보고 나서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다. 굳이 비교하자면 ‘언더 워터’는 짧으면서 임팩트가 강했고, ‘딥 블루 씨’는 탄탄한 설정에 스케일이 컸다. 극장에서 보기 좋은 영화를 고른다면 ‘딥 블루 씨’에 한 표를 던지겠지만, 감상 후의 끝 맛은 ‘언더 워터’ 쪽이 더 좋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 속 포식자들의 공격 이유, 그리고 그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반응 때문이다.



진정한 악마는 누구인가


바다에 위에 위치한 수상 연구소 ‘아쿠아티카‘에서 근무하는 수전 맥켈레스터 박사와 그의 팀원들은 의료사에 한 획을 그을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상어의 뇌를 이용해 인간의 손상된 뇌 조직을 재생시켜,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중인 것이다.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 고통받았던 수전 박사는 그 누구보다 치료 기술 개발에 진심이고 간절하다. 이러한 이유로 수전 박사는 금지된 실험을 시도하고 만다. 바로 상어의 유전 인자를 조작하는 것. 그렇게 탄생한 상어들은 일반 상어보다 몸집이 더 클 뿐 아니라, 그에 맞게 더욱 큰 뇌를 지녔다. 당연히 더욱 거대해진 뇌에서는 더 많은 단백질을 추출해, 치매 치료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으리라.


수전 박사와 동료들은 결국 상어의 뇌에서 단백질을 추출해 뇌신경을 되살리는 실험에 성공한다. ‘아쿠아타카’의 직원들 뿐 아니라, 투자사에서 나온 검시관 모두 만족한 결과를 얻어낸 바로 그때, 실험 중이던 상어가 마취에서 깨어나고 그때부터 재앙이 시작된다.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상어는 비대해진 뇌에 걸맞은 지능과 공격력으로 인간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기 시작한다.


공격을 시작한 상어


이후 영화 ‘딥 블루 씨’는 예상 가능하지만 꽤 긴장감 있는 전개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여성 캐릭터인 수전이 욕받이 무녀 역할이었다는 점, 돈 많은 자본가이자 일찍 죽는 캐릭터를 유색 인종 배우가 맡았다는 점 등 마음에 안 드는 요소들이 있었지만, 20세기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적당히 잔인하면서 속도감 있는 영화였다는 게 총평이다. 그러나 꽤 예전 영화인 만큼 거슬리는 부분들을 흘려 보며 재미에만 집중하고 있던 나는, 러닝타임이 15분 정도 남은 상황에서 끝끝내 불편해지고 말았다.


‘저건 악마요.’


죽다 살아난 한 생존자가 상어를 두고 한 말이다. 이 순간 내 머릿속에 처음 물음표가 떠올랐다. 곧 장면이 전환되고, 또 다른 생존자는 3.5톤 무게의 고지능 상어가 본인들을 이용해 연구소에서의 탈출을 시도한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리고 대화 상대방인 수전 박사는 놀란 목소리로 반응한다. 상어를 죽여야 한다고.


'딥 블루 씨'의 한 장면


영화를 보고 개운했던 ‘언더 워터’와 그렇지 못했던 ‘딥 블루 씨’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언더 워터'의 주인공은 그저 우연히 상어의 구역으로 들어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기지를 발휘해 본능에 따라 자신을 공격해대는 상어에게서 마침내 탈출한다. 하지만 ‘딥 블루 씨’에서 진정한 재앙의 원인은 상어가 아닐뿐더러, 그들이 단순히 운이 나빴던 것 또한 아니다.


상어에게 공격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동료를 잃은 입장에서야 상어가 저주스럽게 느껴지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내가 영화 속 인물들 중 한 명이었대어도 상어를 죽이고 싶었을 것이고, 가능하다면 그렇게 했으리라. 그러나 악마와 같은 상어는 바로 그들이 직접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악마를 만들어낸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만족할 줄 모르는 착취자, 인간


오래지 않은 어느 날, 나는 언제나처럼 신호등이 없는 집 근처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좌우를 살피고 있었다. 보행자가 보이면 먼저 가라며 차들이 멈춰 주는 나라들도 있다던데, 지금으 동네에서 5년 이상을 살았지만 적어도 나에게 그런 훈훈한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사실에 묘한 짜증을 느끼며 길을 건널 타이밍을 재고 있는데 내 오른편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인간을 포함해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種) 중에서 고양이를 가장 사랑하는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서로 안면을 튼 고양이가 나를 마중 나왔다거나 하는 그런 아름다운 상황은 아니었고, 그 고양이 역시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참이었다. 마침 더는 이동 중인 차량이 없었지만, 고양이가 길을 건너기 위해 앞발을 뗀 순간 나는 온몸에 긴장이 밀려옴을 느꼈다. 나 역시 길을 건너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사람으로 치면 아직 청소년쯤 되어 보이는 그 고양이가 길을 완전히 건널 때까지 그대로 굳은 듯 멈춰 서 있었다.


요즘 인간이기에 누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잠을 잘 때, 식사를 할 때, 용변을 볼 때, 다른 개체에게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이나 경계심 없이, 안전한 주거지에서 편안하게 이 행위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혜택이다. 그리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매일 당연하게 사용하는 인터넷과 노트북, 인간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교통수단, 그 외 문명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들.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동양인 여성이라는 위치가 썩 이상적이진 않지만, 그나마 내가 인간이라 다행이다 싶다. 물론 그 덕분에 머릿속에서는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며 금방 골치가 아파 오고, 그저 오락 영화일 뿐인 ‘딥 블루 씨’를 보고 불편함을 감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 덕분에 거대한 빌딩 숲 사이에서 터전을 확보하느라 바쁘고, 목숨을 걸고 빠르게 움직이는 차량들 틈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나와 같은 인간의 눈을 피하느라 불안에 떨 필요가 없다.


내가 유감스러운 건 생존을 위해 거리 위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동물들 뿐만이 아니다. 보호소의 동물들도 안타깝긴 마찬가지다. 이 중에선 원래 길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있겠지만, 펫 샵에서 물건처럼 거래되다 역시나 소모된 물건처럼 버려진 아이들도 많다. 아기일 때부터 키우고 싶다거나 보기에 더 예쁘다는 이유로, 말 그대로 가게에서 돈 주고 상품처럼 데려와 놓고 돈을 주고 사고파는 재화들이 으레 그렇듯 질려서 버리는 것이다.


반려 동물 범주에 묶이지 못하는 동물들의 삶은 더욱 비참하다. 어떤 야생 동물들은 원래 살아가야 할 자연과는 전혀 다른, 동물원이나 수족관 같은 제한된 공간에서 인간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해 있다. 특정 종들은 그 탄생부터 인간의 먹을거리 취급을 받고, 평생을 좁은 우리에서 갇혀 지내다 타고난 명도 다 하지 못하고 도축된다. 그리고 매년 전 세계적으로 약 6억 마리의 동물들이 동물 실험에 사용된다. 모든 소용이 다 한 실험동물들의 말로는 안락사이다. 물론 인간이 그럴싸한 핑계들로 착취한 것은 동물들의 목숨만이 아니다. 지구 그 자체다.


'아쿠아티카' 및 투자사의 직원들


'딥 블루 씨’에서 상어들에게 자행된 실험은 우리의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다. 다른 개체들은 마땅히 인간을 위한 도구로서 이용돼야 한다는 듯 상어를 인위적으로 개조해 놓고 악마 운운하는 모습은 오만하고 우습다. 만약 ‘딥 블루 씨’의 등장인물들이 그저 육식 동물에 쫓기는 초식 동물처럼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만을 보였다면, 이 영화는 나에게도 역시 괜찮은 오락 영화로서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동물과 자연에 대한 존중과 공감을 보였으면 한다. 더불어 인간으로 태어나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인 시각이나 우월주의를 벗어나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딥 블루 씨’보다는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열연한 ‘언더 워터’를 좀 더 추천하는 바이다. 카야 스코델라리오 주연의 ‘크롤’도 제법 괜찮다.






사진 출처 :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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