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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Aug 13. 2021

[블랙위도우/원더우먼/캡틴마블] 여성히어로 삼대장

3인 3색 비교 분석



슈퍼맨, 배트맨,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코믹스에 관심도 없음은 물론, 그 존재 자체도 모르던 나는 그 신비로운(?) 존재들의 예고편과 포스터를 보고 홀린 듯 영화관에 들어섰다. 원래 액션 영화를 좋아했던 나는 하늘을 날아다니고, 본새 나는 슈트를 입은 채 엄청난 신체 능력과 초능력을 자랑하는 그들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게다가 각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와 만나고, 협업하며 거대한 세계관을 만들어 내는 순간부터는 거의 정신을 못 차렸다. 이러한 영화들을 한 데 묶어 ‘히어로 무비’로, 그 주인공들을 ‘슈퍼 히어로라고 부른다는 사실은 ’어벤져스‘ 시리즈 1편을 보고 난 후에야 내 머릿속에 입력됐다.


어디선가 듣기로 히어로 무비, 특히 ‘어벤져스’의 여성 팬들은 마치 아이돌 팬들이 '최애'를 고르는 심정으로, 혹은 누구한테 가장 끌리는지 고르는 재미로 영화를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키도 훤칠하고, 슈트 따위 없어도 충분히 맷집 좋아 보이는 근육질의 남성들이 거리낌 없이 육체적 힘을 자랑하는 데 이성애자 여자라면 혹하지 않기도 힘들 것이다. 내 지인들 사이에선 크리스 헴스워스가 연기한 토르가 제일 인기가 좋았지만, 웬일인지 나는 비교적 언급이 적은 로키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그다음이 블랙 팬서의 킬몽거였던가.


메인이 아닌 주변 캐릭터에게 매력을 느낀 지점부터 (아마 편견일지도 모르는) 여성 팬으로서의 관람 포인트는 비껴간 듯하다. 그래도 일반 액션 무비에서는 느끼기 힘든 자본 냄새 진동하는 화려한 액션과 CG 장면만은 그 누구보다 충실히 즐겼다고 자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아쉬웠던 건,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세상이 변하려는지 어느 순간 하나 둘 여성 히어로들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이제 ‘최애’를 고를 수 있는 수준까지 그 머릿수가 늘었다.



블랙위도우 : 궁극의 시스터후드


블랙위도우는 히어로 무비가 본격적으로 하나의 장르로서 인기몰이를 하기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등장한 여성 히어로다. 그러나 어벤져스 시리즈나 다른 남성 캐릭터의 솔로 무비에서의 블랙위도우는, 그 역할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의 이름값이 아깝게도 보조적인 역할에만 그치거나 그저 섹시한 이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개봉한, 그러나 다른 남성 캐릭터에 비해 너무 늦게 나온 동명의 솔로 무비 ‘블랙 위도우’에서 그는 애매하기만 했던 존재감을 벗어던지고 확실한 정체성을 확립한다.


어벤져스 멤버로서 합류하기 위해 자신이 평생 스파이로서 몸담았던 러시아의 정보기관 레드룸의 수장 드레이코프를 제거했던 나타샤 로마노프(이하 나타샤). 어벤져스의 분열 이후 도주 중인 나타샤는 한때 자신과 레드룸의 명령 하에 함께 위장 가족생활을 했던 동생 옐레나에게서 드레이코프가 아직 살아 있으며 레드룸 역시 활동 중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훈련받은 킬러답게 자매간의 격렬한 우애를 보여 준 두 사람은, 이후 화학적 세뇌를 당한 후대 위도우들을 구출하고 드레이코프를 제거하기 위한 위험천만한 작전에 돌입한다.


영화 '블랙 위도우' 속 장면들


영화 ‘블랙 위도우’의 주제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와 같다. ‘여자가 여자를 구한다’. 남성에 의한 여성 착취와 세뇌, 거기서 벗어난 여성들이 아직 남성의 통제 하에 있는 다른 여성들을 구원하는 이야기로, ‘여자의 적은 여자다’ 따위의 시대착오적인 헛소리를 완전히 뒤집는다. 온갖 화려한 액션과 압도적인 CG 안에서도 이러한 메시지는 오히려 영화가 전개되면 될수록 더욱 뚜렷해진다. 그 결과 너무나 마블다우면서도, 매우 페미니즘적인 영화가 탄생했다. 덕분에 이렇게 잘 만들 거면서 왜 이제야 만들었을까 싶었지만, 최근 스트리밍 계약 위반 관련 소송 덕분에 씁쓸하지만 그 답을 찾은 듯도 하다.



원더우먼 : 인류애로 똘똘 뭉친


마블과 DC를 통틀어 가장 전형적인 슈퍼히어로를 꼽자면 남자는 캡틴 아메리카, 여자는 원더우먼이 아닐까 싶다. 조국을 위해 봉사하는 캡틴 아메라카와, 인류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그들을 지키는 원더 우면은 그 어떤 히어로보다 도덕적이며, 숭고한 목적의식을 지녔다. 둘의 차이점이라면 캡틴 아메리카는 혈청을 맞은 슈퍼 솔저이고, 원더우먼은 제우스의 피를 물려받은 데미갓이라는 점 정도일까.


캐릭터와 동명의 영화 ‘원더우먼’에서 원더우먼(다이애나 프린스 - 이하 다이애나)은 독일군을 조종해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쟁의 신 아레스에 물리쳐 전쟁을 종식시켰다. 인류를 구원했지만 연인인 스티브 트레버(이하 스티브)를 구하는 데는 실패한 다이애나. 그는 사람들을 도울 때를 제외하곤, 세상을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다가온 1984년, 소원을 이루어주는 드림 스톤 덕에 스티브가 되살아나고, 다이애나는 돌아온 연인과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하지만 알고 보니 드림 스톤은 거짓말의 신 헤르메스가 만들어낸 것으로, 소원을 이루어주는 대신 다른 소중한 한 가지를  빼앗아 간다. 스티브를 되찾은 다이애나가 잃은 것은 바로 히어로로서의 그의 능력. 한편, 드림 스톤을 손에 넣은 맥스웰 로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자가 되기 위한 원대한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점점 더 힘이 약해지고 있음에도 사랑하는 연인을 포기할 수 없어 갈등하던 다이애는 결국 또다시 인류를 선택한다.


영화 '원더 우먼 1984' 속 장면들


마블, DC 할 것 없이 모든 히어로가 기본적으로 일반인은 범접할 수 없는 능력치를 지녔지만, 그 대단한 능력을 떼어놓고 보더라도 나와 가장 접점이 없는 히어로는 단연 원더우먼이라고 하겠다. 마음속 인류애가 거의 바닥을 친 나로서는 그의 희생정신과 봉사정신을 감히 이해할 수 없다. 비슷한 이유로 남자 중에서는 캡틴 아메리카와 제일 거리가 멀다. 그래도 수많은 히어로 중에서 순수하게 도덕적인 메시지를 안겨주는 영웅도 한두 명쯤 있어서 나쁠 건 없다.


그러나 후속작인 ‘원더우먼 1984’에서 보여준 모습은 다소 실망스럽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슈퍼히어로라니. 그저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는 모습이라기엔 연출이 다소 감상적이다. 1편이 인류애에 로맨스를 몇 방울 떨어뜨린 수준이었다면, ‘원더우먼 1984’에서의 로맨스 비중은 지금 이게 히어로 무비인지, 로맨스 영화인지 혼돈을 줄 정도다. 사랑을 얻고 힘을 잃은 탓에 중반까지의 액션 신들도 다소 김이 빠져 더욱 아쉽다. 앞서 비교한 캡틴 아메리카 역시 오래도록 페기 카터를 잊지 못했지만, 그의 영화를 보고 장르를 헷갈린 사람은 아마 거의 없으리라. 하필 여성 히어로가 영화 내내 사랑 타령하는 모습에 자존심이 상했다면 너무 가혹한 평가일까?



캡틴 마블 : 한계에서 벗어나다


6년 전 과거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은 채 크리 족의 행성 할라에서 깨어난 비어스. 비어스의 안에는 엄청난 잠재력의 힘이 꿈틀대고 있지만, 그가 힘을 사용하려 할 때마다 크리 스타포스의 사령관 욘로그는 매번 이를 저지한다. 그러던 어느 날, 비어스를 포함한 크리 전사들은 그들의 스파이인 솔라를 구출하기 위해 분쟁 지대 토르파로 향하고, 그곳에서 비어스는 잠복 중이던 그들의 숙적 스크럴 족에게 납치된다. 스크럴 족이 비어스의 머릿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그는 까맣게 잊혔던 기억들과 마주한다. 자신의 숨겨진 과거와 진실을 알게 된 비어스는 마침내 ‘캡틴 마블’로서 각성해 오랜 시간 이어진 잘못된 전쟁을 끝내고자 한다.


캡틴 마블이 본인의 힘을 깨닫지 못하길 바라는 욘로그는 매번 이와 같은 말로 그를 구속하려 든다.


감정에 휘둘리지 마, 너 자신을 통제해, 주어진 힘은 언제든 다시 빼앗길 수 있어.


이 외에도 캡틴 마블이 지구에서 캐럴 댄버스라는 조종사로 지내던 시절, 지구 출신 남성들 역시 어떻게든 그를 일정 틀에 가두려 한다. 하지만 이러한 말들에 끝끝내 휘둘리지 않은 캡틴 마블은 결국 한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을 마음껏 뽐낸다. 끝까지 캡틴 마블을 통제 하에 두고 싶던 욘로그는 불꽃 쇼 같은 건 그만두고 당당히 맞서 스스로를 증명하라고 요구하지만, 캡틴 마블은 욘로그의 마지막 발악 따위 가볍게 무시하고 그를 날려 버리더니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긴다.


난 당신에게 증명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


영화 '캡틴 마블' 속 장면들


같은 마블 영화인 ‘블랙 위도우’와 ‘캡틴 마블’ 모두 상당히 페미니즘적인 히어로 무비임에 분명하지만, 시사하는 메시지는 그 결이 다르다. 앞서 언급했듯 ‘블랙 위도우’가 여성이 다른 여성을 구원하는 이야기라면, ‘캡틴 마블’은 남성의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 자신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이 무언가 증명해야 한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뿐이다. 그렇게 깨달은 스스로의 재능과 능력에 대해 죄책감을 갖거나 겸손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엄청난 힘에 잔뜩 고무되어  신명 나는 불꽃 쇼를 펼친 캡틴 마블처럼.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23215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15600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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