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인 Nov 05. 2021

[작은 아씨들] 왜 그랬대? 궁금해 죽겠네

조와 에이미, 그리고 로리






‘작은 아씨들’은 루이자 메이 올컷의 두껍디 두꺼운 책으로도 읽었고, 영화로는 1994년과 2020년도 작을 접했다. 셋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인 그레타 거윅의 2020년 버전 영화이다. 내가 감히 작품성까지 논할 깜냥은 안 되고, 굳이 ‘작은 아씨들’이라는 스토리 자체에 대한 선호 정도와 느낌만 간단히 말을 얹자면 전반적으로 무난하게 재미있고, 희로애락이 적절히 담겨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다. 그 어떤 날카로움이나 비장함, 냉소 같은 경직된 요소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기에 책과 영화 모두 보는 내내 정신이 번쩍 든다거나, 분노에 치밀고 간담이 서늘해지는 등의 격한 감정을 느낄 일 역시 없다. 그레타 거윅의 영화를 세 버전 중 ‘최애’로 꼽은 것은 기본적으로 모두 동일한 감성인 와중에 21세기 식으로 변형을 준 부분들에 공감이 많이 간 때문이다.


'작은 아씨들'의 한 장면


그러나 이야기 전개 내내 모 난 부분 하나 없어 물 흐르듯 이야기를 따라가게 만드는 이 ‘작은 아씨들’이라는 작품에서 예외 없이 물음표가 그려지는 장면이 있다. 바로 조세핀 (이하 조) 말고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것처럼 굴던 로리가 어느 순간 조의 막내 동생 에이미와 사랑에 빠지는 부분이다. 그나마 2020년도 영화에서는 친절하게도 로리가 에이미의 매력에 눈을 뜨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소설과 1994년도 영화를 먼저 감상했을 땐 두 사람이 결혼을 하기로 결정한 순간 머릿속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하지만 어떤 버전이든지 조의 입장에 이입이 되어 언짢음과 황당함을 느낀 것은 매한가지다. 이때 조가 느낀 감정 역시 2020년 작품에서 좀 더 상세히 표현된 듯하다. 나만 이런 식으로 느낀 것은 아니었는지 어느 날 인터넷을 파도처럼 타고 돌아다니다 로리의 ‘행태’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올린 글을 발견했고, 나 역시 조금 더 깊이 있게 그 ‘해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가장 마음에 들고, 인물의 심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장치가 비교적 잘 갖추어진 것은 2020년도 그레타 거윅 감독 버전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번 글 역시 그의 영화를 기준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내 친구랑 내 동생이랑?


배우가 되고 싶은 첫째 메그, 작가가 되고 싶은 둘째 조, 음악가가 되고 싶은 베스, 그리고 화가가 되고 싶은 막내 에이미. 마치 집안의 네 자매는 가난하지만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웃음이 넘친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에 사는 로리는 네 자매에 흥미를 느끼고 그들과 점점 더 가까워지며 함께 우정과 사랑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1994년 영화에 비해 2020년 버전에서는 첫째 메그와 셋째 베스에 대한 서사도 꽤 길게 부여한다. 자매들 중 그 누구보다 가난을 싫어했던 메그는 가난하지만 다정한 가정교사 존을 만나 결혼해 가정을 꾸린다. 메그는 여전한 가난에 서글프고 속상해하기도 하고, 이 때문에 존과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둘의 사랑은 단단하다. 가장 온순하고 남에게 기꺼이 베풀 줄 알았던 고운 심성의 베스는 그런 따스한 마음 때문에 가난한 이웃을 돌보아 주다가 그들에게서 병을 옮아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만다.


첫째 메그와 셋째 베스


이 두 자매도 물론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역시 ‘작은 아씨들’의 스토리에서 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둘째 조와 막내 에이미이다. 항상 더 큰 세상을 경험하고 작가로서 성공하고 싶던 조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뉴욕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조는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자신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도 꾸준히 글로 옮긴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 오기 전 로리의 청혼을 거절했던 조는 뉴욕에서 프리드리히 교수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한편 유명한 화가가 되기를 바라던 에이미는 마치 고모의 눈에 들어 함께 파리로 떠나고, 그곳에서 미술 공부를 하며 지내던 그는 조에게 청혼을 거절당한 후 방황하고 있는 로리와 재회한다.


조와 로리 / 에이미와 로리


그리고 곧 많은 이들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던 전개가 펼쳐진다. 바로 에이미와 로리의 키스 장면이다. 비록 조가 로리의 청혼을 거절했다고는 하지만 에이미와 로리 사이의 극적인 관계 변화는 당황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만약 한때 나의 소중한 친구였고 나에게 청혼까지 했던 남자가 이후 나의 혈육과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해진다. 고백 따위 주고받지 않은 평범한 친구 사이였대도 가족 구성원으로서 엮이는 것이 껄끄러울 판인데 조와 로리의 상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남자가 차라리 나의 다른 친구에게 마음이 떠났다면 씁쓸할지언정 좀 더 수월하게 상황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다름 아닌 나의 동생과 부부가 된다면 평생 불편함 마음을 안은 채 인연을 이어가야 한다. 그리고 모순적이게도 바로 이 지점이 그나마 로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 그들이 진정 원했던 건


조와 자매들은 많이 누리지는 못하더라도 항상 서로에게 의지하고, 쉼 없이 대화를 나누며, 종종 티격 대다가도 서로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진심으로 화해한다. 집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웃음꽃이 피어난다. 반면 로리가 사는 거대한 저택은 식구라고는 그와 할아버지 둘 뿐이지만, 웃음소리는커녕 대화 다운 대화도 잘 오고 가지 않아 허전하기만 하다. 그런 로리에게 있어서 마치 가족들은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분명 로리가 조에게 접근했을 때는 그에 대한 호감 역시 있었을 테지만 로리에게 있어 좀 더 간절했던 쪽은 조의 사람이 되는 것 자체보다는 마치 가족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조에게 거절당한 로리가 결국 에이미를 선택한 것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작은 아씨들' 속 조의 모습


조가 청혼을 거절할 당시 로리의 모습은, 특히나 2020년 버전에서 연출한 모습은 영화 내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이다. 그 애처롭고 처절한 호소는 잠시 조의 입장은 잊고 로리 쪽에 이입을 하게 만든다. 저렇게나 진심이고 간절하게 애정을 갈구하는 남자라니. 나조차도 결국 끝까지 거절하는 조가 미울 지경이었다. 어차피 리메이크인데 청혼을 받아주는 쪽으로 수정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하는 바보 같은 기대마저 했다. 이런 지경이었으니 결국 에이미와 사랑에 빠지는 로리를 보며 의아함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로리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조 한 사람이 아닌 그의 가족들 모두였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하기가 수월해진다. 그렇게 되면 조에게 거절당했을 당시 로리가 분노한 것 역시 조를 차지할 수 없어서라기 보다는, 로망과도 같았던 마치 가문에 속하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나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조 역시 이런 로리의 마음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어디까지나 친구로 남아야 한다고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에이미의 경우 어렸을 때부터 내심 언니 조에 대한 부러움 혹은 질투를 품은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자신만 두고 놀러 간 언니가 얄미워 열심히 쓴 글도 태워 버리고, 조가 어디를 가든 따라다니며, 마치 고모의 눈에 들어 언니의 것일 뻔했던 파리 행의 기회도 차지해 버린다. 그러다 결국 비슷한 이유로 언제나 언니의 주변을 맴돌던 로리와 사랑에 빠지게 됐을 듯하다. 로리에 대한 에이미의 마음이 진심이 아니라고 보지는 않지만, 분명 조와 로리의 관계가 에이미의 마음을 더욱 부추겼을 것이라 생각한다. 조에 대한 간절한 고백을 거부당한 로리로서도 자신에게 항상 마음이 있으면서도 언니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에이미에게 마침내는 끌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작은 아씨들' 속 조와 로리


‘작은 아씨들’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다른 인물들보다는 조에게 가장 이입이 많이 되었다. 물론 조가 주인공인지라 가장 많은 서사가 부여되기도 했지만, 조건이나 성향 등 나와 겹치는 부분들도 꽤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조가 로리를 대할 때의 감정, 그의 청혼을 거절했을 때의 생각, 그리고 자신만을 사랑한다던 로리가 동생인 에이미를 택했을 때의 심정 등 모두 절절하게 전달됐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과 그럴 수 없는 스스로로 인해 고독을 삼키지만, 그렇다고 남들처럼 그저 당연한 인생만을 살고 싶지 않은 굳은 심지까지도. (물론 이는 조 역할을 연기한 배우 시얼샤 로넌의 연기력 때문이기도 하다.)


‘작은 아씨들’의 등장인물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생각이 복잡하고 깊어 보이는 조가 각각의 상황을 정확히 어떻게 받아들였을 것인지는 모두 다 파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가 결국은 에이미와 로리를 용서한 것은 물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걸 넘어서 마침내는 진정으로 두 사람의 행복을 바랐을 것이라는 사실만은 확신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차라리 이렇게 되는 편이 잘 되었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조의 심리와 선택은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쉬웠고, 에이미 역시 언니와 로리 모두에 대한 동경이 밑바탕에 깔려 있음을 파악하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로리의 경우 영화를 볼 당시만 하더라도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다. 나 혼자만 이런 로리의 머릿속이 궁금했던 건 아니라는 생각에 나름의 분석을 시도해 보았지만 가능만 하다면 당사자에게 직접 묻고 싶다. 갈대와 같은 로리의 마음을 관객들에게 어떻게든 이해시키려 애써준 그레타 거윅 감독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27122

작가의 이전글 [언힌지드] 내면을 갉아먹는 그 이름, 자격지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