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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Nov 12. 2021

[고장난 론] 불완전하기에 더욱 완벽한

진정한 소통을 위해선 눈을 마주 보아야 해






내가 누군가를 일부러 시간을 내서 만나러 갈 때 지키는 원칙이 한 가지 있다. 급하고 중요한 연락이 온 것이 아니라면 상대방과 있을 때는 최대한 핸드폰을 멀리 하기.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가까이에 두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땐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뒤집어 두거나, 가능하면 가방에 넣어두곤 한다. 여러 이유로 벨소리도 무음으로 설정했으며, 카톡 역시 모든 알림을 꺼놓은 상태이다. 그렇다 보니 깜빡 잊고 꺼두지 않은 영양제 섭취 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울릴 때를 제외하고는 눈앞의 상대방에게서 핸드폰으로 주의를 돌릴 일이 없다. 집순이인 내가 기껏 날짜를 잡아서 집을 박차고 누군가를 만나러 나왔는데 핸드폰이나 들여다볼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이러한 생각은 종종 상대방에 의해 보기 좋게 무너질 때가 있다. 주말에도 업무 연락을 받아야만 하는 안타까운 처지라든가, 정말 중요한 전화가 온 것이 아님에도 수시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경우가 그것이다. 도대체 맞은편에 사람이 앉아 있는데 인스타 알림을 일일이 확인해야 될 이유는 무엇이고, 당장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방이 있는데 카톡 메시지에 답장 좀 늦게 하면 안 되는 사정은 무엇일까. 차라리 이 정도면 양반 일지 모른다.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데 집중하면 좋겠는 순간들을 모두 사진으로써 남기려 든다든지,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찾아보기 시작하면 당황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상대방과의 시간에 충실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나온 나로서는 ‘나는 누구?’ 혹은 ‘여긴 어디?’ 같은 질문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리고 한편으로 궁금해진다. 그럴 거면 집에서든 밖에서든 핸드폰이랑 데이트나 하지 나는 왜 굳이 밖으로 부른 것인지가. 상대방이 내가 너무 싫은 나머지 기껏 불러 놓고 기분이 상하길 바라는 마음에 그랬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핸드폰에 대한 의존도가 그만큼 높은 탓일 이다. 나 역시 누군가를 만날 때를 제외하고는 핸드폰을 내 시야 밖에 두는 일이 거의 없다. 밥 먹을 때나 이동할 때는 물론이고, 다소 TMI이긴 하지만 화장실에 갈 때조차 핸드폰이 없으면 허전하다. 글을 끄적이다 집중이 안 될 때면 가장 먼저 찾는 것 역시 핸드폰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도 건강하지 않아 보이건만, 한낱 기계에 매달리는 이러한 모습이 꼭 좋게만 보이진 않는다.



• 친구 사이란 ‘양방향’


영화 ‘고장난 론’의 세계관 속 고성능 AI 로봇 버블봇(이하 비봇)은 모든 아이들의 필수품이다. 비봇을 통해 전화나 문자 등 연락을 주고받고, 셀카를 찍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용자의 취향에 따라 스킨도 수시로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고, 비봇끼리 결투 게임을 벌일 수도 있다. 실시간으로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도 할 수 있는 데다가, 내구성이 좋아 이동 수단으로써의 이용까지 가능하다. 스케이트보드처럼 타고 다니는 동시에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비봇의 핵심 기능은 다름 아닌 친구 만들기이다. 비봇과 함께 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직접 나서서 친구를 만들지 않는다. 비봇에 입력한 개인 정보, 사진, 관심사 등의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비봇의 알고리즘이 찾아주는 비슷한 취향과 성격의 아이들과 친구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버블봇


이처럼 비봇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주인공 바니만 유일하게 비봇이 없다. 비봇끼리만 가능한 친구 신청이나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으니 당연하게도 바니는 학교에서 외톨이 신세다. 그러다 다가온 그의 생일. 아이들이 기계에만 매달리며 지내는 모습을 탐탁지 않아하던 바니의 아버지는 뒤늦게 아들의 고충을 깨닫고 밤늦게 비봇을 구매하러 매장으로 출발한다. 공교롭게도 비봇을 구매하기 위해선 세 달이나 대기 시간이 필요한 상황. 그러던 차에 바니의 아버지는 비봇들을 매장으로 운반하던 운전기사에게서 트럭에서 떨어져 판매가 불가능해진 비봇을 구매한다. 그것이 바로 앞으로 바니의 친구가 되어줄 론이다. 아이들이 손만 가져다 대면 모든 데이터를 다운로드하고, 곧장 취향에 맞는 스킨으로 옷까지 갈아입는 다른 비봇들과 달리 트럭에서 추락한 충격으로 고장이 나 네트워크에 접속조차 못하는 론은 바니의 이름조차 제대로 입력하지 못한다.


고장난 론


원래는 비봇이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서 다 해주어야 하지만 고장난 론 때문에 바니는 역설적으로 자신이 비봇에게 일일이 다 가르쳐 주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론은 친구가 되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들부터 시작해서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들을 하나하나 열심히 배워 나간다. 론은 이렇게 바니에게서 배운 것들을 통해 그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겠다며 여기저기 친구 신청 쪽지를 건네거나 친구를 구한다는 포스터를 붙이고 다니고, 바니를 괴롭히던 아이들을 흠씬 두들겨 패주는 등 갖가지 크고 작은 소동을 일으킨다. 자신의 ‘친구’ 바니를 위해 종횡무진하고 있는 로봇인 론을 보고 있노라면 바니의 같은 학교 친구들보다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바니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종횡무진하는 론


얼떨결에 고장이 나 버린 론 덕분에 친구란 상호작용, 교감 등이 오고 가는 ‘양방향’이라는 사실을 배워 가는 바니와 달리, 기계로서의 기능에만 충실한 비봇에 얽매여 있는 아이들은 피상적인 관계만을 반복하며 되레 점점 외로워진다. 바니의 반 친구 리치가 안전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론의 시스템을 카피해 다른 친구들의 비봇까지 통제 불능 상태로 만들어 거대한 비봇 로봇을 만든 후, 또 다른 반 친구이자 SNS 인플루언서인 사바나를 괴롭히는 영상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 하나의 밈이 되는 장면에서는 씁쓸하다 못해 서늘한 기분마저 느껴진다. 이처럼 SNS나 비봇에 매몰된 채 제대로 된 관계조차 맺지 못하는 친구들을 지켜보던 바니는 결국 자신만의 론을 모두의 론으로 보내주게 되고,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론과 바니



•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들


‘고장난 론’의 론 같은 귀여운 비봇이라면 나 같아도 하루 종일 옆에 끼고 있고 싶을 것 같다는 사실과 별개로 고작 전자 기기 하나, 정확히는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영화 속 상황과 비슷한 현실이 별로 달갑지는 않다. 어렸을 때를 떠올리면 스마트폰은커녕 2G 폰 없이도 잘만 지냈다. 친구와 만나기 위해선 유선 전화로 연락을 취해야 하고, 약속 시간까지 나타나지 않는 친구에게 어디쯤 왔느냐고 재촉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적어도 그때는 적어도 눈앞의 상대방을 제외하고는 한눈을 팔 거리가 없었다. 미리 인터넷으로 무엇을 할지 찾아보지 않아도 그날 만나서 자전거를 타자든지, 떡볶이를 먹자든지 즉흥적으로 정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다 많이 어둑어둑해지면 부모님 눈치가 보여 집으로 향하는 식이었다.


그때에 비하면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된 지금이 훨씬 더 편리해진 것이 사실이다. 언제 어디서든 연락이 가능하고, 남들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후기를 검색해서 친구나 연인과 만나 만나서 무얼 할지 미리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어김없이 약속 시간에 늦는 상대방에게 지금 어디냐며 재촉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나 SNS 게시글을 통해 당장은 너무 바빠 만날 여유가 없는 주변 사람들의 근황도 접할 수 있는 것 또한 순기능 중 하나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분명 스마트폰은 고맙고도 편리한 존재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자체보다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세상이 중심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당장 혹은 매일 얼굴을 볼 수는 없으니 메시지나 전화로 끊임없이 연락을 이어가는 것은 어떻게든 상대방과 연결되어 있는 감각을 느끼기 위한, 충분히 의미 있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다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바로 눈앞에 누군가가 버젓이 앉아 있는데 핸드폰 메신저 속 상대방에게 집중한다든지, 만나서 대화하거나 전화를 하는 대신 SNS 상에서 댓글을 주고받는 것으로 대신하는 상황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어떤 글이나 정보를 스스로 읽고 습득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대신 유튜브에 정리된 영상으로 가볍게 훑고 지나간다거나, 본인의 머리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생각이나 감정 대신 인터넷 밈들로 점철된 문장만을 주고받는 것 역시 긍정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고장난 론’의 SNS 스타 사바나가 온라인 상의 조롱의 대상이 된 경우처럼,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세상의 인물들 역시 어딘가에 실존하는 사람이라는 감각 없이 누군가를 단순한 유희 거리이자 대상으로서 소비하는 모습은 끔찍하기까지 하다. 이 모든 것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인간미가 없다고 하겠다.


나 개인적으로는 아날로그 감성이 딱히 취향은 아니다. 스마트폰이 안겨준 편리함과 용이성을 찬양하고 싶을 때도 많다. 스마트폰이 아니었다면 고양이 집사도 아닌 내가 수시로 고양이 영상과 사진을 감상하는 일 따위 불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뼛속까지 집순이로서 물건이 필요할 때마다 일일이 외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다. 그러나 이렇게 소중한 스마트폰이 나와 다른 사람 사이의 장애물처럼 느껴질 때마다, 스스로 생각하고 사색에 잠기기보다 가벼운 유행에 휩쓸려 가는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다소 씁쓸해진다. 나와의 대화에 집중하는 대신 스마트폰이나 들여다보는 몇몇 친구들에게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왕 발전한 기술이라면 가능한 한 누리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나 나에겐 가상의 세계보단 눈앞의 상대에 대해 깊이 알아가는 쪽이 내겐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비록 우리 인간이 시스템이 완벽히 갖추어진 영화 속 비봇들처럼 서로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해 맞춤형 친구가 되어줄 순 없을지라도, 직접 손을 내밀어 쌓아 가는 인연이 분명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한 관계보다 훨씬 가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니 상대방의 눈을 마주해야만 나눌 수 있는 솔직한 대화의 가치를 모두 잊지 않았으면 한다.


서로에 대해 배워가는 론과 바니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5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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