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인 Dec 10. 2021

[오큘러스 外] 사랑으로 가득한 마이크 플래너건의 세계

호러라는 장르는 수단일 뿐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겁이 꽤 많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 겁이라는 것에도 종류가 있는데, 나 같은 경우 무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거나 하는 것에는 꽤 대범한 편이다. 추진력도 제법 있고 원체 성격이 급한 탓에 무언가 호기심이 동하거나, 해야겠다 마음먹으면 일단 저지르고 봐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 튀어나올 것 같은 으슥한 밤거리, 혹은 무언가 초자연적인 존재가 공존하고 있을 것 같은 서늘한 장소에 혼자 던져지는 상황은 전혀 달갑지 않다.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온갖 종류의 상황이 시뮬레이션되는 머릿속을 지닌 입장으로서 앞서 언급한 공간들은 나의 상상을 공포스러운 방향으로 열심히 몰아간다. 특히 10대 시절까지는 이러한 무서운 상상이 깊어질 때면, 당장 해야 하는 일에 집중도 못하게 되는 경우마저 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일본의 한 공포 영화가 개봉해 한창 홍보 중이었는데, 반 친구 한 명이 도대체 어디서 구한 것인지 해당 영화의 포스터를 가져다 교실 벽 뒤쪽에 붙여 놓았다. 포스터의 전반적인 색상이 어두컴컴해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인지 수업을 하러 들어온 선생님들 중 그 누구도 포스터를 떼라고 하지 않았다. 타고나길 내향인인 데다 당시에는 더 소심했던 나는 내 눈에만 거슬리는, 솔직히 내심 무서웠던 그 포스터를 직접 뗄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오후 수업 시간이 한창 흐르고 있었을 때, 친구 한 명이 그 영화의 콘셉트를 흉내 내서 귀신인 척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당시에도 머리로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때의 나는 공포 영화 예고편만 봐도 무서운 생각들이 화산처럼 폭발해 괴로워하곤 했다. 그 우스꽝스러운 장난 덕분에 나는 놀랍게도 무려 3일 동안 부모님과 함께 잠을 잤다. 이런 나였기에 공포 영화들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여름이면 언제 예고편이 튀어나올지 몰라 항상 은은한 긴장감을 느끼며 지냈다.


그러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언제부터라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서서히 공포라는 장르만이 주는 짜릿함을 즐기게 된 것이다. 타고나길 겁쟁이에 망상이 일상인 탓에 여전히 전형적인 공포 영화, 예를 들어 ‘주온’, ‘셔터’, ‘컨저링’ 같은 들은 애당초 감상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할로윈’이나 ‘캔디맨’, 그리고 넷플릭스에서 호평을 받았던 ‘피어 스트리트’ 시리즈 등의 슬래셔 무비나, ‘그것’ 혹은 ‘캐리’ 등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은 제법 편히 볼 정도는 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공포의 수위가 어디까지인지 열심히 확인하던 차에 관심을 가지게 된 감독이 바로 마이크 플래너건으로, 처음 접한 그의 작품은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 ‘힐 하우스의 유령’이다. 저주받은 저택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다섯 남매에 관한 이야기로, 적당히 무서우면서도 짜임새 있는 스토리 덕분에 꽤 좋은 평을 이끌어냈다. 나 또한 꽤 인상 깊게 감상한 덕에 이후 공개한 감독의 또 다른 넷플릭스 시리즈인 ‘블라이 저택의 유령’과 ‘어둠 속의 미사’까지 시청을 마쳤고, 그의 극장 개봉 영화들까지 하나둘씩 감상 중에 있다.


플래너건 감독의 작품 대부분은 분명 장르로서 분류하자면 공포에 가깝다. 그의 작품들은 코미디처럼 킬킬거리며 감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극 중 느껴지는 긴장감은 액션 영화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며, 드라마 장르와 같은 방식으로 공감을 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또한 유령 혹은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등장하며, 공포 영화라고 인지할만한 연출이 일정 비율 이상 나온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들의 메인 장르가 공포라는 데는 아마 거의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 잘라 호러라고만 정의 내리기도 어쩐지 억울한 감이 있다. 그의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감성 때문이다. 넷플릭스 시리즈건 장편 영화건 그의 이야기들은 한동안 곱씹게 만드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아련하고 먹먹하며 조금은 서글퍼진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과 분위기는 분명 공포라는 장르에서 흔히 기대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나는 이처럼 플래너건 감독만이 지닌 감성의 핵심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비극적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 오큘러스 / 썸니아 / 위자 / 힐 하우스의 유령 / 블라이 저택의 유령


플래너건 감독의 작품들의 메인 키워드가 ‘사랑’이라면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하위 요소는 바로 ‘가족’이다. 적당한 긴장감과 몰입감, 호러라는 장르 다운 적절히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랑하는 ‘힐 하우스의 유령’에는 무려 오 남매가 등장한다. 누군가 해석하기를 다섯 남매는 각각 슬픔의 다섯 단계를 의미한다고 한다. 첫 째 스티븐은 부정, 둘째 셜리는 분노, 셋째 테오는 타협, 넷째 루크는 우울, 막내 넬은 수용. 같은 배에서 태어났어도 성격이 다른 것은 당연지사이지만, 이 정보를 가지고 드라마를 감상한다면 다섯 남매가 과거 힐 하우스에서의 기억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지하고 감당하는 모습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한 가족이지만 그 안에서 각자의 위치에 따라 받아들여야 하는 역할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말 부분에서 막연히 감정적으로 격해지기보단 온갖 복잡한 생각들이 밀려든다.


힐 하우스의 유령 (왼쪽) / 블라이 저택의 유령 (오른쪽)


마찬가지로 저주받은 저택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블라이 저택의 유령’의 경우 가족 간의 사랑 역시 비중이 적진 않지만 로맨스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미국인 가정교사 대니는 자신의 약혼자와 관련한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도피하듯 영국까지 찾아와 일자리를 얻는데, 그곳이 바로 블라이 저택이다. 대니가 돌보게 된 두 남매는 물론 그들의 보호자인 삼촌과 이미 저택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어딘지 비밀스러워 보인다. 그저 당장의 괴로운 현실을 피해 도망쳐 왔을 뿐인 대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저택의 저주에 점점 더 발목이 묶인다. ‘블라이 저택의 유령’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1화 첫 장면과 마지막 회의 엔딩 씬이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처음으로 같은 넷플릭스 드라마를 두 번이나 보게 되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힐 하우스의 유령’에 비해 속도감이 떨어져 지루하다는 평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블라의 저택의 유령’에서 그리는 로맨스만큼 아름다우면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러브 스토리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장르 자체는 공포라니, 이보다 신선할 수 있을까?


오큘러스 (왼쪽) / 위자 : 저주의 시작 (가운데) / 썸니아 (오른쪽)


영화 ‘오큘러스’와 ‘썸니아’, 그리고 ‘위자 : 저주의 시작’(이하 위자 2016) 역시 각각의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가족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이다. ‘오큘러스’에는 11년 전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두 남매가 등장한다. 그때의 사건으로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시고 남동생 팀은 정신병원에 수용됐다. 그날 일이 아버지의 작업실에 있던 거울 때문이라고 굳게 믿는 누나 카일리는 다시 그 거울을 손에 넣고, 거울의 사악한 힘과 동생의 무죄를 밝혀 내고자 한다. 마이크 플래너건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공포 영화다운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결말 또한 가장 무서웠다. 그러나 이 작품 또한 인간의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 앞에서도,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이를 극복해 내고자 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지켜보는 이들의 심장을 짓이기는 것만은 동일하다. 영화 ‘위자(2014)’의 후속작인 ‘위자(2016)’에서는 아버지를 잃은 어머니와 두 자매가, ‘썸니아’에는 어린 아들을 잃은 젊은 부부가 나온다. 그리고 두 영화 모두 서양 사람들은 이러한 형상에 공포를 느끼나 싶은, 아마도 유령인 듯한 괴생명체가 나온다. 두 영화 중 좀 더 호러 영화다운 쪽은 ‘위자(2016)’이지만 스토리가 비교적 엉성한 편이고, ‘썸니아’의 경우 어느 정도 공포 영화의 형식은 띠고는 있으나 판타지적 요소가 많다. 굳이 둘 중 한쪽을 추천한다면 촉촉한 감성으로 충만한 ‘썸니아’ 쪽에 표를 던지고 싶다. (결국 ‘오큘러스’가 가장 훌륭했다는 의미이다.)



새로운 실험 : 어둠 속의 미사


마이크 플래너건의 가장 최근 작은 넷플릭스에서 올해 공개한 드라마 ‘어둠 속의 미사’로, 지금까지 그가 넷플릭스와 작업한 그 어떤 작품들보다도 가장 실험적이고 심오하며, 그만큼 호불호 또한 갈릴만한 작품이다. 이야기의 속도감으로 말할 것 같으면 ‘블라이 저택의 유령’보다도 처지고, 분위기는 ‘힐 하우스의 유령’보다도 무겁다. 빠른 전개와 자극적인 요소들로 쉼 없이 몰아치는 스토리들이 좀 더 사랑받는 요즘 추세를 생각했을 때 ‘어둠 속의 미사’는 분명 쉽게 인기를 끌만한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여태 나온 플래너건 감독의 작품들 중 ‘어둠 속의 미사’가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이 작품을 주변에 추천하고 다니기 바쁜 나조차 1, 2화까지만 하더라도 이 드라마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엄연히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 호러물임에도 스산한 분위기만 좀 풍길뿐 웬만한 쫄보들도 태연하게 관람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마지막 화의 엔딩 장면을 보는 순간 마치 거대하고 웅장한 성을 짓듯 인내심 있게 한 회, 한 회 이야기를 쌓아 올린 감독의 의도가 느껴지면서 섣불리 그의 생각을 파악하려 했던 스스로가 멋쩍어진다.


어둠 속의 미사


‘어둠 속의 미사’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외딴 섬마을에 열정 넘치는 젊은 신부가 새로 부임하면서 시작된다. 그 신부는 불의의 사고로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소녀를 다시 걷게 만드는 기적을 행하여, 새로운 희망과 기대 따위 없던 마을 사람들에게서 맹목적인 믿음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모두가 신부가 일으킨 기적에 눈이 먼 것은 아니다. 각자의 이유로 그 젊은 신부를 의심의 눈초리를 지켜보던 몇몇 이들은 얼마 뒤 예정된 자정의 미사가 그저 평범한 미사가 아님을 눈치채고, 앞으로 마을에 닥칠지 모를 재앙에 대비하고자 한다. ‘어둠 속의 미사’의 결말은 앞서 언급한 플래너건 감독의 다른 작품들과 다른 방식으로 비극적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공포스러운 상황에서마저 빛을 발하는 충만한 사랑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무조건적인 믿음이, 애써 진실을 외면하게까지 만드는 그 모순적인 믿음이 불러일으킨 헛된 욕망과, 그 믿음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이 비극의 중심이다. 하지만 ‘어둠 속의 미사’에서의 비극은 꽉 닫혀 있지만은 않는다. ‘진리’로 인도해 주는 마지막 장면에서 분명한 희망의 불씨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 그리고 그 경계에 대해 던지는 끊임없는 질문들 또한 매력적이다.


흥미롭게도 ‘어둠 속의 미사’는 플래너건의 2016년도 작품인 공포, 스릴러 영화 ‘허쉬’와 연결된다. 극 중 주인공 매디는 청각 장애가 있는 소설가로, 그가 한창 집필 중인 새로운 작품의 제목이 다름 아닌 ‘어둠 속의 미사’다. 심지어는 영화 내에서 ‘어둠 속의 미사’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이름이 언급된다. 마음에 드는 감독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본인의 세계관을 구축해 왔는지 발견하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허쉬’라는 작품 자체도 한 시간 반이 되지 않는 러닝타임 안에서 지루할 새나 군더더기 없이 이야기가 전개되어 감상을 마치고 나면 감독의 다른 작품들처럼 긴 여운은 없더라도 끝 맛이 개운하다. 또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플래너건 감독의 작품들에서는 같은 배우들이 그의 여러 작품에 출연한다는 점이다. ‘허쉬’의 주인공이자 감독의 부인이기도 한 케이트 시걸과, ‘힐 하우스의 유령’에서 오 남매의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연기했던 헨리 토마스는 플래너건의 작품 대부분에 출연했다. 두 사람 외에 다른 배우들이 또 어떤 작품에 등장하는지 찾아보는 맛도 쏠쏠하다.


허쉬 (왼쪽) / 제럴드의 게임 (가운데) / 닥터 슬립 (오른쪽)


많은 호러 마니아들이 그러하듯 플래너건 감독 역시 스티븐 킹의 이야기들에 매혹이 되었던 듯하다. 그리하여 탄생한 영화가 ‘제럴드의 게임’과 ‘닥터 슬립’이다. ‘제럴드의 게임’의 경우 대놓고 유령이 등장하지도, 잔인한 연쇄 살인마가 설치지도 않으며, 소위 말하는 ‘갑툭튀’ 장면이랄 것도 없지만 침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이 주는 압박감과 불안감이 제법 근사하다. 주연 배우이자, ‘힐 하우스의 유령’에서 다섯 남매의 엄마로 출연했던 칼라 구기노 특유의 섬세한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닥터 슬립’은 아직 감상 전이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적어도 실망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플래너건 감독은 이후 스티븐 킹의 또 다른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리바이벌’의 연출과,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 ‘어셔가의 몰락’을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제작 예정이라고 한다. 내가 넷플릭스의 구독을 해지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렇게 또 한 가지 늘었다.


         




극장 개봉 영화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 마이크 플래너건

https://movie.daum.net/person/filmography?personId=359075

넷플릭스 공개 드라마 사진 출처 : IMDB

https://m.imdb.com/title/tt6763664/

https://m.imdb.com/title/tt10970552/

https://m.imdb.com/title/tt10574558/

작가의 이전글 [루저의 역습] 그땐 그랬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