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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Jul 16. 2021

[프로메테우스 & 커버넌트] 사고할 수 있는 자의 본성

그리고 그 끝을 모르는 탐욕



‘에이리언’ 1, 2편을 보고, 그 시대 영화답지 않게 강인하고 입이 거친 여성 캐릭터인 주인공 리플리에 반했던 나는 이후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 커버넌트’(이하 커버넌트)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반했던 리플리가 나온 두 편보다 오히려 ‘프로메테우스’와 ‘커버넌트’가 더 인상 깊게 다가왔다. (3, 4편은 평이 썩 좋지 않기에 실망할까 무서워 보지 않았다.)


‘에이리언 2’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86년에 개봉해서 성인이 된 이후인 2012년 프로메테우스가 공개됐지만, 오히려 ‘프로메테우스’와 ‘커버넌트’가 더 앞선 시기를 다루고 있다. 각각 2000년대 후반과 2110년 이전을 배경으로 하는 ‘프로메테우스’와 '커버넌트'가 2122년 이후를 표현한 ‘에이리언’ 시리즈보다 더 발전된 영화 기술을 자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기술력 덕분인지 에이리언의 잔인함 역시 ‘프로메테우스’와 ‘커버넌트’가 몇 수 위이다.


2089년 인간이 외계인의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탄생한 생명체라는 증거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인류의 기원을 찾기 위한 탐사대가 꾸려진다. 그것이 바로 ‘프로메테우스 호’. 탐사대가 그 멀리까지 큰돈 들여 찾아간 보람이 있으려는지, 그들은 마침내 도착한 행성이 지구와 조건적으로도 매우 유사할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살던 인류의 선조들이 인간들과 유전적으로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프로메테우스 호 탐사대


이렇게 인류의 기원만 확인하는 데서 만족하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면 이 영화가 에이리언 시리즈에 포함될 일은 없었으리라. 마치 두꺼운 철학책처럼 제법 웅장하지만 긴 러닝타임으로 보는 사람을 지치게 하는 지루한 SF물이 되었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탐사대는 인류의 선조들이 지구를 파괴할 계획이었으며, 그들이 지구로 출발하기 직전 그 계획이 좌절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Here come the aliens…


인류의 기원을 부르짖었던 ‘프로메테우스 호’의 사람들과 달리 그로부터 10년 뒤 우주로 출발한 ‘커버넌트 호’는 식민지 개척이라는 좀 더 실질적인 임무를 띠고 있다. 원래의 목적지인 ‘오리가에’ 행성으로 곱게 떠났다면 ‘커버넌트’ 역시 제목 앞에 당당히 ‘에이리언’이라는 단어를 내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순항 중이던 ‘커버넌트 호’는 미지의 행성으로부터 온 신호를 감지하고, 그곳이 그들의 목적지보다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더 적합한 조건임을 확인한 후 탐사를 결정한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에이리언 시리즈의 그 어떤 탐사대원들보다 더 잔인하고 끔찍한 방식으로 외계 생명체들의 공격을 당한다. (2017년 개봉 작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이 두 편의 영화에 모두 출연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인물이 한 명 있다. 인간인 듯 인간 아닌 인간 같은 너, AI 데이비드. 그가 내뱉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주옥같으면서도 허를 찌른다. 물론 데이비드의 존재 자체도 그 맥을 같이 한다.


프로메티우스(왼쪽)와 에이리언 : 커버넌트(오른쪽)에서의 AI 데이비드


• 사고할 수 있는 자의 본성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은 과연 축복일까 저주일까. 이 사고력을 통해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개념을 수립하였고,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것들을 상상해낼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에 대해 끝없이 탐구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니게 되었다.


인간만이 지닌 이러한 사고 능력 덕분에 인류는 나약한 신체를 지니고도 먹이 사슬의 최상위 포식자에 자리하게 됐다. 바로 그 사고력 덕분에 지금 나는 인간의 발명품 중 하나인 노트북으로 글을 쓰며, 와이파이 덕에 브런치에 글도 올리고 있다. 안타깝게도 모두는 아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고력에서 출발한 탐구욕, 거기서 발전해 탄생한 문명의 이기 덕분에 소위 말하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중이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분명 인간의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은 축복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누릴 수 있게 된 문명은 우리에게 신체적 안전과 편안을 제공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더 이상 몸을 보호하고 배를 채우는 데만 급급하지 않은 인류는 자연스레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고, 이는 우리의 사고를 더욱 증폭시켰다.


‘프로메테우스 호’의 시발점이 된 엘리자베스 쇼 박사, 비록 감정은 허락되지 않았으나 본인만의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한 AI 데이비드, 그리고 그 외 다양한 욕구들을 표출하던 탐사대원들이 모두 그 증거이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한 장면


인간의 머릿속에서 태어난 생각들은 무한히 뻗어 나가기만 할 뿐 결코 멈출 줄 모른다. 마침내 원하는 답에 도달할 때까지. 그렇게 해서 갈망하던 진리를 밝혀낸 엘리자베스 쇼 박사는 과연 그 깨달음에 만족했을지 궁금해진다. 모르는 게 약일까, 아는 것이 힘일까. 나도 ‘프로메테우스 호’에 오르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인간이 인간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 그리고 탐욕


개인적으로 ‘커버넌트’의 탐사 목적은 마냥 응원해 줄 수만은 없었다. 식민지 개척. 그들의 목적지인 ‘오리가에’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그리고 영화상에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지만, 과연 그 행성에 이미 다른 생명체가 거주하고 있을 가능성이 전혀 없었을지 의문이다.


커버넌트 호에 실린 개척민들과 배아가 저장된 보관함


결국 그들이 항로를 변경해 도착한, 그리고 10년 전 ‘프로메테우스 호’가 비극을 맞이했던 바로 그 행성처럼 ‘오리가에’ 역시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만약 ‘커버넌트’의 탐사대원들이 계획대로 원래 목적지에 도착해 그 행성의 주인들을 마주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그들이 에이리언과 달리 충분히 ‘정복 가능’ 해 보였다면?


커버넌트 호의 탐사대원들은 새로운 터전을 개척하는 일에 대해 제법 긍정적이고 낭만적인 마음을 품고 있는 듯 보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지구는 도대체 어떻게 됐는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프로메테우스’에 이어 ‘커버넌트’에도 등장하는 AI 데이비드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인간이 우주로의 이주까지 불사할 정도로 재건에 목을 매는 이유는 그들이 멸망을 앞둔 위기종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현실을 보자면 2100년쯤 되었을 때 인류 멸종이 아주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점에서 데이비드의 말에 뼈를 맞은 기분이었다.


지구를 구성하는 전부가 제 것인 양 동식물로부터 모든 것을 탈취하고 통제했던 인간은, 이것으로도 모자라 같은 인간마저 지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조금 더 원시적인 시절에는 직접적으로 남의 생명과 재산을 갈취했으며, 조금 더 문명화된 지금은 차별의 가장 기본 조건이 되는 생득 조건과 세세하고 견고하게 나뉜 계급을 통해 상대적 약자에 대한 착취를 일삼는다.


데이비드의 설명에 따르면 자멸을 앞둔 인류가 우주로 쏘아 올린 것이 바로 이 ‘커버넌트 호’인 것이다. 결국 본인들이 설 땅마저 파괴하다시피 한 인간들이 짐승들과 별다를 바 없는 그 알량한 생존 본능과 끝을 모르는 탐욕 때문에 또 다른 행성마저 망치기 위해 길을 떠난 셈이다.


커버넌트 호 탐사대


그리고 우연찮게 도착한 미지의 행성에서 인간들은 그들보다 더 지능적이고 강력하며 무자비한 존재로부터 철저한 패배를 맛본다. 그곳에서 만난 에이리언들이 번식하는 방식은 그동안 인간들이 같은 인간을 포함한 다른 존재들에게 자행해 온 행동들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그저 인간의 위치가 착취자에서 피착취자로 뒤바뀌었을 뿐.


하지만 인간에게 진정한 좌절을 안겨 준 것은 에이리언이 아니었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으되, 인간처럼 스스로 생각할 줄 알았던 AI 데이비드다. 창조주의 그늘에서 벗어난 원숭이는 결국 자기 발로 일어났으며, 천국에서 복종하기보단 지옥에서 지배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데이비드의 대사에서 인용)


사고능력에서 비롯된 탐구와 창조를 향한 인간의 욕구를 막을 방법이 없듯, 데이비드의 욕구 또한 막을 길은 없다. 모든 것을 다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인간은 그들의 복제품이자 마찬가지로 사유할 수 있는 존재까지는 어쩌지 못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해피 엔딩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AI 데이비드가 안겨 준 앞뒤 꽉 막힌 비극적 엔딩은 어쩐지 묘한 짜릿함까지 안겨 준다.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 커버넌트’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몇 번을 곱씹어 보았지만 여전히 답은 찾지 못했다. 인간이 지닌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은 과연 축복인가, 재앙인가.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프로메테우스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65711

에이리언 : 커버넌트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93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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