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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Feb 18. 2022

[헌트] 진정한 모두 까기 인형

무조건적인 신념 앞에 희미해져 버린 구분선






정치에 있어서 절대적인 옳고 그름은 과연 존재할까? 이 질문에서 히틀러 등의 독재자들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정치란 최소한의 도덕성만 지킨다만 결국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일련의 행위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정치를 통해 숭고한 뜻이나 진정한 공익을 이뤄낼 수 있다고 믿지만 나는 이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다. 대한민국의 정치를 좀 더 바른 쪽으로 이끌어준 민주화운동, 혹은 그 외 사회운동이나 시위 등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 또한 독재자 하면 쉽게 떠올려지는 인물들만큼이나 내가 정의하고자 하는 정치의 범위를 너무나 다른 의미에서 벗어나 있다.


한때 나는 집안 분위기에 휩쓸려 특정 당이 절대 악이요, 반대 당이 절대 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큰 틀에서는 그때 심어진 믿음의 방향에서 별로 벗어나지는 않았다. 다만 나름 머리가 커지고 정치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가 점점 더 쌓여갈수록, 그리고 선거에 참여한 횟수가 늘수록 예전처럼 모 아니면 도와 같은 시각은 벗어났다. 여태껏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지켜본 후 내린, 많은 이들이 동의할 듯한 결론은 정치인들 중에 개혁이니 혁신이니 하는 대의를 품고 정치에 임하는 이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품었던 뜻도 얼마간의 정치 인생 이후 그 흔적조차 사라지는 모양새다.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이미 대학생 시절에 친구들과 열심히 떠들어서인지 더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지루한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국민들 혹은 유권자들을 주제로 삼는 건 조금 다를지 모르겠다.


좀 너무한 소리일지 모르나 한정적이기 그지없는 후보들 중에서 어떻게든 투표권을 행사하여야 하는 국민들의 입장 역시 큰 맥락에서는 정치인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동 선이니 정의니 하는 이상적인 가치를 우선시하기보다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본인들에게 유리한 정당이나 인물에 표를 던진다. 다행히 한국의 정치 역사는 잠깐의 주춤거림은 있었을지언정 전반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객관적인 증거들을 통해 문제가 많다고 밝혀진 쪽을 지지하는 것이 아닌 이상, 각자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일은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현실은 나의 이러한 믿음과는 꽤 달라 보인다.


학창 시절 나는 다니는 사람도 얼마 없는 동네 길거리에서 웬 할아버지가 허공에다 대고 OOO를 뽑는 것들은 모두 빨갱이라며 악을 쓰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지인 중 한 명은 자신의 부모님이 특정 당을 지지하기에 개념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의 아버지는 기분 좋게 나간 술자리에서 본인과 다른 당을 지지하는 친구의 토론을 빙자한 높은 데시벨의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당장 나의 가족들 역시 나와 남동생이 성인이 된 이후부터 미세하게 정치적 의견이 갈린 상황이다. 그리고 단언하건대 나를 포함한 모두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기본적으로 본인의 생각이 가장 옳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을 것이다.



• 이곳은 인간 사냥터


낯선 곳에서 깨어난 열두 명의 사람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눈을 뜬 이들은 우왕좌왕하던 중에 커다란 나무 상자 하나를 발견한다. 조심스럽게 다가간 상자에서 찾아낸 것은 다름 아닌 새끼 돼지들과 각종 무기들. 그들은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주춤거리며 무기부터 하나씩을 집어 들지만 그러기 무섭게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오기 시작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몇몇은 총에 맞아 죽고 나머지 사람들 어떻게든 그곳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도 누군가는 지뢰를 밟아 몸이 두 동강 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수류탄으로 인해 몸이 터져 버린다. 얼마간의 피의 향연이 끝나고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이들은 본인들이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사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눈을 뜬 이곳은 인간 사냥터


그렇게 생존자들은 주유소가 딸린 한 가게에 도착하고, 가게의 주인인 노부부의 도움으로 119에 전화를 건다. 간신히 한숨을 돌리려던 그때, 친절하던 주인 부부는 갑자기 방독면을 쓰더니 그대로 화학 가스를 살포해 버린다. 알고 보니 주인 부부 역시 그들을 납치한 이들과 한 패. 두 사람은 화학 가스로도 모자라 ‘사냥감’들이 죽었는지 확실히 하기 위해 확인 사살까지 마친다. 주인 부부가 아테나라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에게 의미심장한 무전을 받고 얼마 뒤, 또 다른 생존자 크리스탈이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아직 상황 파악을 미처 못한 어리바리한 ‘사냥감’처럼 보이는 그는 알고 보니 전직 군인 출신. 크리스탈은 어딘지 미심쩍은 주인 부부를 사살해 버리고, 가게 안을 확인하던 드론을 부숴 버린 게리와 마주쳐 그와 동행을 하게 된다.


가게 주인을 순식간에 처리한 크리스탈


두 사람은 곧 기찻길을 따라 도망치다 달리는 열차의 화물칸에 올라타는데, 하필 그곳엔 난민들이 숨어 있었고 덕분에 두 사람은 군인들의 검문을 받게 된다. 그런데 게리는 그 난민들이 가짜라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하더니 그중 한 남성의 바지에 수류탄을 넣기에 이른다. 결국 두 사람은 난민 캠프에까지 끌려오지만 다행히 대사관에 연락이 닿고, 크리스탈은 난민 캠프에 먼저 와 있던 ‘사냥감’ 돈과 함께 대사관 직원의 차를 타고 그곳을 떠난다. 그러나 크리스탈은 귀신같은 직감으로 대사관 직원 역시 사냥꾼들과 같은 편임을 알아채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죽여 버린다. 그리고 트렁크에서 발견한 게리의 시체와 지도 한 장. 크리스탈은 돈과 함께 지도에 표시된 목적지, 즉 자신이 마지막으로 사냥당할 뻔했던 장소로 이동한다. 인간 사냥 게임의 지배자인 아테나에 맞서 게임의 판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기 위해.



• 믿어 의심치 않는 본인들만의 정의로움


영화 ‘헌트’는 거대한 ‘낚시질’로 영화의 포문을 연다. 초반에 엠마 로버츠를 비롯한 그 외 꽤 익숙한 얼굴들이 '사냥감’으로 등장하는데, 카메라 구도나 엠마 로버츠의 이름값이나 여러모로 그가 주연 배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출연진 목록 상에서 이름다운 이름도 없이 ‘요가 팬츠(Yoga Pants)’라고 명명된 엠마 로버츠는 극 중에서 황당할 정도로 일찍 죽어 버린다. 그 외에 꽤 유명한 다른 배우들이 클로즈업될 때마다 저 사람이 주인공인가 싶으면 머지않아 퇴장을 고하는 통에 ‘사냥터’에 던져진 사람들 만큼이나 보는 이들 역시 당황스럽게 만든다. 게다가 그들이 사냥을 당하는 장면들은 적당히 잔인한 게 아닌 거의 시작적 테러 수준이라 당혹스러움을 배가 시킨다. (그러나 그 연출만은 잔인하다기보다는 익살스러운 쪽에 가깝다)


영화 '헌트' 속 엠마 로버츠


그리고 마침내 주인공 크리스탈이 등장한 후부터 영화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영화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사냥꾼’과 ‘사냥감’을 가르는 요소가 정치 성향, 혹은 그 비슷한 무언가라는 사실을 쉽게 파악이 가능하다. 조금 단적으로 말하자면 사냥꾼들은 도덕덕 우월감에 젖어 있는 모순적인 좌파 엘리트 집단이고, 사냥감들은 약자를 혐오하고 음모론을 퍼 나르는 우파 집단이다. 놀랍게도 영화는 둘 중 어느 한쪽만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사냥꾼도 사냥감도 모두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면서 그 반대편에 있는 이들을 소탕해 버려야 할 사회 악처럼 취급한다. 정치 혹은 그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들은 대개 창작자의 성향이 얼마간 반영되는 것이 보통 이건만, 이 영화가 전개 내내 양쪽을 균등하게 비판 또는 조롱하는 덕에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중후반까지도 갈피를 잡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재생하다 중간중간 멈추고 감독에 대해, 그리고 관객 및 네티즌들의 반응에 대해 찾아보기 바빠졌다.


'사냥꾼'들과 끊임없이 맞서 싸우는 크리스탈


가슴에 손을 얹고 나의 정치 성향은 어느 정도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편이기에, 트럼프가 이 영화에 대해 반감을 드러냈다는 글을 찾고 나서야 안심 아닌 안심을 했다. 그러나 영화의 감상을 완전히 마친 후의 생각을 이야기하자면 모두 까기 인형도 이런 모두 까기 인형이 없다는 거다. 사냥감들 중 한 명이자, 사냥꾼의 리더 격인 아테나에게 제일 중요한 표적이었던 주인공 크리스탈이 그저 오해로 인해 사냥터로 끌려 왔을 뿐이고, 알고 보니 양쪽 진영 모두에서 벗어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선악이니, 옳고 그름이니 하는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작품은 아니다. 어느 한쪽이 옳은 가치관을 지녔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랬다면 사냥꾼과 사냥감 양쪽 모두 그렇게 처참한 꼴로 죽어 나갔을 리가 없다.


마침내 마주한 크리스탈과 '아테나'


‘헌트’의 두 집단을 표현하자면 완전무결한 체하며 다른 이들을 개도 하려 드는 선민의식에 젖어 있는 이들과, 본인들이 겪는 구조적이고 개인적인 불행의 원인으로 혐오를 쏟아낼 상대적 약자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정도가 될 것이다. 전개나 극 중 설정 상 두 집단 모두 다소 극단적으로 묘사되기는 했지만 그들의 모습 자체가 아주 생소하다고 보긴 힘들다. 결국 이 영화는 각자는 본인의 사상만이 진정한 정의라고 믿지만 최소한의 포용력과 융통성도 없이 서로에게 핏대를 세워대는 이러한 맹목적인 믿음 앞에 허울뿐인 정치적 신념 같은 것은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가 이 영화에 왜 그리 열을 냈는지 잘 이해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감독이 정치적 회의나 냉소만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 듯 보인다. 그랬다면 이처럼 강렬한 연출은 애초에 나오지 않았으리라. 오히려 열의와 관심, 그리고 책임감 등을 느끼고 있기에 이런 발칙한 작품을 탄생시키지 않았을까. 이 영화로 인해 정치란 각 집단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과정이라는 나의 믿음이 더욱 강해졌다. 관용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한 것은 물론이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33580


사진 출처 : IMDB

https://m.imdb.com/title/tt8244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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