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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Mar 18. 2022

[나를 찾아줘] 그래서 누구 잘못이라고요?

완벽함이라는 족쇄, 그 덫에 걸린 한 남자






온라인 상에서 연인의 연애관을 판단하기에 좋은 영화로 언급되는 작품 세 가지가 있다. 바로 ‘건축학개론’, ‘500일의 썸머’, ‘나를 찾아줘’가 그것이다. 별로 끌리지 않아 ‘건축학개론’은 아직까지 보지 않았지만 대략적인 스토리를 알고 있고, 나머지 두 영화는 직접 감상을 한 덕분에 왜 이 세 가지 영화가 연애 상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작품이라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갔다. 대신 정확히 짚고 가자면 이성애자 여성의 남성 상대의 연애관에 대한 단서가 될만한 영화라고 하겠다. 세 영화의 여주인공들의 공통점을 한 가지 꼽자면 남성 관객들에게 욕먹기 쉬운 캐릭터라는 사실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묘사하자면 ‘건축학개론‘의 서연은 순진한 얼굴의 어장녀로 보일 수 있고, ’500일의 썸머‘의 썸머는 속을 알 수 없던 매정한 전 여자 친구 정도일 듯하다.


나 역시 여자이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건축학개론’의 서연과 ‘500일의 썸머’의 썸머의 입장과 상황은 약간의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어장처럼 보였던 모습들은 그저 서연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의 빼어난 외모로 인해 발생한 억울한 상황 들일 가능성이 크다. 썸머의 경우 연애에 서툴고 마음만 저만치 앞서가는 남주인공 톰으로 인해 곤란해하는 장면들이 종종 보인다. 직업뿐만 아니라 연애에도 경험이 쌓여야 기술이 느는 법이지만, 썸머 입장에선 오로지 본인 감정에만 충실한 톰의 이러한 어설픔까지 품어줄 정도로 애정이 크지 않았을 따름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500일의 썸머’는 철저하게 톰의 입장에서 서술된 이야기로, 썸머의 감정과 생각을 민감하게 파고들지 않는 이상 남자의 순애보도 몰라 주는 나쁜 X 정도로 남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을 아낀, 다른 두 영화와는 결이 많이 다른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는 어떨까. 이 영화는 세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극장에서 관람했는데 영화관을 빠져나오고도 한 동안 여운에서 벗아나지 못했다. 이 여운이라는 것도 감동적인 메시지나 두 주인공의 로맨스 탓이 아닌 반전으로 인한 충격 때문이었다. ‘나를 찾아줘’의 첫 장면과 엔딩 씬은 동일한데, 이를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 감상할 때와 마지막에 지켜볼 때의 느낌은 천지차이이다. 솔직히 에이미라는 캐릭터가 벌인 일의 규모를 생각하면 욕을 먹는다고 해서 마냥 억울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까지 일을 키우기까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말고는 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때와 감상을 마쳤을 때의 나의 기분만큼이나 다르다.



• 완벽해 보이던 결혼 생활, 사라진 아내, 의심받는 남편


모두가 부러워하는 커플 에이미와 닉. 그런데 결혼 5주년 기념일 아침 닉이 집에 돌아와 보니 에이미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 유년 시절 동화 시리즈인 ‘어메이징 에이미’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유명 인사 에이미가 사라지자 대중들은 그의 실종 사건으로 곧장 떠들썩해진다. 한편 경찰은 닉이 돈을 낭비한 내역과 창고에 쌓아둔 물건, 그리고 에이미가 닉에게 당했던 폭행과 폭언 등을 기록한 일기장을 발견한다. 게다가 집, 차 등 대부분이 에이미의 명의로 되어 있고, 혼전계약서 덕분에 이혼을 하더라도 닉은 아내의 재산을 분할받을 수 없는 상황. 닉이 돈을 차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에이미가 죽는 것뿐이다.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닉은 에이미를 살해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설상가상으로 에이미를 위해 열린 집회에서 한 이웃집 여자가 에이미가 임신 중이었다고 폭로하는 바람에 닉을 향한 여론은 더욱 악화된다.


아내 에이미를 찾아 달라고 호소하는 남편 닉


하지만 알고 보니 이 모든 것은 에이미가 계획한 자작극. 영원히 행복하리란 기대와 함께 시작한 결혼 생활 이건만, 실직을 한 닉은 새로운 직장을 구할 생각은 않고 게임만 하며 시간을 때운다. 그러다 닉의 어머니가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고 그는 에이미의 의사와 상관없이 어머니가 사는 소도시로 이사를 감행하는 바람에 에이미는 자신의 고향인 뉴욕을 떠나게 된다. 게다가 에이미는 자신이 물려받은 타운하우스를 손해 보면서까지 판 돈으로 닉과 그의 여동생에게 술집을 차려주지만 적자만 날 뿐이다. 이미 균열이 난 두 사람 사이에 다툼이 잦아지는 것은 정해진 수순. 닉은 홧김에 에이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물론, 자신이 작문을 가르치던 대학의 제자와 불륜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이 모든 것들이 에이미를 부추긴 것이다. 완벽하기만 하던 어'메이징 에이미'의 삶을 망가뜨린 닉에게 그가 감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게 만들도록, 그리고 모든 것을 바로 잡도록.





만약 ‘어메이징 앤드류’와 니콜이었다면?


에이미가 남편 닉에게 복수하기 위해 계획하고 벌인 일들은 그 철저함과 스케일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영화 상에서 추측할 수 있는 에이미의 어린 시절은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캐릭터의 모습에서 한 치의 오차도 허용받지 못한 숨 막히는 시간들이었을 듯하다. 최소한 청소년기쯤 되면 누군가 나의 삶과 생활 방식을 통제하려 들 때 반발할 생각이라도 들겠지만, 이러한 구속이 그보다 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더구나 어린 자아를 쥐고 흔들려는 이가 어린 나이에는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부모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아마 성인에 가까워지면서 표면적인 자유와 선택권은 늘겠지만, 과거에 노출됐던 영향은 쉽게 사리지지 않는다. 그동안 어머니가 자신에게 강요했던 것, 억지로 완벽한 척 연기했던 것에 반감을 느끼면서도 그때의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내내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살아왔다면 더욱 어려운 일이 리라.


한때는 행복하고 설렜던 에이미와 닉


그렇게 완벽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이러한 가르침에 순종하며 지내오던 에이미. 그런 에이미의 앞에 더욱 완벽한 인생을 완성시켜 줄 것만 같은 남자 닉이 나타난다. 기대와 다를 바 없이 훌륭하게 시작된 결혼 생활은 에이미의 기대와는 점점 다르게 흘러간다. 에이미는 자신을 향한 애정은 점점 더 식어 가고 갈수록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모습만 보이기 시작하는 닉을 보면서 불안해졌을 것이다. 사랑하던 사람에 대한 실망감도 없진 않았겠지만, 평생을 통제받아온 에이미로서는 자신처럼 통제되어 주지 않는 닉과 둘의 결혼 생활에 그 어떤 감정보다 불안을 더 크게 느끼지 않았을까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에이미는 분노를 키웠으리라. 지금까지 흠 하나 없던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기 시작한 원인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남편인 닉 밖에 없었을 테니까. ‘나를 찾아줘’에서 에이미가 벌인 일들은 얼핏 자신의 완벽한 인생을 망친 남편에 대한 복수극 같지만, 실은 모든 것을 원래 궤도로 되돌려 놓으려는 시도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모든 사건 이후에 폐기 예정인 남편의 정자를 가져다 임신했을 리가 없다. 그는 알고 보니 '어메이징 에이미'도 별 것 없다는 대중들의 말과 시선을 견고 완벽한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느니, 사랑 없는 부부 관계를 유지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 선택이야말로 남편에 대한 최선의 복수 방법이기도 하다.


고민에 빠진 에이미 / 경찰에게 의심 받는 닉


어떤 면에서는 겉으론 완벽해 보이지만 실은 완전히 망가져 있던 에이미 같은 사람에게 빠진 닉의 운이 나빴다고 할 수 있다. 분명 에이미에게 있어 닉은 모든 상황이 이 지경이 되게 만든 원인 제공자이긴 하지만 그가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면 이처럼 악몽 같은 결말을 맞이하진 않았을 것이다. 다른 배우자였다면 서로를 지치게 만드는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이혼을 하거나, 상담사를 만나 어떻게든 죽어가는 결혼 생활의 불씨를 살려 보거나, 혹은 갑작스레 분위기를 타서 잠자리를 가졌다가 아이가 생긴다든지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필 에이미를 선택한 닉에게는 그런 무난하고 일반적인 선택지 따위 허락되지 않았다. 닉의 잘못을 떠나서 그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생활은 어쨌든 가혹한 것은 사실이다. 나 역시 에이미라는 캐릭터와는 결혼은커녕 친구도 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그럴 일도 없지만) 에이미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크다.


천사 같은(?) 에이미


영화의 결말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닉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에이미와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로 결심한다. 영화인만큼 상황 설정 자체는 극단적이지만 결국 모든 것을 감내하는 것이야말로 결혼 생활이라는 은유는 아닐까 하는 것이 첫 번째 생각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만약 두 사람이 ‘어메이징 에이미’와 닉이 아닌, 성별이 바뀌어 ‘어메이징 앤드류’와 니콜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완벽한 인생을 살아가던 완벽한 남편을 두고 외도를 한 니콜은 단순히 살해 용의자가 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결국 목숨을 잃었을 확률이 클 듯싶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주인공 앤드류 가필드에게는 전혀 유감이 없다) 처음 언급한 주제로 돌아가자면 나머지 두 영화 ‘건축학개론’과 ‘500일의 썸머’는 상대방의 연애관을 파악하는 데 단서가 될만한 요소가 분명 있지만 ‘나를 찾아줘’는 조금 모호해 보인다. 누가 봐도 에이미의 성향은 일반적이지 않고, 그가 계획하고 저지른 일들은 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닉 또한 그저 순진한 피해자로만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말고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8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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