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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Apr 01. 2022

[돈 룩 업] 이 영화의 장르는 다큐멘터리?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






언제인가 인간관계에 환멸을 느끼던 나에게 친구가 굉장히 인상적인 이야기를 건넨 적이 있다. 네가 맞는 말만 해서 상대방들이 더 기분이 나쁜 것이라고.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의 내가 융통성도 없고 사회성도 떨어졌구나 싶은 생각에 반성을 하게 된다. 물론 내가 무례하게 인신공격을 했다거나 아픈 부분을 들추어내고, 상대방의 미래 계획에 감 놔라 배 놔라 했던 것은 맹세코 아니다. 단지 내 눈에 1로 보여서 1이라고 말했고, A라는 결론이 도출되어 A라고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나마도 관심이 없던 사람한테는 차라리 입을 다무는 편이었다. 한때 외모 콤플렉스가 심했던 나였기에 겉모습과 관련된 말들에는 예민하게 반응했지만,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다소 민감한 부분이라도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다면 쉽게 인정하곤 했다. 오히려 당사자인 나는 덤덤한데 제삼자가 대신 기분 나빠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모두가 본인의 상황과 눈앞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어 하진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 역시 종종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괴로워할 때가 있다. 그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녹록지 않은 인생에 어느 정도의 정신 승리는 어쩌면 필수 요소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당시 나의 친구가 나에게 해주었던 말은 우리네 인생사를 꿰뚫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현명한 나의 친구 덕분에 점점 입을 다무는 일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을 열어야 하는 순간들은 있기 마련이다. 단순히 옳은 소리를 떠들어 대는 것 이상으로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당장 편하자고, 지금 귀찮다고 외면했다가 상황이 더욱 걷잡을 수 없어지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 작게는 앞으로 돼지우리 꼴이 되지 않도록 매일 청소를 하거나,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대방과 더 큰 파국을 맞이할 것을 감수하고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공적인 일로 넘어가자면 아무리 정치에 환멸이 나도 투표권은 꼬박꼬박 행사하는 일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혹은 꽤 많이 규모를 키우자면 당장 지구로 달려오는 혜성을 외면하지 않고 수습에 나서는 일도 좋은 예일 것이다.



• 위를 봐 vs 보지 마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와 담당 교수 민디 박사는 에베레스트 크기의 혜성이 지구와 충돌 예정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언론을 비롯한 중요 기관에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 나선다. 그러나 대통령 올리언과 그의 아들이자 비서실장인 제이슨은 앞으로 있을 선거에만 관심이 있을 뿐, 두 과학자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인기 프로그램인 ‘더 데일리 립’에 출연했지만 쇼의 진행자 브리와 잭은 케이트와 민디 박사가 전하는 소식을 그저 흥미로운 가십 취급을 하고, 그나마도 인기 가수 라일리의 결별 소식에 묻히고 만다. 게다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격분한 케이트의 모습이 방송을 타면서 그의 모습은 SNS 상에서 하나의 밈으로 소비될 뿐, 그 누구도 그가 열변을 토해가면서 전달하고자 했던 엄청난 진실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케이트 (왼쪽)과 민디 박사 (오른쪽)


혜성 충돌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히 6개월 14일. 이를 하나의 이벤트 취급하는 사람, 정치 공작으로 여기는 사람 등, 반응은 다양하지만 이들 중 그 무엇도 케이트와 민디 박사가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호소를 아무도 진지하게 듣지 않던 와중에 올리언 대통령과 관련된 스캔들이 터지고, 그는 이를 덮기 위해 다시 케이트와 민디 박사를 소환한다. 그리고 마침내 핵무기를 발사해 혜성의 궤도를 바꾸기로 결정이 내려지지만 그것도 잠시. 이 혜성에 32조에 달하는 희귀 광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대 기업 배시의 CEO 피터는 드론을 보내 혜성을 30개로 쪼개어 지구에 떨어뜨리는 것으로 기존 계획을 변경해 버린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케이트가 술집에서 회의 내용을 전부 떠들어 버리는 바람에 폭동이 일어나고,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있는 민디 박사는 홧김에 '더 데일리 립'의 진행자 브리와 바람을 피우며, 라일리는 감미로운 노래를 통해 우리 모두 이제 X 됐으니 제발 과학자들 말 좀 들으라고 조언하고, 대중들은 진보와 보수로 갈려 한쪽은 하늘 좀 보라고, 다른 쪽은 보지 말라고 외쳐 대는 등 장관(?)을 이룬다. 그러는 와중에 마침내 거대한 혜성을 향해 지구 바깥으로 드론들이 발사된다.


올리언 대통령과 (왼쪽) '더 데일리 립'의 진행자들 (오른쪽)



• 진실은 언제나 두렵다


영화 ‘돈 룩 업’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혼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말 그대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케이트와 민디 박사에게 백악관의 공짜 간식을 돈을 받고 판 3성 장군은 서민들에게서 하나라도 더 악착같이 착취하려는 기득권 층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지구의 운명이 걸린 상황에서도 눈앞의 섹시한 상대방에게 달려드는 모습은 인간이 짐승보다 나을 게 무엇인지 회의를 느끼게 하고, 케이트처럼 진실은 고하는 사람들이 고리타분하고 심각하기만 한 사람 취급을 당하는 장면은 씁쓸하기만 하다. 거기다 전 지구적 위기 상황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돈 밖에 모르는 기업가는 또 어떠한가. 지구 멸망이 코앞인데 SNS에 열을 올리는 모습과 정치에 좌지우지되는 장면 역시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잠시 비친 한국의 모습 역시 한국인으로서 주목할만하다. 서울역의 사람들은 혜성과 관련한 엄청난 뉴스에 전혀 관심이 없고, 한편 절에 모인 사람들은 108배를 드리느라 바쁘다. 그저 영화로만 보고 싶지만 이쯤 되면 ‘돈 룩 업’의 장르는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케이트와 민디 박사


결코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당장의 이익에 눈이 먼 기회주의자, 본능에 굴복한 누군가, 그리고 이 모든 혼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진실을 전하려 애쓰는 사람까지. 영화와 같은 상황이 현실에서도 벌어진다면 나는 어디쯤 위치할 것인가. 그저 평범한 시민 한 사람으로서 과학자나 정치인들처럼 정보 접근에 용이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바깥세상에 큰 관심이 없어 인터넷을 달구는 뜨거운 반응을 보고 뒤늦게 현실을 파악하리라. 그러고 나서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될까. 지구의 운명이 달린 상황을 정치 공작에 사용하거나, 현실을 외면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 정도는 할지도 모른다. 멍청한 소리 좀 제발 그만하라고 다 죽게 생겼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열변을 토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아마 거기까지이지 않을까. 가능하다면 당장 핵을 발사해 혜성을 파괴해 버리라고 요구하는 시위 등에 참여할 수도 있겠으나 결코 먼저 주도할 리 없고, 이마저도 두어 번 나가다 김이 빠질 확률이 크다. 그리고 결국 맛있는 음식이나 실컷 먹고, 바빠서 감상을 미뤘던 영화나 밤새 보면서 죽을 준비나 하겠지.


인터넷 반응들을 살펴보니 많은 사람들이 ‘돈 룩 업’이 미국 사회를 풍자하는 영화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불편한 질문 한 가지를 꺼내 보고자 한다. 과연 다른 국가들은, 그리고 한국은 같은 상황에서 이보다 더 나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일단 나부터 영화 속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진실은, 특히나 더 큰 진실은 누구나 마주하기 두려운 법이니까.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43035

사진 출처 : IMDB

https://m.imdb.com/title/tt11286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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